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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심지는 옳은 것은 옳다고 했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했다. 그 결과는 파직과 좌천으로 인한 이동이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강원도 삼척 천은사(天恩寺)의 소나무 그늘 자리를 만난 이후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눌러앉았다. 후학들이 위패까지 모셔놓은 숲 속 동안사(動安祠)는 700여 년 이상 누릴 만한 편안한 휴식처였다.
천은사 가는 길에 들렀던 준경묘· 영경묘 인근의 백두대간은 조선왕실의 탯자리답게 일등급 소나무인 황장목(黃腸木)으로 가득했다. 소나무는 ‘왕의 나무’였다. 경복궁 중수와 새 숭례문 복원에는 기꺼이 자기 몸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능참봉은 능 관리와 제사 준비 및 의전담당이라는 고유 업무와 함께 인근 소나무 숲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능을 관리하는 사찰인 천은사 스님들도 같이 힘을 보탰다. 아궁이 불 때던 시절, 넓은 면적의 수만 그루 나무를 지킨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능림(陵林)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찰림인 까닭에 행자들은 새벽마다 ‘담시역사(擔柴力士·나무를 지키는 수호신)’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 후 장작불을 지펴 밥물 끓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불볕더위는 무분별한 산림훼손과 이산화탄소의 과다한 배출이 겹친 결과라고 했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탄소량을 증가시키는 공범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부채의식의 틈을 비집고 어김없이 ‘녹색성장’ 참여를 독려하는 공익광고가 끼어든다. KTX동대구역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당신은 오늘 나무 8그루를 심었습니다”라는 글귀에 꽂힌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승용차로 올 때보다 기차로 오는 것이 탄소를 그만큼 덜 배출했다는 의미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무정차 통과차로에는 “하이패스는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안내문도 지구온난화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운전자를 위로해 준다. 실내온도를 2도 낮출 경우 연간 탄소 감축량은 소나무 7억 그루를 심는 효과와 맞먹는다는 신문기사 앞에서는 입이 딱 벌어진다.
산문 안의 경치를 가꾸면서 모범적으로 나무 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임제(臨濟·?~867) 선사는 “천하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시원한 그늘이 되리라(與天下人作陰凉)”는 한 그루의 말씀까지 덤으로 심었다.
어쨌거나 이번 더위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쓴 이산화탄소의 입장에선 참으로 억울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원철 한문 경전 연구 및 번역 작업 그리고 강의를 통해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하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