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털지 말고 닦아라 /우룡스님

2013. 5. 16. 22: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열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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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를 행할 때,
모든 사람에 대해

자비심을 평등히 지녀서
마치 자식같이 생각한다.

보시를 행할 때,
모든 사람에 대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부모가 병든 자식을 돌보는 것같이 한다.

보시할 때,
그 마음에 기뻐하여
부모가 그 자식의 병이
완쾌한 모양을 보는 것같이 한다.

그리고 보시를 끝낸 뒤에는
그 마음을 너그럽고 고요하게 해서
부모가 그 자식이 커서
자유롭게 살아감을 보는 것같이 한다.

 

<열반경>

 

복을 털지 말고 닦아라

 

 

나는 1946년에 절 집안으로 들어와서

소위 근래의 도인스님이라는 어른들을 거의 다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 어른들을 모시고 있을 때

참으로 고약하게도 공부보다도 이분들의 끄트머리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한 석 달을 지내고 나면 이 어른들의 생활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내가 모신 어른들 중에서는

금봉(錦峰) 노스님이 가장 거룩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앞에서나 뒤에서의 생활이 다르다는 것은 아직 공부가 덜 되었다는 증거인데

이 어른은 일상생활에 있어 안과 밖이 없었습니다.

신도들 앞이건 스님네 앞이건, 남자 앞이건 여자 앞이건

꾸밈이라는 것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설사 진리를 깨쳤다고 하고 도를 깨쳤다고 해도 원인과 결과,
곧 인과(因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면 꾸밈이 붙게 됩니다.
인과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버린 도인이라야

안팎의 꾸밈이 없어져 버리고 '나'를 가리는 커튼이 모두 없어져,

생사일여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움직이거나 말을 할 때도 공부가 끊어지지 않고,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이 공부가 끊어지지 않을 만큼 된다는

어른들까지도 인과의 테두리를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원인과 결과의 도리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마지막에 이 몸뚱어리를 시원스럽게 벗어버리고

자신있게 새로운 몸뚱어리 덮어쓰는 법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누구나 집은 비워줘야 됩니다.

이 육신은 언젠가 벗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내가 늘 불자들에게 '예금 부지런히 해 놓으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내 자신에게도 벌써부터 '집 비워내라'는 독촉장이 살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전셋집을 비워주고

다음에 지금보다도 더 좋은 집을 얻어 갈지 어떨지는 나도 자신이 없습니다.

지금은 젊다고 하시는 분들도 언젠가는 집을 비워줘야 됩니다.

다음에 들어갈 집이 지금보다 더 좋은 집이 될지

네 발로 기는 집으로 들어갈런지는 아무도 자신을 못합니다.

자신을 하려면 마지막 단계인 생사일여의 고비를 넘겨야만 됩니다.
잠자고 일어나는 속에서도 공부가 안 끊어질 만큼 몰아 붙여서,
마지막 이 몸뚱어리 벗을 때에 안 끊어지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힘이 듭니다. 하지만 몰아 붙여 보십시오. 틀림없이 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공부 쪽을 하다 보면

생활인으로서의 책임이 빠져 버리고 반대로 생활에서의 책임을 다하다 보면

공부가 완전히 달아나버리는 두 갈래 길에서 허우적허우적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몰아 붙이면 됩니다.

생각은 한 쪽 것만 하는 것 같은데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다른 쪽이 습관적으로 됩니다.

불교 문중에 발을 들여 놓은 우리 불자들의

다음 집은 지금의 집보다 더 좋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힘이 들어도 자기가 하고 있는 공부를 몰아 붙여야 합니다.

절대로 남을 건너다보지 말고, 내 공부 내가 하십시오.

남이 내 일을 해주지 않습니다.

가슴을 쥐어 짜든 말든, 심장이 파닥파닥 뛰든 말든,

통곡을 하든 말든, 내 일은 내가 해야 합니다.
아무도 내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배고플 때에 곁의 사람이 밥을 먹는다고 내 배가 불러집니까?

내가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대신 가 줄 사람이 있습니까?

수명이 다했을 때 이 몸뚱어리 바꾸는 일을 어느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습니까?

내가 뿌린 씨앗은 내가 거두어야 합니다.

좀 힘이 들더라도 부지런히 부지런히 공부를 해서,

절에 다녔다는 인연으로 다음 집을 얻을 때에는 지금의 집보다 좋아져야 됩니다.

20여년 전 양산 내원사의 석불노전에 계셨던 노스님께서

고양이가 죽은 뒤 49재를 지내주고 난 다음에

영단 쪽의 고양이 위패를 쳐다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복이 없어도 좋으니까 인간으로 오너라.

인간으로 오면 복을 지을 기회라도 있고 참회할 기회라도 있지만

네 발 가진 나라에 가버리고 나면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다.

복이 없어도 좋으니까 인간으로 오너라. 네 발 가진 나라로는 가지 말아라."

비록 복이 모자랄지라도 인간으로 다시 와야지,

인간의 집을 잊어버리고 네 발 가진 나라로 가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좀 더 부지런히 부지런히 업장 참회를 하건 염불을 하건,
기도를 하건 봉사를 하건, 자꾸자꾸 복을 닦아야 합니다.

복을 닦지 않으면 뜻과같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남을 건너다보면 복도 닦지 못하고 내 공부도 못 합니다.

남을 믿거나 남을 의지하거나 남을 쳐다보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까이 해서

부지런히 부지런히 정진할 뿐 건너다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근기가 약하기 때문에 자꾸 건너다보게 됩니다.
자꾸 건너다보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그에따라 업을 짓게 됩니다.

늘 약은 꾀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올 한없는 복과 지혜는 영원히 멀어지고 맙니다.

아주 사소한 일 하나하나로 복을 깎아내리기도 하고 복을 쌓기도 합니다.

늘 몸(身)과 말(口)과 뜻(意)의 삼업(三業)을 조심하여
일상생활에서 복을 털지 말고 복을 닦아 가시기 바랍니다.

 

- 우룡스님 -

 

 

 

 

 

 

 

 

 

만일 현명하고 잘 협조하며
행실이 올바르고 지혜로운 도반을 얻게 되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수행자는 참으로 도반 얻는 행복을 기린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동등한 친구와는 가까이 지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벗으 얻을 수 없으면

허물을 짓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불의 교훈

 

세상의 시작 이래 물과 불은
우리와 같이 있어 왔다.
물의 혜택은 말할 것도 없고,
불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장 편안한 생활을 누리게 하고 있다.

고기를 구워 먹고,
밥을 해 먹으며,
잠자리를 따뜻이 하며,
필요 없는 쓰레기를 태워왔다.

이처럼 불에게서 얻을 교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 불은 언제나 위로만 올라간다. - 소망
불이란 존재는 위로 올라가야만 하고
위로 올라갈 수 없다면 즉시 꺼지고 만다.
우리도 위(앞)를 향한 삶이 아니면
살았으나 죽은 자 같이 되고 만다.

2. 불은 모든 더러운 것을 태울 수 있다. - 정화
나쁜 쓰레기나 버려야 할 것들,
영원히 묻어 버리고 싶은 것들을 맹렬히 태우라.
그 태움으로 완전히 잊거나
영원히 소멸시키라.

3. 불은 주위를 따뜻이 한다. - 열정과 온유
뜨거운 심장을 소유하고
불 같은 집념을 소유한 사람은
그 열정과 온유가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주위까지 따뜻한 평화를 나누며
넉넉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

4. 불탄 자리는 아무 것도 없다. - 소멸
불탄 자리에서는 얻을 것이 없다.
모두 태워 버리기 때문이다.
불은 결국 소멸되어야 하듯
더 살라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맹렬한 불같이 살라.

5. 불은 우리의 안내자이다. - 빛 같은 사람
캄캄한 우리의 인생길을
사랑의 등불로 나아간다면
우리 인생의 빛 같은
안내자가 될 것이다.



- 소천 님의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