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三寶)의 공덕 / 일붕 서경보 큰스님

2013. 4. 5. 11:0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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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보(三寶)의  공덕  / 일붕 서경보 큰스님

 

 

   불교에서  말하는 삼보(三寶)란 .불(佛:범어로 붓다라  하고 覺者 라고

번역한다) 과  법(  달마라 하고 진리 라고 변역한다) 과 승 과의

3가지를  말하며, 이것을 불법승(佛 法僧) 의 삼보라 일컫는다.

여러 종교 가운데 유교나 도교 등에서도 삼보 라는 말이 쓰이고 있으나

불교에서 말하는 삼보란 그 명칭이나 내용도 전혀 다르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보는 이세상에 재보(財寶)가  우리들 인간생활에

필요불가한 것처럼 불법승의 삼보가 인간의 정신생활에

빠질수없는 참으로 귀중한 점에서 보배라고 말한 것이다.

즉 불법승의 삼보는 불교에 없어서는 안될 3가지 요소이며,

불교도가 존중해야할 3가지 보배인 것이다.

 

이 불법승의 삼보에 귀의하는것을 삼귀의 라고 하고,두손의 열손가락을

합하여 합장하여 머리를 숙이고,입으로 삼귀의의 글을 외친다.

 

범어의 삼귀의문은

붓단.사라난.갓챠미-나는 부처에 귀의하여 받든다 이다

담담.사라난.갓챠미-난는 법에 귀의하여 받든다

상감.사라남.갓챠미-승에 귀의하여 받든다

 

라고 3번 되풀이 한다.이 삼귀의를외우는것에 의해서 불교도가

되는 것으로서 , 이것은 불교도로서의 근본조건인 것이다

석존이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다섯비구를 교화시킨후 얼마 되지 않을 무렵

이 삼귀의를 3법 되풀이 하는것으로써 불교도의 신앙고백의

작법으로 정했다 . 그 이후 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이 삼보귀의의 작법은

시종 변함없이 불교도에 의해서 오래 계속되어 왔다.위에 든

범어에 의한 삼귀의의 글을 남방불교 제국(미얀마.스리랑카.태국 등)을

비롯해 서양의 불교신자들도 언제나 외고 있는데,우리나라 에서도

불교적인 여러 의식이나 모임이 있을시 처음시작할때에 참석자 모두 외고 있다.근래에는 정엄한 음악의 리듬으로 편곡되어 레코드에 취입된것도 있다.

이밖에 옛부터 전해져 오는 글이다

 

원컨대 중생과 함께 대도를 체해하여 무상심을 발한다

원컨대 깊이 경장에 들어가서 지혜의 바다와 같이 되려한다

원컨대 중생과 함께 대중을 통리하여 일체 무애하다.

 

이것은 심귀례문 이라 일컬으며 <화엄경>속에 나와있다.

또 계율을 지킬것을 맹세할때에는 삼귀계 라고한다.

삼귀례문과 삼귀계는 법법승의 삼보에 귀의하는 점에서는

같으나 전자는 삼보경계가 주이며,후자는 번사귀정(飜邪歸正)

의 계로서 받는것이다.삼귀계라는 것은,

 

부처에 귀의하여 받든다,법에 귀의하여 받든다,승에 귀의하여 받든다,

부처의 무상존에 귀의하여 받든다,법의 이욕존에 귀의하여 받든다,

승의 화합존에 귀의하여 받든다,부처에 귀의하여 돌아간다,

법에 귀의하여 돌아간다,승에 귀의하여 돌아간다,

 

이 삼귀계는 득도식 ,불도의  신도들의 결혼식,장례식 등에서도 3번 외고

불교에서는 많은 계법(戒法)이 있는데 불교로서는 특히 이 삼보귀의야말로

그 근본조건으로서 이 삼보만큼 친숙한 것이 없으며 불교도 신앙의

방법으로도 이 삼보귀의 만큼 구체적인것은 없다.즉 삼보에

 

귀의하는것은 실제로 삼보에 빌고,삼보의 이름을 외는것이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므로 마음에 불법승의 존경하는 생각이

없으면 몸에 삼보를 귀의하는 열매를 나타낼수가 없다.

 

또한 몸에 삼보를 귀의하는 행위가 없다면 마음에 불법승을

존경하는 염(念)은 일어나지 않는다.즉,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받들어 모시지 않으면 안된다 , 한마음으로 삼보를 외고

한마음으로 예배하는것이 귀의 의 실제인 것이다

 

이처럼 삼보에 실제로 귀의하고 이것을 공양,공경하는것은

불교신도로서는 최초에 해야하는 일이며,최후까지 계속하지

않으면 안될일이다.즉 사생(四生)의 마지막돌아갈 것은 살고있는

모든 생물,태란습화의 모든생멸이 있는것 전체의 최종의

귀착점이라는 뜻이다

 

한마음으로 삼보를 외고,한마음으로 예배함은 불교의 생명이며 ,

불교신앙의 주임이고 불교생활의 기초인 것이다.

귀의삼보의 공덕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래도 그 근본이 되는

귀의작법과 마음가짐을 완전히 체득해 두지 않으면 이것을 충분히

이해할수가 없으므로 약간 상세히 설명했다 .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      

<불교명저)(서음미디어 발행) 제9권 

 "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에서 발췌

 

 아침 이슬과 같은 말
 


 


 

좋은 말은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이슬은 양은 많지 않지만

식물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특히 사막 같은 지역에서는

이슬이 식물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좋은 말은 많은 말을 하는것이 아닙니다.
한 마디의 좋은 말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때로는 사람을 살리기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한 좋은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보다 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슬이 아침에 식물을 적셔주는 것과 같이
좋은말을 해서 사람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준다면
좋은말을 듣는 사람은
생명수를 공급 받는 것과 같을 것 입니다. 


 

 


 

좋은 말은 소망이 있는 말입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을 지라도
상대를 설득하려는 말과 책망하는 말은
때로는 소망을 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게
자기만의 은사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고 해서
상대가 못하는 것을 책망하고
권면하면서 따라 하라고 할 때
상대는 죽어도 못 할 수도 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것을 너무 강하게 요구하면
상대의 소망을 끊어 버리는 것과 같이 됩니다.
실제적으로 부모의 지나친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명을 끊는 경우도 종종 일어 납니다.

소망을 주는 말을 하세요
이슬과 같이 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말을 하세요
소망을 주는 말은 진실되어야 합니다.
  

 


 

좋은 미사여구를 써서
우유보다 매끄럽게 말을 할 지라도
진실되지 못한 말은 결국
상대를 찌르는 비수와 같은 것이 됩니다.

때에 맞는 옳은 말은 기쁨을 줍니다.
한 마디의 말이라도 아름다운 말을 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식물을 적셔 주는
아침 이슬과도 같이 영롱하게 빛을 낼 것입니다.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