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허어영기자 2013.06.25
후임 대통령 위해 한부 더 남겼다
국정원이 악용, 결국 공격 빌미 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향후 남북관계를 다룰 후임 대통령을 위해 선의로 국가정보원에 남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박근혜 정부와 국가정보원, 새누리당 등 집권 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는 ‘정치적 부메랑’이 됐다.
당시 정상회담 배석자와 참여정부 청와대 참모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화록은 청와대에서 작성했지만 회담장에 배석한 조명균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녹음한 파일 가운데 잘 안 들리는 부분이 많아 국정원에 녹취를 푸는 작업을 맡겼다. 김만복 국정원장 책임 아래 국정원의 기술적 도움과 당시 배석한 백종천 안보실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의 개인 메모 등을 종합해 대화록을 완성한 뒤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두 부를 만들어 한 부는 청와대에, 다른 한 부는 후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국정원에 보관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수 전 연설기록비서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정원에 사본을 남겼던 대통령의 뜻을 생각하면, 대통령기록물로 관리하면서 대통령이 지시했던 용도로만 썼어야 했다”며 “정상회담 대화록을 한쪽 국가의 정보기관이 공개해버리는 상황에서 어느 나라 정상이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겠냐. 국정원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후대를 위해 기록을 남기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일일이 지정기록물이냐, 공공기록물이냐를 구분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통령기록물로 봐야 한다”며 국정원이 무단 공개 근거로 제시한 ‘노 전 대통령의 공공기록물 지정 지시’ 주장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실제로 검찰도 지난 대선 때 불거진 엔엘엘 관련 여야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공공기록물로 분류하도록 지시했다는 진술이나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남재준 원장의 국정원은 대선개입 국정조사와 국회의 개혁 시도에 맞닥뜨리자 이를 뒤집기 위한 ‘카드’로 대화록을 악용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정치적 계산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선의’를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역설’이 생겨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NLL 포기 발언’ 없었다
한겨레 2013.06.24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조성 계획 (※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국정원이 공개한 8쪽짜리 대화록 발췌본 보니…
노 “서로 군사철수·공동어로…평화지대 만들자”
24일 언론에 공개된 국정원의 8쪽짜리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 자세히 담겨 있다. 이를 보면 노 전 대통령은 보수세력이 주장하듯 엔엘엘을 포기한 게 아니라, 남북이 서해를 평화롭게 이용하는 신뢰 형성 과정을 통해 남북 대결의 산물인 엔엘엘의 존재 의의를 해소하려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김정일 먼저 말문 “평화수역으로 선포하자” 제안
노 “서로 군사철수 공동어로…평화지대 만들자”
대화록 발췌본을 보면, 엔엘엘 등 남북간 서해 현안에 대해 처음 말문을 연 것은 김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북방한계선과 우리(북한) 군사경계선 안에 있는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선포”하자고 제안한다.(18쪽) 북한 입장에서도 남북간에 우발적인 충돌이 잇따르는 연평도에서 백령도에 이르는 서해안을 안정시키는 게 중요한 안보 현안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에 노 대통령도 “네, 아주 저도 관심이 많은…”이라고 대답하며 두 정상 사이의 논의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노 대통령은 이어 “(엔엘엘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40~41쪽)고 말한다. 이는 엔엘엘이 정전협정을 통해 합의된 해상 경계선이 아니라 1953년 8월 유엔군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되짚은 발언이었다. 엔엘엘 포기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은 없지만 이런 구절이 새누리당 등 보수세력의 눈에는 엔엘엘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북쪽 인민으로서도 그건 아마 자존심이 걸린 것이고, 남쪽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라며 이 문제에 영토분쟁적 성격이 있음을 인정했다. 이어 “엔엘엘 말만 나오면 전부 다 막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된다”며 “위원장하고 나하고 이 문제를 깊이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며 자신의 구상을 밝힌다. 김 위원장의 첫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의 구상을 밝혀 김 위원장의 동의를 이끌어낸 셈이다.
2007년 10월3일 평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서해를 분쟁의 바다에서 평화의 바다로 바꾸자는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구상에 합의했다. 평양/청와대사진기자단
노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나아가서는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공동경제구역도 만들어서 통항도 맘대로 하게 하고, 그렇게 되면, 그 통항을 위해서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즉, 남북이 “여기는 자유통항구역이고, 여긴 공동어로구역이고, 그럼 거기에는 군대를 못 들어가게 하고. 양측이 경찰이 관리를 하는 평화지대를 하나 만드는 그런 개념들을 설정”해 남쪽의 엔엘엘과 북쪽이 고집하는 북방한계선의 개념을 조금씩 해체해 가자는 제안을 한 셈이다.
이에 대한 김 위원장의 반응은 발췌록에 담겨 있지 않다. 그러나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2011년 2월 일본 월간지 <세카이>(세계)를 통해 김 위원장이 이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점심 식사 후 노 대통령과 다시 만나 “국방위원회의 책임자급 장군들과 상의했습니다. 제가 해주공업지대가 가능하겠냐고 물으니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해주도 좋고, 해주에서 개성공업지대에 이르는 강령군도 활용할 수 있고, 해주항도 개발해 이용해도 좋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10월4일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귀국하는 길에 이런 내용을 국민에게 자세히 밝힌 바 있다. 그는 이때 남북 사이에 합의된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에 대해 “서해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 군사적 대결의 관점이 아니라 경제협력의 관점으로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결국 대화록의 내용은 노 대통령이 사용한 몇몇 직접적인 표현을 제외한다면 이미 알려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정상회담 뒤 노무현 대통령 4개월 재직 동안
NLL 아무 변화 없었다
도리어 북 김양건 서울방문 후속회담서
“남쪽, NLL 전제로 주장” 발언도
2007년 10월 정상회담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NLL)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북 정상이 해주 지역과 백령도에서 연평도에 이르는 주변 해역에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를 만들자는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공동어로구역 등 실무적인 문제에서 양쪽의 견해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공동어로구역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 때 밝힌 대로 우리의 북방한계선과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군사분계선의 중간수역이었다. 그러나 우리 쪽 입장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정상회담 때 확인한 남북기본합의서상의 북방한계선이었다.
박선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이 최근 공개한 메모를 보면,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정상회담 직후인 11월29일 서울을 방문해 남쪽 관계자들에게 “선(엔엘엘) 얘기는 하지 말자. 선은 없다고 치고 하자는 것인데 국방장관은 선을 딱 전제로 주장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에 대해 백종천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은 “선은 머릿속에 없을 텐데 구역을 놓고 얘기하자. 남북이 구역을 다르게 내놓고 있으니 거기서 절충해야”라며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남북은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그해 12월 말 개성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위원회 제1차 회의를 열어,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2007년 정상선언을 사실상 불인정함으로써 추가 논의를 하지 못해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합의는 ‘사문서’가 됐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작품규격 : 12M(60cm x 40cm) 장 르 : 한국화(수묵담채) 창작년도 : 2008 작품규격 : 변형20호(68cm x 45cm 약13.7호) 장 르 : 한국화(수묵담채) 창작년도 : 2006 작품규격 : 12M(60cm x 40cm) 장 르 : 한국화(수묵담채) 창작년도 : 2008
작품규격 : 변형20호(70cm x 32cm 약10.2호) 장 르 : 한국화(수묵담채) 창작년도 : 2006 작품규격 : 변형20호(68cm x 33cm 약10.2호) 장 르 : 한국화(수묵담채) 창작년도 : 2007 작품규격 : 변형20호(67cm x 44cm 약12.9호) 장 르 : 한국화(수묵담채) 창작년도 : 2007 작품규격 : 변형20호(68cm x 44cm 약13.2호) 장 르 : 한국화(수묵담채) 창작년도 : 2007 작품규격 : 변형20호(70cm x 40cm 약11.9호) 장 르 : 한국화(수묵담채) 창작년도 : 2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