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원리를 알고 기도합시다

2013. 11. 28. 19: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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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원리를 알고 기도합시다

 

 

 ↑김용덕 ( 도일 )거사님 作

 

 기도의 원리를 알고 기도합시다 / 지운스님 (동화사 강주)
 

 

 기도는 수행이 아니다.

 
요즈음 기도를 수행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도와 수행은 염연히

그 성격이 다릅니다. 기도와 수행은 상보적이며 서로 병행할 수 있지만 수행이 기도이고

기도가 수행일 수 없습니다. 기도는 수행해 갈 때 마장을 만나거나 수행의 진전이 없을 때

불보살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기도가 그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로서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에게 부처되게 해달라고 기도드린다면 성취가

가능할까요? 기도는 단지 불보살을 신앙하는데 그칠 뿐입니다. 깨달음은 진리가 하나인줄

모르는 무지, 그리고 그 무지에서 파생하는 갖가지 번뇌를 타파해야 되는데 기도는

이 무명을 타파할 수 있는 기능이 없습니다.

 

무지는 내적 관찰이 필요하지만 기도에는 이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밖으로 불보살을 믿는 신앙(信仰)이 그 하나이고 내안에 부처의

성품이 있어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신심(信心)이 또 하나의 믿음입니다.

기도는 신앙적 측면이 강하다면 신심은 수행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은 업(行)을 닦는다(修)는 뜻입니다. 행이란 조건 지어진 모든 것, 또는 형성시키는 힘,

즉 업을 말합니다. 업에는 생각과 말과 행위의 세 가지가 있는데 생각은 업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즉 맹목적이고 선악의 윤리적입니다. 그러므로 한 생각이 반드시

행위로 이어지고 결과를 가져옵니다. 즉 한 생각이 윤리적이라면 그 생각에 이어 행위로

이어지고 숨넘어가는 순간에 일어나는 생각의 성격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래 없던 것을 만들어 실제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생각의 결과로 나타나는 말과 행동은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업은 자기 반성적이거나 반조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각 없이 대상에 반응하는 데로 의미부여하거나 다른 것과 결부시켜 감정과

생각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합니다. 특히 분노 우울 불안초조 억압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 속에 빠져 들 위험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삶이라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즉 창조적 삶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업의 진행을 중지시키고 감정과 생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그 본질을 꿰뚫어보는

방법은 기도에는 없습니다. 이는 수행만이 할 수 있습니다.

기도도 상중하로 나누어서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불보살님께 기도하여 불보살님의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서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현세이익적인

기도로서 일반적입니다만 이는 하급정도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불교신앙만이 아니라 주로 민간신앙과 기능신앙이고 기도사(祈禱師)와 산복(山伏)에

의해 행해지는 악마를 물리치고 복을 부르며 병을 치료하는 것 등에 이용됩니다.

사례를 들자면 잘 아는 도반스님에게 전화 한 통화를 받았습니다. 내용인즉슨 불전에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든 보살이 어느 날부터 절에 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하도 궁금해서

그 신도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제 절에는 다시는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불보살님에게 그렇게 기도드리고 공양올리고 했는데 어떻게 우리 큰 아들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을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도반이 저에게 하는 말이 만일 그 신도가

무상(無常)이라는 진리를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러한 미신적 기도에 집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불교교리강좌를 열어야겠다고 저에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앞의 예는 보편적으로 절에서 신도들도 하는 기도입니다. 하지만 불법학습이 되어 있지 않는

 기도는 매우 위험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도하면서 뭔가 보이기를 바라고

꿈에 무엇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기도는 기도의 참뜻을 왜곡하고 미신으로 빠질 수 있는

기도입니다. 왜 기도가 필요하고 기도의 원리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모든 것은 법문과 그리고 경전과 논서 공부를 통해서 체계적으로 배워야합니다.

특히 수행과 혼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법학습이 필수적이며 기도와 수행의 상호

관련성을 잘 이해하는 것이 불교 기도의 특성임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기도는 수행이 들어가 있는 기도가 불교적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죄를 참회하여 죄를 소멸하고 불보살님께 감사 보은 찬탄하는 등의

비공리적(非公利的)인 기도가 있습니다. 더러운 옷은 염색이 잘되지 않지만 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염색을 하면 그 옷에 염색이 잘되듯이 기도도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면서

 

기도한다면 불보살님과의 감응이 빠르고 소원성취도 빠를 수 있습니다. 이 기도의 특징은

밖으로 불보살과 연결시키는 기도의 매개체로 안으로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참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보살님과의 감응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이것이

중급수순의 기도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가서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고 불보살님의 명호를 반복적으로

외우고 부르는 방법은 이를 기도라고 하기 보다는 염불이라고 합니다. 염주 알을 굴리면서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는 염불방법에는 수행이 들어가 있습니다.

 

염불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고요함과 편안함이 옵니다. 이 선정의 깊이에 따라

아미타정토의 경우에는 하품 , 중품,  상품의 연꽃에서 화생하는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생들을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기원해주는 기도야말로

최상의 기도가 아닐까 합니다.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 행복은 사랑할 때 져며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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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사랑할 때가
가장 고귀하게 저며온다.
또한 사랑이 시작되는 시기가 가장 행복 하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다른 어떤 존재나 타인에 대한
순수한 기쁨에 중만했을 때이다.

진정한 용서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손을 내밀어 악수해 주고
다시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_루이제 린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