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수도암 선원장 원인스님의 행복론

2013. 4. 26. 20:1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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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근본적으로 내 마음 가운데 참된 행복을 이루기 위함이니

우리가 게을리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내면의 행복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기도를 잘 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바르게 했다면 분명히 내면의 행복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조건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바르게 보고 생각하는 것에서 온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일념으로 기도하면 자기 내면의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이러한 내면적인 깊은 공덕을 얻기 위함인데,

현실에서의 ‘나’ 에 대한 잘못된 집착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물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극단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모두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자아라는 속박에서 벗어나야 참된 행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자아라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을 먼저 쉬어야 하고,

마음을 쉬기 위해서 항상 기도와 염불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지극하게 하면 저절로 마음이 맑아지고 순수해져서

내 마음이 부처와 일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깊은 뜻은 주어진 현실을 최선의 결과로 만들자는 것이고

최선의 결과가 이뤄질 때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최선의 결과는,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염불을 놓치지 않고,

맑고 순수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때, 이뤄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김천 수도암 선원장 원인스님(3월 1일 백일기도 회향법회 법문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어느 봄날  김천 수도암에서 은사 스님을 모시고 살던 

열다섯 살난 행자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씁니다.

 

"저는 가겠습니다.

가는 이유는  제가 여기 살기 싫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들이 나고 죽으면서 한없는 고통을 받기 때문에 내가 깊은 산중에 사람 안 다니는 적적한 곳에 가서

공부해서 성불해서 이런 고를 벗어나려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죄를 짓기 전에 일찍이 가서 생사를 걸고 공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냈습니다.

제가 만약 성불하지 못하면 늙어죽을 때까지 성불하고 말겠다는 생각을 내고 갑니다.

그럼 제가 오면 성불한 줄 아시고 안 오면 못한 줄 아십시오. 

마치겠습니다. 그럼 스님 몸조심하시면서 공부 잘하셔서 성불하십시오.

원인圓印이가 스님께 글을 올립니다.

1970년 4월 15일. 

 

여기 있는 물건은 스님도 하시고 남 주십시오.

법전法傳스님께 원인 올림      

 

행자는 편지를 보관해두는 소쿠리에 편지를 넣어주고 수도산 중턱으로 올라갔습니다.

행자시절에 늘 익히며 외웠던 '초발심자경문'에 나오는 것처럼 바위 틈에 나오는 풀뿌리를 뜯어먹으면서

도를 닦아 성불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속은 낮엔 그런대로 지낼만 했으나 밤이 되자 너무 춥고 무서웠습니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짐승들의 울음소리는 왜그렇게 크게 들리던지,

동굴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자無字 화두를 드는데,

'개에게 왜 불성이 없다고 했는가' 하고 화두를 들다보니 자꾸 개가 떠올라 더 무서워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화두를 '뜰 앞의 잣나무'로 바꾸어 봤더니 조금 덜 무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행자는 성불하러 간 지 사흘만에 동굴에서 내려왔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성불도 춥고 배고프고 무서운 것 앞에서는 맥을 못 춘 거지요.

 

동네 사람들을 풀어 어린 상좌를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추위에 무슨 변이라도 당할까

걱정을 태산같이 하던 스승은 잔뜩 주눅이 들고 초췌해져서 돌아온  행자를  덥석 껴앉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자초지종을  들은 다음 스승이 물었습니다.

"그래, 성불하면 내려오겠다더니 사흘만에 성불한 것이냐?"

"아~~니요!"

 

스승은 그해 여름,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깊은 산속에 제 또래 하나 없이 사는 어린 상좌가 안쓰러워

속을 파낸 큰 나무통을 마당가에 있던 연못에 띄워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서너 명이 들어앉을 만큼 제법 큰 통나무배가 되었습니다.

어린 행자는 그 배에 올라타 연못을 휘저으며 놀기도 하고 '초발심자경문'을 외우며

다시 부처되기를 꿈꾸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5년 전 초여름 , 수도암 정각(수도암에 딸린 조그만 암자)에서 정진하고 계시던

원인스님께 들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 순수함, 우직함 때문이었겠지요.

원인 스님의 은사이신 법전 큰스님의 자서전 ' 누구 없는가'를  참고해 이 글을 쓰면서 또한번 혼자 웃습니다.

 

지난 3월 1일 원인스님께서 영주 대승사 백일기도 회향 법문에서

그날 미처 듣지 못했던 말씀을 하시더군요.

 

"수도암 선원 불사를 위해 애쓰시는 은사스님을 위해 백일 동안 하루 15시간 염불정진을 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정진을 하다보니까,

어서 속히 도력을 갖춘 다음 불법을 널리 펴야겠다는 대승원력이 생겨났습니다."

 

 

 

하루는 짧은 인생 또 하루가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당신의 하루가 희망차게 열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소중한 오늘을 무의미하게, 때로는 아무렇게나 보낼 때가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모여 평생이 되고, '영원히'란 말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이 하루라는 의미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는 곧 일생이다. 좋은 일생이 있는 것처럼 좋은 하루도 있다. 불행한 일생이 있는 것같이 불행한 하루도 있다. 하루를 짧은 인생으로 본다면 하나의 날을 부질없이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곧 좋은 일생을 만드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선물'이며 '시간'이고 '생명' 입니다. 오늘이라는 소중한 당신의 '하루'를 아름답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최선을 다하렵니다. - 행복을 만들어 주는 책에서 -

 

글; 바른마음님 - 음악; 보성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