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3. 18:0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 법륜스님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밖으로부터 오는 줄 착각하고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구하지만 끝내 얻지 못한다.
그것은 안심입명의 도는 밖으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 어떤 괴로움일지라도
안으로 살펴보면
그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다 마음 가운데 있고
그 마음의 실체가 본래 공한 줄 알면
모든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
옳다 그르다 모양 짓고
그 모양에 집착해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든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진다.
오늘 우리들의 고뇌 중 하나는 괴로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속박입니다.
이 둘은 합해서 고(苦)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를 열반,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를 해탈이라고 하지요.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를 행복, 속박이 사라진 상태를 자유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자유와 행복을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행복이 열반이고 완전한 자유가 해탈입니다.
우리는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이 밖에서부터 오는 것 같고,
남이 나를 얽어매고 괴롭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밖으로부터 오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다는 말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괴롭다고 할 때 “왜 괴로우냐?”고 물어보면
“저 사람 때문에, 저것 때문에, 뭐가 안 되기 때문에 괴롭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괴로움이 밖으로부터 온다는 얘기입니다.
‘누구 때문에, 뭣 때문에’ 이 말은
그 사람이나 일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때 내 마음대로 고칠 수 있다면 괴로움이 사라지겠지만
문제는 내 힘으로 고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종교가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이 종교가 더 좋을까? 저 종교가 더 좋을까? 하느님이 더 능력이 있을까?
알라가 더 힘이 셀까? 부처가 더 신통력이 있을까? 산신이 더 힘이 세나?’
이렇게 비교하면서 자기 마음에 드는 종교를 찾아 여기저기 다닙니다.
같은 불교라도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중 누가 더 내 문제를
잘 해결해 줄까?’ 하기 때문에 지장전에서 기도하다 관음전에 가서도 기도하고,
또 산신각에서도 하고, 신중단에 가서도 하고, 안 되면 굿도 하는 겁니다.
답답하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이 약 저 약 다 먹어보듯이
우리가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저절 찾아다닐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밖으로 찾아 헤매서는 우리가 바라는 행복과 자유를 끝내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안심입명의 도는 밖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밖으로 찾아서는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는 해탈 열반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일어난 어떤 괴로움 일지라도
즉, 아무리 어렵고 힘든 문제라도 원인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안으로 돌이켜서 보면
금방 문제의 본질을 알 수가 있어요.
안으로 살펴보면 괴로움의 뿌리는 다 내 마음 가운데에 있고
그것은 어리석은 마음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어리석은 마음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의 실체가 본래 공한 줄 알면 모든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 옳다 그르다 모양 짓고
그 모양에 집착해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듭니다.
한 생각에 사로잡혔다는 말은 주관이 객관화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상태를 말 합니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면 누가 뭐라고 해도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안 들어옵니다.
이럴 때는 오직 한 가지밖에 없어요.
“네가 잘했다. 네가 맞다.” 이렇게 편들어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귀에 안 들어오고 눈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 수행이라는 말을 꺼내면
“수행 좋아하시네. 그렇게 좋으면 너나 실컷 해라.” 하면서
수행에 진절머리를 내고 수행에 ‘수’ 자도 듣기 싫다며 가 버립니다.
원수처럼 홱 돌아설 때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왜 그러냐면 이미 자기의 주관을 절대적인 진리로 객관화 시켜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관이라고 하더라도 주관인 줄 알면 이것은 깨어날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자기가 빨간색 안경을 쓰고 벽을 보면서
“내 눈에는 빨갛게 보인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주관을 주관으로 아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는 파랗게 보인다” 하면
‘나는 빨갛게 보이지만 그 사람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구나’ 하고
인정하기 때문에 서로 다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관을 객관화시킨 사람은 ‘내 눈에 빨갛게 보인다’가 아니라
‘저 벽이 빨갛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저 벽은 파랗다’고 하면
‘눈이 삐었나? 어떻게 저 벽이 파랗게 보이냐?’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고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옳기 때문에 옳다고 합니다.
그래서 “네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아라.”고 말하면
겉으로는 마지못해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참회합니다.” 말하면서도 뒤돌아서는
아니야, 그래도 내가 옳아. 고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옳은 거야.’라고 하지요.
그런데 고집 센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자기가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고집이 좀 셉니까?”라고 되묻는 그 사람은 그래도 고집이 좀 덜 센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집은 무슨 고집” 하는 사람을 보면 대개가 황소고집입니다.
그래서 황소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자기가 고집이 센 줄을 모릅니다.
사실 몰라야 황소고집이 되지 알면 황소고집이 될 수가 없어요.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다가도
‘어, 내가 고집을 피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그 순간 고집을 내려놓게 됩니다.
술 취한 사람한테 물어봐도 자기가 술 취했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술은 왜 취해. 정신이 말짱하단 말이야.” 하며 몸을 비틀거리면서
혀 꼬이는 소리를 하지요.
오히려 “내가 좀 취했나?” 말하는 사람은 아직 정신이 좀 있다는 얘기에요.
그리고 남자와 여자 중에 고집이 누가 더 셀까요?
대체적으로 여자가 더 고집이 셉니다.
남자는 목소리만 크지 별로 고집은 세지 못해요.
그런데 여자는 자기가 옳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다가
남자가 강압적으로 큰소리를 치면 ‘그래, 네가 옳다고 해라.’ 하면서
속으로는 ‘미친 놈’ 하면서 아예 상대를 안 해 버립니다.
‘아이고, 모르면서 잘난 척 하기는… 내가 너 같은 인간이랑은 말도 안 한다.’ 하고는
다음 날부터 입을 꽉 다물어 버리지요.
그러면 남자들은 여자가 진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실은 ‘너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다.’라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거예요.
이게 황소고집이에요.
그래서 남자는 여자가 잔소리 할 때도 화가 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더 화가 나는 거예요.
또 고집은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더 셉니다.
착한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착한 사람은 항상 ‘자기가 옳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내려놓기 어렵습니다.
주위사람들이 항상 착하다고 인정을 하기 때문에 자기의 그릇됨을 감히 상상할 수가 없는 거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옳다는 생각이 강해서 고집을 부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생각에 사로잡혀 옳다 그르다 모양 짓고
그 모양에 집착해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듭니다.
‘내가 보기에’가 아니고 이미 객관화시켜 자기가 이미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정해 버린 것입니다.
이때 한 생각 돌이켜서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대로 ‘원리전도몽상’ 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집니다.
괴로움과 속박도 내가 만들어낸 굴레입니다.
이 굴레를 벗어나는 길은 문제의 원인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고
그것 또한 실체가 없는 것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 점을 명심하시고 정진하여 행복과 자유를 얻기 바랍니다.
사랑이라는 말
학생1 ; 선생님괜찮으세요? - 오전 9:10 28
학생2.; 조끼 입으셨나요 - 오전 9:10 28
담임쌤 ; 응!!! 입엇어~ - 오전 9:11 28
담임쌤 ; 얘들아~ 움직이지말고 가만히 잇어~ ...
조끼 입을수 있음 입고.. - 오전 9:13 28
학생3 ; 네 - 오전 9:16 29
학생3 ; 애들아 살아서 보자 - 오전 9:16 29
살아서보자~ - 오전 9:16 29
학생4 ; 전부사랑합니다 - 오전 9:22 31
학생3 ; 여러분사랑합니다 - 오전 9:28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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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있던 절명의 순간,
단원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주고받은 카톡문자다.
전부 사랑한다,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저 문자가,
사랑이라는 말이 사무치는 아침이다.
그래, 애들아 사랑의 힘으로 제발 살아서 보자.
- 무사하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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