徹頭徹尾한 發心을 - 탄허스님

2013. 9. 19. 11:2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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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은 모두 죽은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이 붙고 말이 붙기 때문이다.
모든 생각과 말이 끊어진 이 자리는
팔만대장경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 徹頭徹尾한 發心을 - 탄허스님

 

 

수천 길 벼랑에서 떨어지다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는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禪家에서는 如來禪보다 祖師禪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지 않는가? 본래 청정하며 실다운 부처님의 마음자리를 堅實心이라 우리는 일컫는다. 견실심의 밑바닥까지 가서 이것을 완전히 보았을 때 비로소 조사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앙산이 향엄에게 “사제의 요사이 見處가 어떠한가?” 하고 물으니 향엄이 대답하기를 “내가 창졸간에 말할 수 없나이다”하고 하며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지난 해 가난은 가난하달 것 못되나 금년 가난이야말로 참된 가난이다. 지난 해 가난은 송곳 세울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송곳도 없네. 그러자 앙산은 “그대가 여래선은 얻었으나 조사선은 얻지 못하였네”하였다. 또한 옛날에 어떤 스님은 “내가 조사선을 얻었다”하니 다른 스님이 말하기를 “아직 멀었다”한다. 그러자 그 스님은 향을 피워 놓고 禪定에 들어 그 향이 다 타기도 전에 열반에 들었다. 그러나 후자의 스님의 하는 말이 “네가 앉아 죽고 서서 죽는 것은 마음대로 하되 조사선은 못 보았다”고 했다.

 

 

이와 같을진댄 八萬大藏經은 모두 죽은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이 붙고 말이 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각과 말이 끊어진 이 자리는 팔만대장경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방안에 들어 왔을 때 비로소 목적을 달성한 것이지, 대청이나 문 밖 바로 앞에 왔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중략)

 

 

여래의 本來淸淨心의 밑바닥을 보기가 심히 어려우나, 일단 發心을 하였으면 가다가 말겠다는 결심으로는 참된 진리의 바닥을 볼 수 없다. 진리의 나뭇가지를 붙잡은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손을 놓고 참된 진리 자리로 떨어져 죽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다시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 朱子는 “사람이 배를 타고 갈 때 온 몸뚱이가 물 속에 빠진 것이 되어야 옳다”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이 미혹하여 이같은 진리의 바닥을 향하여 매진할 용기를 같지 못해서 집에서 기르던 개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온 집안 식구가 찾아 나서지만, 자기 마음이 바깥 경계에 부딪쳐 잃어버렸을 때는 아무도 찾아 나서는 사람이 없다. (중략)

 

 

거울 안에 삼라만상이 비쳐질 때 우리 범부는 거울보다도 거기에 비친 相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거울에 비친 影像에 불과함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서 그 마음 거울의 본체를 깨닫고 그 밑바닥까지 철저히 찾고야 말겠다는 철두철미한 發心을 해야 할 것이다.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는 미모와 기예가 뛰어나서 그 명성이 조선천지에 널리 퍼졌다.

 

위의 시는 황진이의 대표적 시로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풍류명사(風流名 士)'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방법을 물었다.


이달이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오?” 하고 물으니 벽계 수는 “당연히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라고 답했다.

 이달이 말하기를

 “그대가 소동(小童)으로 하 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진이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 만체하고 일어나 말을 타고 가 면 황진이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吹笛橋)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일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벽계수가 그 말을 따라서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루에 올라 술 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탄 후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과연 뒤를 쫒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

위의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가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나귀에서 떨어졌다. 황진이가 웃으며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가버렸다.

벽계수는 매우 부끄럽고 한스러워했다고 한다.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 / 박상철


    거죽은 언젠가 늙고 허물어진다.
    그러나 중심은 늘 새롭다.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영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그런 빛이다.


    어떻게 늙는가가 중요하다.
    자기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중요하다.

    거죽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중심은 늘 새롭다.


    거죽에서 살지 않고
    중심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세월 속에서도
    시들거나 허물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