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0. 20:2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아픔과 괴로움, 좌절을 다루는 중도적인 수행 방법
-법상스님
인생이 자꾸만 꼬여서 괴롭고 답답한가?
지금이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인가?
괴로운 일들이 몇 가지씩 겹쳐서 혼란스러운가?
잘 되었다.
지금이 바로 삶의 경이로운 반전이 시작될 시점이다.
내 생에 가장 큰 공부가 시작될 것이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의 깊게 삶을 지켜보라.
보통 사람들은 삶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 겉에 드러난 표면적인 상황만을 보기 때문에
쉽게 상처받고, 좌절하며, 괴로워하지만
보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이는
문제의 심연에서 피어나는 의미를 지혜롭게 관찰하곤 한다.
언제나 난관은 우리를 돕기 위한
자비와 사랑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노크한다.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지혜로운 중도의 길은
회피하거나 투쟁하는 양 극단을 떠나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止)
가만히 지켜보는 것(觀)이다.
아픔이 오면 아픔이 오도록 그저 내버려 두라.
아픔이 내 존재 위를 스치고 지나가도록 그저 놔두고
어떻게 왔다가 스쳐 지나가는지를 묵연히 바라보기만 하라.
아픔을 나와 둘로 나누어놓고나면 아픔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아니면 싸워 이기거나 둘중 하나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픔을 나와 둘로 나누지 않고 내 존재의 일부분으로,
내 삶과 하나로 가만히 포개어 놓고 나면
더 이상 아픔과 싸우거나 도망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아픔과 괴로움, 좌절을 다루는
중도적인 수행 방법이다.
수행은 세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성숙한다.
첫째, 대상을 알아차림으로써
생각과 말과 행동이 절제되는 계율을 지킨다.
둘째, 알아차림이 지속되면
마음이 고요해지는 집중력을 얻는다.
셋째, 고요한 마음의 집중에 의해
무상, 고, 무아를 아는 지혜가 난다.
이러한 통찰지혜가 날 때만이
욕망이 끊어진 열반을 성취한다.
이상의 세 가지 과정에 의해
궁극의 해탈에 이른다.
◈ 회향은 왜 반드시 해야 하는가?
회향은 지금까지 염불 공덕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크고 작은 업풍을 맞아가면서 살아갑니다.
좋은 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그에 해당하는 좋은 바람으로
세상을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멋진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모진 비바람을 맞아갑니다.
그리고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마음이 옹졸하고 좁아 베푸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금생에도 공덕의 탑을 쌓지 못하니 비바람을 노다지 맞게 됩니다.
부처님께 공양물을 올리는 것도 큰 공덕을 짓는 것입니다.
◇ 공덕의 탑을 세우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
아무리 거센 업의 바람이 불어와도 막아줍니다.
공덕의 탑을 만드는 방법은
양 바퀴 달린 수레가 필요합니다.
한 바퀴는 자리행위이니 스스로 마음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리행위는 자신을 이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또 한 바퀴는 타리행위입니다.
타리행위는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이를 보시라 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은 재물이나 지식 또는 따뜻한 마음도 됩니다.
이렇게 자리행위와 이타행위를 동시에 할 때
공덕의 탑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 세상사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됩니다.
◇ 그래서 관음기도 염불 수행은 자리행위란 하나의 날개를 만드는 것이요
회향보시는 타리행위란 또 하나의 날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날개가 있으면 새가 추락하지 않고 잘 날아가는 것처럼
자리행위와 타리행위로 튼튼한 공덕의 탑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어린 아이들은 이 순간에 산다 / 돈 미겔 루이스
두세 살쯤 된 어린아이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라.
그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라.
아이들은 늘 재미있게 놀고 있다.
항상 깔깔거리며 웃는다.
상상력은 대단하며, 탐험과 모험을 즐긴다.
뭔가가 잘못되면
즉각 반응하고 자신들을 방어하지만
그 뒤에는 다 잊어버리고 다시 이 순간에,
놀이에, 탐험하고 재미있게 노는 데 주의를 돌린다.
어린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산다.
어린아이들은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느끼는 바를 그때그때 표현하며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은
어린아이처럼 놀고 있을 때이며, 노래하고 춤출 때이며,
즐거움을 위해 탐험하고 창조하고 있을 때이다.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때 아름다운 까닭은
이것이 바로 사람의 정상적인 마음이며,
사람의 정상적인 성향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일 때,
우리는 천진하며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온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가식이 없고 포장되지 않는
어린이의 마음은 부처님 마음 !
성장하면서 분별하고 덧칠하고서
겉은 그럴듯 해보이지만 고뇌의 씨앗이다
아담과 이브는 분별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먹고
어린이(부처)를 떠나버렸다.
'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 > 발심수행장·수행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율은 열반에 이르는 사다리 (0) | 2013.06.27 |
---|---|
보시(布施)의 종점(終點)은 중생 성숙 (0) | 2013.06.27 |
염불하는 방법 / 월하스님 (0) | 2013.06.13 |
대신 해 주는 기도 / 일타스님 (0) | 2013.06.13 |
무아(無我)의 수행(修行) / 청화스님 (0) | 2013.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