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체험법문

2012. 12. 21. 13: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728x90

 

 

6

그럴 때 교수님께서는 이제 마음의 주인이 되었다는 그런 표현을 쓸 수도 있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에는 저 자신이 내 마음의 노예로 이끌려 다닌다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을 알지 못하는 한은 마음의 노예라는 그런 생각은 어떠한지요?

 

- 마음의 노예죠. 끌려 다니니까요. 말에 끌려 다니고, 욕망에, 감정에, 관념에, 그렇게 전부 끌려 다니잖아요. 마음이란 것이 자신이 타고 다니던 말인데,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이냐 하면 내가 말 꼬랑지를 붙잡고 말 뒤에서 쫓아가고 있는 거죠.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힘들죠. 조절이 안 돼요. 말은 제 마음대로 가버리고...(웃음)

 중국의 선사들은 공부를 두고 '콧구멍을 붙잡는다' 이렇게 비유하기도 하거든요.

심우도(尋牛圖)에 보면 마음을 소에 비유하죠. 소는 코뚜레를 해서 콧구멍을 붙잡으면 꼼짝을 못하거든요. 아무리 작은 어린애라도 소 콧구멍만 붙잡으면 그 소는 따라와야 해요. 기막힌 비유를 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소등에 올라타서 코뚜레를 뚫어 고삐를 붙잡고 있는 게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는 이리저리 내가 원하는 대로 가는 거죠. 소와 내가 곧 하나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부담이 없죠. 내가 소의 주인이라고도 이야기하기가 곤란해요. 소가 따로 있고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소하고 내가 하나가 되니까. 이런 저런 생각이 없죠. 마음이 있다는 생각도 없고, 없다는 생각도 없어요. 그냥 하나가 되어서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죠.

 

 

7

하나만 더 질문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보통 일상생활을 하면서 수행방편에 관한 문제인데, 보통의 경우에는 항상 화두를 챙겨야 된다든지, 염불을 한다든지 이런 식이 있고, 또는 아무 생각도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도 있는 문제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둔다고 할까 하는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이 마음공부에 있어서 바른 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화두를 든다거나, 염불을 하는 것 하고, 그런 것 저런 것 안 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하고, 마음 제 멋대로 그냥 내버려 두는 것. 이런 게 전부 똑같은 겁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공부를 이렇게 저렇게 한다고 하는 공부의 방법에 대한 의도적인 헤아림이 개입되어 있다면 그건 공부가 아니에요. 제가 제 공부 한 것을 말씀드렸지만 지금 공부가 안된 사람 입장에서는 공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은 공부이고 저렇게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하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그쪽으로 노력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첫 질문에서도 나왔었지만, 그냥 공부에 대해서 배가 고파라 이겁니다!

배고픔, 목마름, 그 사실만 확실하면 배고프면 자기도 모르게 빵을 훔쳐 먹든, 밥을 해먹든, 언젠가는 저절로 그렇게 배고픔을 만족시키게 되는 것이고, 목이 마르면 우물을 파든, 강물을 퍼먹든 목마름을 식히게 되는 겁니다. 충분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게 되면 그게 공부를 성취시켜 주는 것이지, 평소에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하는 것은 의식의 장난에, 의식적 놀음에 의지를 하고선 그것을 공부라고 착각을 하는 겁니다. 그건 공부가 아니에요.

의식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서 공부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삼십 년 사십 년 해도 안 되는 겁니다. 공부에는 방식이 없다는 말입니다. 왕도가 없어요. 정해진 방식이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야 안심이 된다는 것은, 마치 사람이 속으로는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흉내를 내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경우와 똑같아요. 예를 들어 염불을 하지 않으면, 화두를 들지 않으면 불안하다면 그건 거기에 의존하고 있을 뿐, 실제 스스로는 공부를 안 하고 있는 거죠.

자기를 솔직하고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합니다. 되돌아보고서 진정으로 자기가 무엇에 배가 고픈가, 진정으로 자신이 이 공부에 목이 얼마나 마른가? 그렇게 되돌아보시면 돼요.

 실제로는 세간적인 욕망에, , 인정, 명예 이런 것에 배가 고프면서 겉으로만 '공부, 공부!'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속고 있을 수도 있어요. 자신이 진정으로 얼마나 이 공부에 배가 고파있는 것인가? 솔직하고 냉정하게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배고픔이 있으면 공부는 거기에 의존해야 되는 겁니다.

배고픔만큼, 그 배고픔이 심해지면 공부는 앞으로 나아가 진전이 있는 것이고, 배고픔이 희미해지면 공부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지금 식사시간이 되어서 배가 고픈데, 그냥 밥을 먹으면 그것으로 만족이 되는데, 밥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실제로 밥을 먹는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뭘 먹을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죠. 이것은 이렇게 먹어야 하고, 저것은 저렇게... 또는 요리책을 갖다놓고 요리책만 보고 있을 수도 있죠. 그러면서 식사시간을 놓쳐버리고, 배고픔을 잊어버리고, 자꾸 요리책만 보고... 우리가 공부를 한답시고 자꾸 어떤 방식에 의존한다는 건 바로 그런 겁니다.

 

실제 배고픔 그 자체에 아무런 가식 없고 격식 없이 그냥 맡겨놓아 버리면 자기도 모르게 그냥 부엌에 가서 밥을 찾아먹어요. 식은 밥이라도 혹시 없는가.... 무의식적이죠. 그렇게 되어야 공부가 되는 겁니다. 그래야 실제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고, 불러지는 것이죠.

의식이란 놈은 장난을 잘 치거든요. 온갖 요리책을 보면서, 말하자면 망상 속에서 만족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배는 여전히 고픈데도 자신은 안 고프다고 착각할 수도 있어요. 어떤 생각도 개입시키지 말고, 공부에 대한 어떤 계산도 하지 말고, 하여튼 지금 자기가 알고 있는 의식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의식적으로 손을 쓰는 것은 아니다! 손을 완전히 놓아버리고 그야말로 자신의 가슴, 자신의 내면의 배고픔이 요구하는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대로 따라가면 되는 겁니다.

내 의식으로써 이렇게 저렇게 공부에 대해서 헤아려보고, 생각해보고, 이만큼 공부가 되는구나, 또는 안 되는구나, 학교 공부하듯이 그렇게 해 가지고는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해도 배고픔은 여전한 겁니다. 잊어버릴 수는 있지만 잊어버린다 해서 배고픔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맨 처음 질문하셨던 "마음가짐",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겁니다. 진정자신이 어디에 목이 마르고 어떻게 배가 고픈가, 그것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그건 머리를 써서 하는 게 아니니까 별 어려운 것이 없어요. 맡겨두면 되는 거예요.

'언젠가는 될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부담 없이, 너무 부담을 가지게 되면 거기에 의식이 개입이 되는 수가 있어요. 부담 없이 가볍게 공부를 해 나가시면 됩니다 

 

 

 

<무사인님과의 대화 2>

(200348. 문학 창작을 통해 인간의 근본 문제를 탐구하던 사람과의 인터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름일 뿐이에요. 이름일 뿐이고, 그것을 알 수 있는 길은 자기가 직접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길밖엔 없습니다. 설명을 통해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첫째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통해서는 절대 알 수 없다. 오직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지, 이미 경전이나 스님들의 어록들이 모두 마음에 관한 설명들이지만 다들 다르고 어느 것 하나 정확하게 맞는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에 따라서, 듣는 사람에 따라서 필요한 약으로 쓴 것이다 이거죠. 그래서 마음이란 것은 말로써 설명해서 개념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잡아내려면 그 마음을 정말 알고 싶은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 소위 마음공부라고 하는 것은 그 자세를 교정해 주는 겁니다. 처음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지식으로 관념적으로 알려고 하죠. 그런데 여기서 마음공부란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은, 그런 자세를 가지고서는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태도를 바로 잡아 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마음을 알고 싶은 욕망,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서 밤잠을 못 자는 것과 같은 간절함이 있을 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게 마음이거든요. 그런 거지, 마음은 이런 거다 저런 거다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사실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공부라고 하는 것은 어떤 책을 많이 읽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고요, 자기 자신의 자세에 달려 있는 겁니다.

 

- 무사인

 

 

 

환합니다 - 정현종(1939~ )



환합니다
감나무에 감이,

바알간 불꽃이,
수도 없이 불을 켜
천지가 환합니다,

이 햇빛 저 햇빛
다 합해도
저렇게 환하겠습니까.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와도
따지 않고 놔둡니다.
풍부합니다.

천지가 배부릅니다.
까치도 까마귀도 배부릅니다.

내 마음도 저기
감나무로 달려가
환하게 환하게 열립니다.

 

 

 

Gheorghe Zamfir_Now And For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