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등명.법등명/무불스님

2013. 4. 5. 10:5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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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음이 자성의 종자(種)다.

선.의 종자가 되어지고 악.의 종자가 되어저서.

행복의 열매가 열리고 불행의 열매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 전에 등불을 밝히려는 진솔한 마음이

부처님 께서 마지막 부촉하신 "자 등명 법 등명"이다,

부처님 께서 열반 하신후 스스로 등불을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 하셨다.

 

자성을 밝히는 등불은 마음 닦는 공부요.

법의 등을 밝히는 것은 부처님 법답게 살아 가겠다는 마음 가짐이다.

 

부처님 법이 지비요. 평등이라 하여도 복의 종자를 심어야 한다.

아무리 땅이 기름지고 여건이 좋아도 땅에 씨앗을 심지 않으면 싹이 틀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부처님 법이라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공덕을 얻을 수가 없다.

 

등불을 밝히는 것은 바로 복의 종자를 심는 일이다.

복 이란.? 자기 자성의 성찰이 자리이타에 배어나올때.나타나고 얻어지는 것이다. 

백년은 3 만 6 천 일이다.

일생동안 한번도 등을 켜 보지 않은 사람도 있다.

두더지가 땅속의 어둠이 전부인양 그렇게 살아가는 미혹의 생명이다.

 

잘때도 같이 자는 놈이 이놈이고, 눈을 뜰때도 같이 뜨는 놈이 이놈이고

가고 오고 앉고 눕고 매일 매일 쏘다녀 살면서도 도대체 알수 없는 이놈이 누구인가.?

이놈이 누구인가.?

모르니 미혹이다.자기 한계에 스스로 갇혀 어둠속에서 빠저 나오지 못한다. 

 

종자.와 법의 인연을 잘 맺어야 한다.

종자 가 싹이 틀려면 해와 달과 바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인연 하여야 한다.

부모를 인연하여 형제 를 만나고 친구 스승 학교 동료 사회 국가 인류를 만난다.

형제 친구 스승님 선지식 모두가 법의 인연이다.

 

일체의 모든 법이 (인연)만유에 평등 하지만.!

종자의 씨앗을 심는(불심) 인연을 짖는 사람에 따라 그 열매가 다르게 열린다.

 

복은 구하는 것이 아니다.

복은 이미 생각하는 법속에 존재함을 알겠는가.?.

일체의 모든 복덕성"이 자성에 본래 구족하게 있으니.

밖에서 구하지 말고 얻으려 하지말고 흘러가는 물처럼 행"하기만 할뿐 그냥 두라는 말이다.

 

행 하기만 하고 구하지 않은 마음이 어야 복을 받고 얻어질수 있다.

붉은 태양은 뜨거운 것을 구하지 않으면서 늘 그렇게 뜨거울 뿐이다.

물은 구 하는 것 없이 계속 흐르기만 하지 구하지 않은다.

 

자식을 키워서 자식의 덕"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

자식이니까. 보살피고 자연스럽게 돌보아 주는 것이다.

부모가 시키는 데로 잘하는 자식은 크게 성공 하거나 인류를 위해 헌신 하지 못한다.

 

부모말 듣지 않고 제 멋되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성공한 사람들이다.

착해서 부모말 잘듣는 다고 우리 아들 착해요. 한다면 ? .무사안일 주의다.

무한 도전 정신이 정신의 영혼을 밝히는 무궁무진한 부처님의 법을 받는 행위다.

 

등.을 달고 불을 밝히는 것은  자만에 빠진 자기에만 안주 하는 암흑세계에서 대명천지로 나오는 인연 의 종자를 심는 일이다.

지구의 인류상에 석가 세존이 제일 위대한 현실세계에 살아 숨쉬는 스승이시다.

그의 가르침은 인류사에 가장 방대하지만 가장 현실을 직시하는 진실로 어느민족 누구나 다 통할수 있는 가르침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부처님은 어디에서 왔는가.?

조그만 씨앗 한톨이 억겁을 넘나 들고 .

조그만 씨앗 한톨이 우주를 삼키기도 한다.

 

한 마음 밝히는 등불.은 마음 하나로 살아가는 일체유심을 밝히는 종자요 씨앗이다.     

 

 

 

 

 

출가 / 법정스님 

 

출가란 버리고 떠남입니다.

묵은 집, 집착의 집, 갈등의 집에서 떠났다고 해서

‘출가’라고 이름합니다.

또한 탐욕의 굴레에서 떠났다는 뜻에서

‘이욕離欲’이라고도 하고,

먼지의 세상인 ‘진개권塵芥圈’에서 뛰쳐나왔다고 해서

‘출진出塵’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므로 출가는 소극적인 도피가 나이라 적극적인 추구요,

끝없는 생명의 발현입니다.

 

 

언젠가 강론을 하면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석가모니와 같은 환경이었다면, 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은

출가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 아쇼다라가 있었습니다.

현대의 미녀처럼 얼굴과 몸매만 말쑥한 게 아니고

안으로 지혜와 덕을 갖추고 있어,

말하자면 안팎이 갖추어진 그런 미인을 반려로 맞이했습니다.

 

 

또 그에게는 왕권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국민의 눈치를 보거나 개헌을 할 수고도 없이 받아놓은 밥상 같은

전제 군주의 절대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물질적인 부를 실컷 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건들을 버리고 떠났던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하든, 그런 조건들이 그의 치수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너는 어째서 출가했는가?”

부처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묻는다 할지라도

나는 다음과 같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내 식대로 살기 위해서 집을 떠났노라고.

 

 

어째서 하고 많은 길 중에서 불교 수행승의 길을 찾아 나섰던가.

그것은 뭐라 말로 하기 어려운 내 생명의 요구였을 것입니다.

시절인연이 다가서자 그 길로 찾아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여러 생에 길들인 인연의 끄나풀 같은 것이

나를 그 길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롭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