참 앎은 앎이 없다 / 현정선원 대우거사님

2012. 10. 26. 11:5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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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심기일전하여 제 나름대로 '이뭐꼬?' 화두를 잡아 참구중입니다.

참구랄것 까지는 없지만 와 닿는바가 있어 '이뭐꼬?' 화두를 잡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중입니다. '이뭐꼬? 하고 묻는 이것은 뭐꼬?'라며 허공에 못질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지족(知足)이 점(點)이라면 선(禪)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이뭐꼬?'의 화두를 타파한 것은 아니지만 '지족(知足)'에 대한 알음알이를

견책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
<참 비춤>(眞照)은 비춤이 없고, <참 앎>(眞知)은 앎이 없습니다.

비춤이 있으면 상대할 것이 있어서 <참된 하나>(眞一)를 등지게 되고,

앎이 있으면 능·소(能所)가 있게 되므로 정각(正覺)을 어깁니다.

 현행하는 일체의 지각활동의 성품을 밝히는 게 성교(聖敎)의 요체이니,

참된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말이니 문자 속을 뒤지면서 망상을 좇는 일을

지금 당장 그만둬야 합니다.

 

안에는 <나>라고 할 만한 주재(主宰)가 없고, 밖으로는 만법이 성품이 공하여

티끌 만한 한 법도 상대할 게 없는데, 미한 중생이 연생(緣生)하는 법 가운데서

헛되이 생멸(生滅) 거래(去來) 유무(有無) 등의 환상(幻相)을 봐서, 이것을

실유(實有)로 오인하여 분별하고 집착하는 게 바로 <무명(無明)의 근본>이니,

몰랐을 때야 어쩔 수 없었다 치고, 알고 난 다음에도 계속 면전의 <다른 것>을

인지(認知)하고 분별을 일삼는다면 영영 생사의 수렁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겠지요.

 요약컨대, 능소가 비록 또렷또렷하나 이것들이 성품이 없고 무력하여

작용이 없음을 알면 바로 천진(天眞)한 영성(靈性)이 우뚝 드러날 것이니,

이것이 <마음을 밝히고 성품을 보는> 실마리입니다.

 

자고로 허망한 전경(前境)을 분별하여 일으키는 모든 <생각>이야말로 온갖

갈등과 분쟁의 단초이므로, 따라서 이 <생각>은 우리가 안고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수단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다생누겁(多生累劫)의 무명의 장애를 떨쳐버리고 <진리의 땅>을

밟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도 우선 이 망령된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야

하겠는데, 그런데 지금의 이와 같은 지견이 모두 다 생각일 뿐이니 어쩌겠어요?

 

 모든 문제를 지어낸 원흉인 생각을 동원해서 그 생각을 없애려 한다면 이것은

도둑을 잡으려고 강도를 불러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니 될 일이 아니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납자라면 모름지기 이 의식의 작동이 멈춰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망상을 찍어눌러서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바로

망상이니, 그러므로 고인이 이르기를, 「아무리 좋은 생각도 생각 없음만 못하니라」

했던 겁니다.

따라서 거두절미하고 지금 당장 무심(無心)에 들지 못하고, 계속 망상을 굴린다면

영영 벗어나긴 글렀습니다.

 

- 현정선원 법정님의 법문

 

 

 

가을 들녁에 서서

/ 홍해리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빈 들녁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