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5. 22:0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금강경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 덕민스님
② 선미(禪味)가 돋보이는 시(詩) 해설 / 덕민스님
아! 고향에 뼈묻는 여우보기 부끄럽네
<사진설명>
불국사 교육문화회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덕민 스님의 금강경 오가해 강의를
청취하는 스님과 재가불자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지난 시간에는 금강경 이해를
돕기 위한 기초 다지기로 청명절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두목의 시도 감상했습니다.
오늘은 두목의 시에 이어 청명·한식의 절기를 맞아 40년 동안 떠나 있던 고향을
밟은 초의선사의 귀향시, 그리고 선미(禪味)가 돋보이는 그 밖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금강경을 공부하기 전에 제가 여러분에게 선풍(禪風)의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금강경 이해에 접근하기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소동파의 편지글에는
‘사람들이 용(龍) 고기만 좋아하지 돼지고기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이는 평범한 돼지고기의 맛을 본 뒤에야 제일 귀하고 맛있는 용 고기의 참 맛을
알게 되는데, 용 고기만 먹어서 돼지고기 맛도 모르고 용 고기 맛도 모른다는 것을
지적한 말입니다.
금강경 공부도 튼튼한 기초가 필요한 것이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1) 귀향(歸鄕)
遠別鄕關四十秋 歸來不覺雪盈頭 원별향관사십추 귀래불각설영두
멀리 고향 떠나 어언 사십년
돌아와서야 머리에 흰눈 쌓인 줄을 알았네.
新基草沒家安在 古墓苔荒履跡愁 신기초몰가안재 고묘태황리적수
마을은 풀에 묻혀 집 있던 곳 사라지고
옛무덤엔 이끼 덮여 밟은 자취 서글퍼라.
心死恨從何處起 血乾淚亦不能流 심사한종하처기 혈건루역불능류
마음이 죽으니 한숨도 잦아들고
피마저 말라서 눈물도 흐르지 못하네.
孤更欲隨雲去 已矣人生愧首邱 고갱욕수운거 이의인생귀수구
외로운 지팡이 다시 구름을 따르고자 하니
아서라! 고향에 뼈를 묻는 여우보기 부끄럽네.
- 艸衣禪師 초의선사
〈보충설명〉
10대 초반에 출가한 이후, 초의선사의 40여년은 시간의 흐름을 초월한 수행기간입니다.
자신의 고향마을 신기(新基)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머리가 희어진 것도 알았겠지요.
고향의 정취, 추억이 어려 있는 집, 부모의 손을 잡고 거닐던 고묘의 길목이 흔적 없이
사라졌으니 마음이 죽고, 또, 마음이 죽는 극한의 정서에서 한숨도 눈물도 따라서
말라버렸겠지요.
이런 마음은 지극한 孝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 지극한 효심,
그리고 마음도 한숨도 눈물도 다 태우고 비운 자리는 곧 불심과 하나입니다.
수행자라 하여 효도를 잊은 채 주장자 하나 들고 다시 구름 향해 발길을 돌리니,
태어난 굴을 향해 머리를 돌리고 죽어가는 여우보다도 못하다는 탄식이 나왔나
봅니다.
마지막의 이 탄식은 효(孝)의 분위기가 짙어 초의선사와 교분이 있었던 추사선생은
수행미달의 스님들은 이 시를 읽고 통곡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乾: ‘건’字인데 말랐다는 뜻일 때에는 ‘간’으로 읽는다.
* 孤: 외로운 지팡이. 수행자의 단출한 살림과 지혜를 의미함.
* 隨雲: 수운, 즉 구름을 따라 감.
구름은 무심경계(無心境界)를 의미하며 수행인의 도반.
* 首邱: 수구,
즉 여우가 태어난 굴을 향해 머리를 돌리며 죽어가는 것을 일컬음.
* 已矣의 已: 여기서는 ‘末’의 뜻.
2)
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 자모수중선 유자신상의
자비로운 어머니 손길의 실 가닥은
길 떠나는 아들의 옷을 깁기 위한 것.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 림행밀밀봉 의공지지귀
벼슬길 멀어서 꼼꼼한 바느질
귀향이 더뎌질까 안타까워서라네.
誰言寸草心 報得三春輝 수언촌초심 보득삼춘휘
어느 누가 어린 풀의 마음으로
햇빛 가득 쪼여주는 봄날의 은덕을 갚을까?
- 孟郊 맹교
〈보충설명〉
중당(中唐)의 맹교는 효행이 지극하여 부모님 봉양을 위해 벼슬도 물리쳤습니다.
그러다가 살림이 궁핍해져 쉰 살에 이르러 부모를 남기고 현령이란 벼슬길에
나섰습니다. 이 詩는 벼슬길 떠나는 아들을 위해서 옷을 짓지만 완성을 미루고
꼼꼼히 자꾸 꿰매기만 하는 어머니를 보고 지어드린 것입니다.
* 意恐: ‘아마도’의 뜻.
* 寸草心: 손가락 한 마디 만큼 작은 풀포기. 미미한 아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
* 報得三春輝: 부모의 은혜가, 풀잎에 쬐는 봄볕 같이 무량하여 다 갚을 수 없다는 뜻.
3)
尋張氏隱居 심장씨은거
은거중인 장씨를 찾아
春山無伴獨相求 伐木丁丁山更幽 춘산무반독상구 벌목정정산갱유
봄 산을 짝 없이 홀로 오르는데
나무 찍는 산울림에 산이 더욱 깊어라.
澗途餘寒歷氷雪 石門斜日到林丘 간도여한역빙설 석문사일도림구
시냇가 오솔길에 남은 얼음 밟고 가다
돌문에 노을 빗길 때 임구 땅에 닿았네.
不貪夜識金銀氣 遠害朝看鹿遊 불탐야식금은기 원해조간록유
탐내지 않으니 어둠 속에 금은의 기운이 드러나고
해칠 생각 꺼리니 아침마다 사슴무리 놀러오네.
乘興杳然迷出處 對君疑是泛虛舟 승흥묘연미출처 대군의시범허주
도의 흥을 타니 돌아갈 길 아득해지고
그대 얼굴 마주하니 텅 빈 배를 띄우겠네.
- 杜甫 두보
〈보충설명〉
봄이 짙어가면서 석굴암 저의 방에도 새들이 점점 많이 지즐거리며 놀다가곤 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낯선지 곁에 오려면 눈치를 살폈는데, 모이도 뿌려주고 가까이
지내자고 달래니까 마음을 열어 노래도 불러주고 짝들도 데려오곤 합니다.
산새들이 봄이면 짝을 찾듯이 산중 스님들도 봄이 되면 도반을 찾아 탁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는 두보가 은거 중 벗, 장씨를 수소문하여 찾아간 내용의 시입니다.
탐욕스럽고 거친 마음이 엿보이지 않아서 어둠 속에서도 금은의 기운이 느껴지고
사슴무리가 도반이 되어주는 장씨의 마음은 곧 두보의 마음입니다.
이 시의 제3연, 제4연은 ‘도(道)의 마음’이라 하여
두보가 시성(詩聖)이란 별호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 丁丁: 나무 찍는 소리를 표현하는 한문의 의성어.
텅 빈 공간에 나무 찍는 소리가 쩡쩡 울린다는 것은 진공묘유.
* 간도여한역빙설: 간도는 산길과 계곡이 겹쳐진 상태이며,
여한역빙설은 추위가 남아 얼음과 눈이 덮인 길을 밟고 지나가는 상태.
* 불탐야식금은기: 무욕(無欲)에서 얻는 만족의 세계를 표현한 것.
* 승흥묘연미출처: 도심의 흥에 겨워 하산하여 세속으로 돌아갈지
산중에서 눌러 살아야할지 묘연하다는 뜻.
* 대군의시범허주: 장씨를 마주하면서 마음이 텅 비워짐을 느끼는 상태.
빈 배가 물결 따라 흘러가다가 다른 사물과 부딪쳤을 때 빈 배를 향해 부딪친다고
화내는 경우는 없을 거라는 장자의 허주장(虛舟章)을 인용한 내용.
4)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인종교상과 교류수불류
석굴암 요사체에 걸려 있는 부대사의 글입니다.
다리 위를 지날 때 물이 흐르지 않고 다리가 흘러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지은 시구(詩句).
물의 흐름은 시간적 개념이고 다리는 공간적 개념입니다.
도(道)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한 모습으로 어울려 꿰어졌기 때문에
고정관념이란 제약에 걸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5)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정좌처차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
선수행(禪修行)과 불법(佛法)에 조예가 깊었던 송나라 황산곡의 글입니다.
고요히 앉아 참선하는 곳(공간)에서는 차를 마시고 반나절이 지나도록
그 향기가 한결같이 그윽하고, 허공처럼 순수하게 마음을 쓰는 때(시간)에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듯 진리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茶半香初’를 ‘차를 반잔 마셨는데 그 향기는 처음과 같다’
라고 새깁니다.
뒷구의 水流라는 시간개념과 대구(對句)가 되려면 ‘半’을 半日窓이란 공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반나절 창이란 곧 차를 마시고 반나절이 흐르도록 선방에
앉았는데, 그 충족된 삼매의 경지가 처음이나 나중이나 똑 같다는 말입니다.
이는 부처님이 설산에서 6년 동안 고행한 모습이고, 달마가 소림에서 9년 동안
면벽한 모습입니다.
정좌처, 묘용시의 금강심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눈을 지그시 감고 선열에
젖어든 석굴암 부처님 모습은 정좌처의 모습(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고,
동서양 남녀노소, 유정·무정의 모든 중생들을 향해 감로를 내려주려 설법하고
계시는 불국사 대웅전의 부처님 모습은 묘용시의 모습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이라 이해해 보십시오.
2004.06.29 13:00 입력 발행호수 : 761 호 발행일 : 200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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