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하고 있을 때 그냥 行하라 / 숭산스님

2014. 3. 12. 20:2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728x90

무엇인가 하고 있을 때 그냥 行하라  / 숭산스님



중국말로 法華經은 ‘실상묘법경(實相妙法經)’이라고 부른다

.


實相은 ‘참’이라는 뜻이고
妙法은 ‘신비한 법문’이라는 뜻이다.

‘참으로 신비한 법문’이라는 뜻이다.
法華經은 어떻게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무한대의 시간과 공간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법화경은 완벽한 정적의 마음을 얻는 것에 대해 가르친다.


사실 이것들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레 얻어야 할 것들도 아니다.
그러나 한 생각이 일어나면 우리는 本來 마음을 잃어버린다.

내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여러분의 마음을 휙휙 훑고 지나가는
망상들을 좇으면 여러분과 나는 완벽하게 분리된다.
그러나 모든 생각을 끊어서 단지 이 말을 듣고 있는 것으로 돌아오면

완벽하게 우리는 하나가 된다.


생각에 대한 執着을 끊으면 내 말과 여러분의 듣고 있는 귀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 둘이 아니요,
그것이 이미 부처님이고 예수님이다.
이것은 한국 사람만 경험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나 독일, 중국 사람만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남자만 경험하는 것도, 여자만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때때로 이것을 ‘원점(primary point)’이라고 부른다.
몇 년 전 파리에 있을 때 프랑스 신부님들이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불교와 기독교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얘기가 끝나갈 무렵,
일행 중 하나가 전날 나의 법문을 듣고 의문이 생겨 밤을 꼬박 세웠다고 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선사님께서는 ‘원점(primary point)’이 무한대의 시간과 공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원점과 하느님의 창조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나는 그때 지금처럼 법상을 ‘쿵’쳤다.
그게 전부였다.
몇 초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그 신부님은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하느님의 창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테이블을 치는 것은 생각 이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부처님 이전입니다.
우주 이전입니다.
하느님의 창조 이전입니다.

 
당신이 그 지점을 볼 수 있다면 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부님이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당신은 신을 볼 수 있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신부님이 입고 계신 셔츠가 까만 색이군요.”

법화경은 ‘쿵!’ 바로 이 지점이 어떻게 우리의 본성이고

모든 현상의 본질인지 깨닫게 해준다.


또 이 경지를 완벽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이 미래 생에 부처가 될 것이라고 한다.
아주 재미있는 대목이다.
그것은 어떤 다른 생에서 깨달음을 얻으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다음 생은 실제 다음 생이 아니다.
이것은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을 어떤 단어로 설명하기 위해

나온 구별일 뿐이다. 실제 우리는 바로 지금,
바로 이 장소가 아닌 때에 부처가 되지 못한다.
어떤 다른 장소, 어떤 다른 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부처가 되고 싶으면 단지 수행하면 된다.
바로 지금 수행한다면 ‘다음 생’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된다.
‘쿵!’여러분은 단지 이 순간을 가질 뿐이다. ‘다음 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 뭔가를 하겠다’는 마음이 이미 부처의 마음이다.

부처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래의 어느 순간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안과 밖이 없이 주체나 객체가 없는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말한다.
오직 修行하라. 그러면 부처가 된다.

일본 일련종 (日蓮宗)의 추종자들은 〈나무묘법연화경〉을 암송한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이것이 일본의 법화경 제목이다.
그들은 이 주문을 열심히 외우면 아름다운 집과 훌륭한

아내를 얻는다고 믿는다.
그 어떤 것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것은 마치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다해주는 도깨비 방망이의 진언 같다.
그런 수행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한마음’을 유지하는 것일 뿐이다.

뭔가 얻고 싶다면 이것이 좋은 방법이지만


그러나 올바른 불교 공부나 참선 수행은 어떤 것도 원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나무묘법연화경 뿐만 아니라 모든 진언 수행의 최종 목표이다.
어떤 종류의 진언도 똑같다.
심지어 ‘코카콜라, 코카콜라, 코카콜라’하고 계속 열심히 외우더라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공의 마음을 유지할 것인가?

 
그것이 절대의 상태이며, 우리가 원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원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근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
근본 원인이 제거되면 우리의 환경이 바뀌어 좋은 결과를 얻는다.
고통도 변할 것이고 그러면 자비심과 행복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연기의 가르침이다.
그러면 어떻게 근본 원인을 제거할 것인가.
단지 하나의 마음을 가지면 된다.

 

뭔가를 할 때 그냥 행하면 된다.
단지 그냥 하면 된다.

이 그냥 행하는 마음에는 주체도 없고 객체도 없다. 안과 밖이 하나가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우주 에너지와 연결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원점이라고 부른다.
원점을 유지하면 차츰 근본 원인이 사라진다.
생각이 단지 원인을 만들뿐이다.


생각을 끊으면 근본 원인은 태양열에 증발하는 물처럼 자연스레 사라진다.
열심히 수행하면 이것은 매우 쉽다.
그러나 자꾸 생각을 하면 그것은 우리의 업을 만들고
업은 태양은 가려 결국 근본 원인인 물은 증발할 수 없게 된다.
어떤 수행을 하든지 커다란 의심을 가지고 그냥 행하라.

노력하는 마음과 오직 한가지의 의문을 가지면
어떤 종류의 수행이든 본성을 얻는데 도움을 주며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뭔가를 하고 있을 때 그냥 행하라. 이것이 법화경의 핵심이다.

 



2004년 11월 30일 오후 5시 15분 숭산스님께서 세수 77세

법납 57세로 원적에 들었습니다.
숭산스님은 별도의 임종게를 남기시지 않으셨으며,
원적을 앞두고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큰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저희는 어찌해야 합니까"
제자들의 물음에 숭산 행원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萬古光明이요, 靑山流水니라" 

 

 
1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은
가슴에 담아놓기만 해도 좋다

차를 타고
그가 사는 마을로 찾아가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아도
나의 가슴엔 늘
우리들의 이야기가 살아 있고

그는 그의 마을에서
나는 나의 마을에서
조용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어쩌다 우연한 곳에서
마주치기라도 할 때면

날마다 만났던 것처럼
가벼운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는 악수를 쉽게도 해야겠지만
좋은 사람을
가슴에 담아놓은 것만으로도
우리들 마음은 늘 아침이다
 

- 노여심의《좋은 사람》(도종환 엮음의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 중에서 -
 
 
 
2
다시 오는 봄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 도종환의 시〈다시 오는 봄〉중에서 -


* 옹달샘에도봄이 오고 있습니다.
얼었던 땅에는 파릇한 기운이 돌고
생강나무, 진달래, 목련은 도톰한 꽃망울로
이미 봄을 맞고 있습니다. '아, 내 생전에
이 봄을 몇 번이나 맞을까' 생각하니,
어김없이 다시 오는 봄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집니다. 
 
- 고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