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무엇인가 / 숭산스님 법어 법문 19

2014. 4. 30. 17: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728x90

부처가 무엇인가 / 숭산스님 법어 법문 19

 

 

19.

 

보통 불교에 입문할 때, 우리는 오직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믿는다.

“아! 나는 부처님을 사랑합니다. 부처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불보는 부처님에 대한 우리의 감성적인 경험을 영적인 수행과 연결시켜 깨달음으로 향하는 것이다. 영적인 수행을 계속하면 생각은 더욱 안정되고 맑아져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과 생각이 점점 균형을 찾아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균형이 잡히면 고통이 사라지고 행복이 찾아온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좀더 분명하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냄새 맡으며 맛보고 느낄 수 있게 되며,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움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푸르고 개가 짖는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경험하게 된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아름답다.

 
어느 날 한 스님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 운문(雲門) 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화장실에서 나오던 운문 스님이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스님의 눈은 똥을 치울 때 쓰는 긴 나무막대기와 마주쳤다. 그러자 운문 스님은 “마른 똥막대기이다”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진리란 바로 그런 것이다. 바로 순간 순간의 삶, 이것이 불보이다. 불보에서 얘기하는 아름다움이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생각이 끊어질 때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바깥의 모양이나 형태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파리에 있을 때 제자 한 사람이 아주 수준 높은 박물관 회화전에 나를 초청한 적이 있었다. 전시회에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유난히 화제가 되는 예술 작품이 하나 있었다.
그날 전시회에 구경왔던 많은 사람들은 그 앞에서 환성을 내지르며 떠날 줄을 몰랐고, 다들 멋있고 아름답다고 이구동성이었다. 박물관 측에서도 그 작품을 걸어놓기 위해 큰돈을 지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에 멀리서 그것을 보았을 때 도대체 무엇을 표현해 놓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그 작품은 액자 안에 낡고 헤진 양말 한 켤레를 걸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이게 뭐야. 도대체 이 헌 양말 한 켤레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언뜻 보면 하찮게 보일 수도 있으련만, 사람들은 왜 저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잠시 후 나는 왜 사람들이 그 작품에서 그토록 큰 감명을 받는지 깨달았다 다름아니라 그 양말 속에는 한 인간의 고단했던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양말의 주인은 저렇게 양말이 해어지고 닳도록 걸어다녔을 것이다.
한 인간의 수많은 고통의 흔적들이 헤진 양말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고, 이 양말 작품은 바로 그 점을 시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작품에는 우리가 소홀히 하는 우리네 일상의 삶이 그대로 있었다. 액자에 걸린 양말 자체는 낡고 더러웠지만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아주 아름다웠던 것이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마른 똥막대기이다.”
운문선사는 바로 이 양말이 담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의미를 가르치신 것이다.

아름다움이 이처럼 겉모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진정한 아름다움은 ‘움직이지 않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산스크리트로 그것은 ‘사마디(samadhi)’, 즉, ‘삼매’라고 부른다. 우리의 본성(本性) 혹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란 뜻이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면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이나 풍경이 나타난다 해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법이다.

예를 들어, 화가 나 있거나 슬프거나 기가 죽어 있으면 창밖에 새들이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한다 해도 단지 시끄러운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감정 혹은 외부의 조건에 집착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이나 외부의 조건은 항상 일정하지 않아서 언제나 변하게 마련이며, 그때마다 중심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추하게 보이며, 마음속이 분노로 가득하면 칭찬조차도 욕으로 들리게 마련이다. 맛있는 음식을 보아도 침이 넘어가질 않는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 움직이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삼매의 본래 의미이다. 앉아있든, 서있든, 누워있든, 운전을 하든, 누군가와 얘기를 하든 단지 ‘그것을 할 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는다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볼 수 있다. 그런 때야말로 일상에서의 모든 것이 진리이다. 온 우주가 이미 그 자체로 진리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움이다. 마음이 중심을 잡고 있으면 믿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을 때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것이며, 이 세상이 이미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