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스님의 오도송과 열반송

2014. 3. 6. 10: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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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산 스님의 깨침과 보림



하동산 스님은 일상생활에서 좌우명으로 감인대(堪忍待) 즉,

“견디고 참으며 기다리라”라는 글귀를 좋아하시고 불자들에게 많이 써 주셨다.

1927년 원효암에서 내려와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정진하고 계실 때였다.

스님은 선원 동쪽에 있는 대나무 숲을 평소에도 유난히 좋아하시어 방선시간이면

자주 그곳을 거닐었다.

7월 5일, 그날도 방선시간에 대나무숲을 거닐다가 바람에 부딪치는 댓잎 소리를 들었다.

늘 듣는 소리건만 그날의 그 댓잎 소리는 유난히 달랐다.

실은 소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르게 들렸던 것이다.

스님은 그 순간 활연히 마음이 열렸다. 그간의 가슴속 어둠은 씻은듯이 없어지고

수천 근의 무게로 짓누르던 의심의 무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 것이다.

스님은 그 순간을 “서래밀지(西來密旨)가 안전(眼前)에 명명(明明)하였다”라고 하셨다.

다음의 글은 그때의 그 소식을 표현하신 오도송이다.

 

書來畵去幾多年 그리고 그린 것이 몇 해던가

筆頭落處活描兒 붓끝이 닿는 곳에 살아 있는 고양이로다

盡日窓前滿面睡 하루종일 창 앞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夜來依舊捉老鼠 밤이 되면 예전처럼 늙은 쥐를 잡는다.

 

의사의 꿈을 버리고 진리를 궁구하여 출세간의 장부로서 만중생들을 고해로부터

건지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전국의 선지식을 찾아 헤매인지 어언 15년이 지나고서

이제 그 쉴 곳을 찾은 것이다.


곧바로 스승 용성 스님을 찾아가서 이 벅찬 사실을 말씀드렸다.

용성 스님은 흔연히 인가를 해주시고 자신의 법맥이 사자상승됨을 크게 기뻐하시었다.

범어사 동쪽 대나무숲에서 오도의 인연이 있은 후 스님은 그 대밭을 특별히

아끼시고 직접 돌봤다. 죽순이 나는 계절에는 혹시 사람들의 손이라도 타지 않을까

하여 자주 들렀다.

스님은 별호를 스스로 순창(筍窓)이라고까지 지어서 쓰셨다. 오늘도 그때의 그

자리에는 큰스님의 화신인양 사리탑과 비석이 묵묵히 지키고 서 있다.

참으로 큰스님과 대나무숲은 숙세의 지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중국 향엄 스님은 돌로 대나무치는 한 소리에 몰록 깨닫기도 했다.


댓잎소리를 듣고 크게 깨달은 스님께서는 2년 후 보림을 위한 정진의 고삐를

늦추지 아니하였다. 보림(保任)이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자신의

깨달은 바를 잘 보호하고 깊이 간직한다는 뜻이다.

이 해에 범어사 조실이 되었고, 참선납자들을 제접하였다.


이듬해 3월 15일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첫 보살계를 설하였는바, 깨달음을 얻은 후

보림과 보살도 실천으로 성불제중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하동산 스님은 오도후 대처승 등 친일승려와 싸우고 청담ㆍ효봉ㆍ금오 스님 등과

더불어 불교정화에 나서며 결국 한국정화불교의 중흥조가 되었고, 그 문하에

해인사 백련암으로 처음 찾아온 성철 대종사(1935년 음력 4월 15일 출가 득도)를

시작으로 광덕ㆍ지효ㆍ능가ㆍ지유ㆍ종산ㆍ월문ㆍ진경ㆍ보성ㆍ인환ㆍ초우ㆍ벽파ㆍ

자운ㆍ정관ㆍ무진장 스님 등 130여명 상좌제자를 비롯 기라성 같은 고승 대덕을

배출했으며, “설법제일 하동산”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동산 대종사의 법회는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무리 가난한 절도 동산 대종사가 한번 다녀가고 법회를 열기만 하면,

“3년 먹을 양식이 들어온다”고 할 만큼 “복을 몰고 다니는 큰스님”으로

4부대중의 추앙을 받았다. 하동산 대종사는 1936년 범어사 대원암에서

용성 대선사로부터 지리산 칠북계맥을 이어받는 전계증을 받게 된다.


생로병사는 모든 사람이 겪는 과정이다. 본래 진여문에 생사는 없는 것이지만!

1965년 음력 3월 23일 오후 6시 지혜와 자비와 용기를 갖추시고 생불소리를

듣던 하동산 스님은 계전 수좌가 지키는 가운데 여여하게 본래 자리로 돌아가셨다.

한국 불교계의 큰별이 사라지면서 대적삼매(大寂三昧)에 드신 열반이었다.

 대종사의 나이는 76세요, 법랍은 53년이었다.

당일 평일과 다름없이 새벽 예불, 정진, 도량청소를 하고 점심공양 후 약간

피로한 기색을 보이시더니 제자들을 불러놓고 종단의 앞날을 염려하시면서

“방일 말고 부디 정진에 힘쓰도록 하라”라고 하시고 아래의 열반송을 남겼다.

 

元來未曽轉  원래 일찍이 바꾼 적이 없거니

豈有第二身  어찌 두번째의 몸이 있겠는가

三萬六千朝  백년 3만6천일

反覆只這漢  매일 반복하는것 다만 이놈뿐일세.


하동산 대종사의 열반소식을 접하고 황망히 달려온 스님들이 2천명에 달하였고,

신도들은 줄잡아 3만여 명이나 되었다. 가히 하동산 큰스님의 거룩한 족적과 크신

덕화가 그렇듯 많는 사람들의 흠모와 추앙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할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이청담 스님은 이날 동산 큰스님의 덕화를 기리는 조사를

바쳤으며, 그 조사를 접하는 수많은 대중들 또한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빌며

눈물을 떨구었다.


큰 법당이 무너졌구나!

어두운 밤에 횃불이 꺼졌구나!

어린 아이들만 남겨두시고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셨구나!

동산이 물 위에 떠다니니

일월이 빛을 잃었도다

봄바람이 무르익어

꽃이 피고 새가 운다.


ㅡ 근간 <누가 불두에 황금똥 쌌나>(고준환 저) 중에서

  

lotus8님이 촬영한 Upside down shell.

첨부이미지 

 

그 날이 오면 
                                          -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鍾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散散)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