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6. 20:3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어떠한 물건이 이래 왔는고? / 서암 큰스님
회양 선사는 소동파니 백낙천처럼 세계적인 학자입니다.
그러한 학자인데도 자기가 아는 것은 캄캄한 그림자 같고
안심이 안 되어 항상 미지근하여 통쾌하질 못했어요.
그런데 일자 무식인 혜능 스님의 명성이 천하에 진동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서 마음을 열고 혜안을 얻었다 하니
회양 선사는 신기해 했습니다. 회양 선사 자신은 그렇게
학문이 막힘이 없이 넓고 깊은데도
찾아 오는 사람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우선 자신의 인생이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따르고 답답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일자 무식인 자가 그럴 수 있는가
궁금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직접 찾아가 본다고 길을 떠났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차나 비행기를 타고 휙 갔다 오지만
옛날에는 교통편이 불편해서 그 넓은 땅을 가는 데
몇 달이 걸립니다. 크고 험한 재를 넘고, 작은 강은 헤엄치고,
큰 강이 막고 있으면 조각배라도 타고 건너고 해서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여러 달이 걸려서 찾아 갔습니다.
드디어 혜능 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방문을 열고
인사를 하려다 스님의 모양을 떡 보니, 큰 학자였거든요.
그러니까 회양 선사 눈에 보이는 혜능 스님은 그야말로
아는 것이 꽉 차 있는 큰 학자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사를 하는 찰나에 혜능 스님이 “어떠한 물건이
이래 왔는고?” 하고 소리질러 묻는 것이었어요.
그 순간 회양 선사는 그 ‘어떠한 물건이 왔느냐?’는 말에
모든 생각이 꽉 막혀 버립니다.
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요. 왼쪽 손 한 번 내흔들고
오른쪽 손 한 번 내흔들고 왼쪽 발 한 번 내딛고
오른쪽 발 한 번 따라 딛고 몇 달을 그렇게 힘들여서
왔단 말입니다. 눈을 크게 떠서 물에 빠지지도 않고,
지나 가는 사람과 부딪히지도 않고, 수레에 치이지도 않고
오기는 왔지요. 그런데 여기서 ‘어떠한 물건이 이래 왔다.’고
되받아야 하는데 꽉 막혀 버린 거지요.
마치 혼빠진 할머니가 딸네집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쳐다 보듯 그렇게 정신 없이 얼마 동안 서 있던
회양 선사는 막힌 그것을 그대로 안고 그 자리에서 발길을
돌립니다. ‘내가 오기는 왔으면서도 어떠한 물건이
이래 왔냐고 묻는 말에 한 마디 대답도 못하면서
종일 이야기를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평생 갈고 닦은 지식이라는 것이 그 대답 하나 못했으니
어디다 써먹을 지식인지 통탄할 노릇이었지요.
그야말로 지식의 금자탑이 일자 무식인 혜능 스님의 한마디에
와르르 다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자기 재산 전부를 다 바람에 날려보내고 빈털터리가 되어 정신없이 돌아 가는 판입니다. 마치 목에 가시가 하나
걸린 것처럼 이놈의 꽉 막힌 것이 그냥 삼키려고 해도
안 넘어 가고 뱉으려 해도 안 뱉아지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이겠어요.
누가 곁에서 무슨 말을 해도 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
묻는 말에도 동문서답이요, 오직 그 놈 하나가 딱 걸려서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책을 들고 찾아 보고
사전을 뒤지고 찾아 볼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구할 대상도 아니었죠. 꽉 막혀 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꽉 막혀 버리니까 무슨 공부인들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잖아요? 그렇게 답답한 걸 풀지 않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니까요.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소변을 보나 그 문제 하나가 꽉 걸려서
잠자기 전까지는 그 문제를 놓을래야 놓을 수가 없고,
친구에게 편지를 하나 쓰려 해도 그 의심이 꽉 막혀서
잠시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회양 선사는 바로 그렇게
꽉 막힌 의심 덩어리를 한시도 놓지 않고 붙들고 갔기 때문에
결국 하루아침에 확연히 깨치게 됩니다.
이것이 참선이 되는 이치입니다.
선사님들의 불퇴전을 살아생전 따라갈수나 있으려는지 ,,
경계조차 모호하니 언제쯤 이 혼침에서 벗어나려는지요
서암스님의 귀한법문 이였습니다
내등에 짐이 없었다면
내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 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게 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살게 합니다.
김영동 / 어디로 갈꺼나
어디로 갈꺼나 어디로 갈꺼나
내님을 찾아서 어디로 갈꺼나
이 강을 건너도 내 쉴 곳은 아니오
저 산을 넘어도 머물 곳은 없어라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내님은 어디에 어디에 있을까
흰 구름 따라 내일은 어디로
달빛을 쫓아 내님 찾아 간다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내 님은 어디에 어디에 있을까
흰 구름 따라 내일은 어디로
달빛을 쫓아 내님 찾아 간다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내 님은 어디에 어디에 있을까
어떠한 물건이 이래 왔는고? / 서암 큰스님 그러한 학자인데도 자기가 아는 것은 캄캄한 그림자 같고 안심이 안 되어 항상 미지근하여 통쾌하질 못했어요.
그런데 일자 무식인 혜능 스님의 명성이 천하에 진동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서 마음을 열고 혜안을 얻었다 하니 회양 선사는 신기해 했습니다. 회양 선사 자신은 그렇게 학문이 막힘이 없이 넓고 깊은데도 찾아 오는 사람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우선 자신의 인생이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따르고 답답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일자 무식인 자가 그럴 수 있는가 궁금하였던 것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차나 비행기를 타고 휙 갔다 오지만 옛날에는 교통편이 불편해서 그 넓은 땅을 가는 데 몇 달이 걸립니다. 크고 험한 재를 넘고, 작은 강은 헤엄치고, 큰 강이 막고 있으면 조각배라도 타고 건너고 해서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여러 달이 걸려서 찾아 갔습니다. 인사를 하려다 스님의 모양을 떡 보니, 큰 학자였거든요. 그러니까 회양 선사 눈에 보이는 혜능 스님은 그야말로 아는 것이 꽉 차 있는 큰 학자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사를 하는 찰나에 혜능 스님이 “어떠한 물건이 이래 왔는고?” 하고 소리질러 묻는 것이었어요. 그 순간 회양 선사는 그 ‘어떠한 물건이 왔느냐?’는 말에 모든 생각이 꽉 막혀 버립니다. 오른쪽 손 한 번 내흔들고 왼쪽 발 한 번 내딛고 오른쪽 발 한 번 따라 딛고 몇 달을 그렇게 힘들여서 왔단 말입니다. 눈을 크게 떠서 물에 빠지지도 않고,
지나 가는 사람과 부딪히지도 않고, 수레에 치이지도 않고 오기는 왔지요. 그런데 여기서 ‘어떠한 물건이 이래 왔다.’고 되받아야 하는데 꽉 막혀 버린 거지요.
마치 혼빠진 할머니가 딸네집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쳐다 보듯 그렇게 정신 없이 얼마 동안 서 있던 회양 선사는 막힌 그것을 그대로 안고 그 자리에서 발길을 돌립니다. ‘내가 오기는 왔으면서도 어떠한 물건이 이래 왔냐고 묻는 말에 한 마디 대답도 못하면서
종일 이야기를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어디다 써먹을 지식인지 통탄할 노릇이었지요. 그야말로 지식의 금자탑이 일자 무식인 혜능 스님의 한마디에 와르르 다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걸린 것처럼 이놈의 꽉 막힌 것이 그냥 삼키려고 해도 안 넘어 가고 뱉으려 해도 안 뱉아지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이겠어요. 묻는 말에도 동문서답이요, 오직 그 놈 하나가 딱 걸려서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책을 들고 찾아 보고 사전을 뒤지고 찾아 볼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구할 대상도 아니었죠. 꽉 막혀 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꽉 막혀 버리니까 무슨 공부인들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잖아요? 그렇게 답답한 걸 풀지 않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니까요.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소변을 보나 그 문제 하나가 꽉 걸려서 잠자기 전까지는 그 문제를 놓을래야 놓을 수가 없고,
친구에게 편지를 하나 쓰려 해도 그 의심이 꽉 막혀서 잠시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회양 선사는 바로 그렇게 꽉 막힌 의심 덩어리를 한시도 놓지 않고 붙들고 갔기 때문에 결국 하루아침에 확연히 깨치게 됩니다. 이것이 참선이 되는 이치입니다.
선사님들의 불퇴전을 살아생전 따라갈수나 있으려는지 ,, 경계조차 모호하니 언제쯤 이 혼침에서 벗어나려는지요
서암스님의 귀한법문 이였습니다
내등에 짐이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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