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칠불(過去七佛)설의 성립 배경/마성스님

2014. 5. 21. 17:0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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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페에서는 빠알리어가 깨져 나타나기 때문에 마성스님의 블로그 본문을 읽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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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칠불(過去七佛)설의 성립 배경

 

마성/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2014.05.19

 

 

과거칠불에 관한 성립 배경에 대해서는 붓다시대의 종교사상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원전 6세기 정통 바라문 사상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신흥 사상가였던 사문 그룹에서 자이나교의 개조였던 니간타 나따뿟따와 사캬무니 붓다는 당대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두 종교의 조직이나 운영 체제 등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니간타 나따뿟다가 사캬무니 붓다보다 12년 정도 선배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출신 성분과 행적도 거의 비슷하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자이나교의 제도를 불교가 모방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자이나교에서 먼저 여성을 출가시켰다. 그것을 본 붓다는 그 병폐를 막기 위해 팔경법을 제정하고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게 되었다. 불교의 칠불사상도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임은 말할 나위없다.

 

니간타 나따뿟따(Niga??ha N?taputta)는 자이나교의 개조 마하위라(Mah?v?ra)를 불교도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니간타(Niga??ha, 속박을 벗어난 자)라고 하는 것은 그 이전에 존재하였던 종교적 단체의 명칭이며, 나따뿟따(N?taputta)는 나따(N?ta)족 출신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본명은 왓타마나(Vattham??a, Vardham??a, 增長, 번영하는 자)인데, 크게 깨쳤으므로 마하위라(Mah?v?ra, 大雄, 위대한 영웅) 혹은 지나(Jina, 勝者, 수행을 완성한 자)로 존칭되고 있다. 그의 가르침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자이나(Jaina)라고 부른다. 그는 붓다와 같은 시대 왓지(Vajji)의 웨살리(Vesal?) 부근에서 왕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32세에 출가하여 사문이 되어 12년간 고행한 끝에 마침내 완전지(完全智)를 얻었으며, 그 후 30년간 교화활동을 하다가 72세에 입멸했다.

 

니간타 나따뿟따는 자신이 자이나교를 최초로 개창한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있던 니간타의 전통을 계승한 자라고 했다. 이를테면 자이나교의 중흥조라고 자처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교설에 대한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자기 자신이 최초로 자이나교를 창시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니간타의 제22대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니간타의 영향을 받아 붓다도 자신이 불교의 개조가 아니고, 그 이전에 이미 여섯 명의 붓다(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루손불, 구나함불, 가섭불)가 있었다고 말하게 되었다. 불멸후에는 제자들이 석가모니불까지 포함시켜 과거칠불이 있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붓다가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이루고 다섯 고행자들을 교화하기 위해 바라나시로 가는 도중에 아지비까 교도였던 우빠까(Upaka)를 만났지만, 그는 붓다의 말을 믿지 못하고 수행하다가 정신 착란을 일으킨 사람으로 취급해 버렸다.

 

인지가 발달하지 않았던 기원전 6세기에 붓다의 사성제나 연기법을 그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붓다는 그 연기법은 내가 발명한 것이 아니고 발견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그 길(팔정도)을 따라가기만 하면 옛 궁전(열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인도에 과거불의 스뚜빠(st?pa, )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은 과거불을 추모하기 위해 후대에 조성한 것일 뿐, 실제로 과거불이 실존했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자이나교의 과거 니간타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자신의 교설이 틀림없는 진리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이해해야만 한다.

 

처음 불교가 서양에 전해졌을 때 이와 같은 과거불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 아님을 알고, 사캬무니 붓다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896년 퓨러(A. F?hree)가 네팔 타라이 지방의 룸민디에서 발견한 아쇼카 왕의 석주(石柱)를 발견함으로써 사캬무니 붓다가 역사적 실존인물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석주에 여기에서 불타 석가모니가 탄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1910년 헤르만 올덴버르그(Heramann Oldenderg)가 <The Buddha(붓다)>라는 책을 발행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캬무니 붓다가 실존인물이었음이 서양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20세기 초반까지 붓다가 실존 인물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하물며 기원전 6세기에는 어떠했겠는가? 그래서 붓다도 자신의 가르침을 믿지 못하는 우매한 대중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과거 붓다들이 나와 똑같은 법을 설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교설이 바로 불교의 정의로 알려져 있는 칠불통계게(七佛通誡偈)이다.

 

모든 악을 삼가고 선을 행하며,

자기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깨달은 이들의 가르침이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sabbap?passa akara?a?, kusalassa upasampad?,

sacittapariyodapana? eta? buddh?na s?sana?.)”

 

이렇게 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려고 했던 붓다의 간절한 염원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어떤 붓다가 이 세상에 출현하여 법을 설하더라도 위의 가르침 외에 더 무엇을 설할 수 있겠는가? 이 속에 붓다의 모든 가르침이 함축되어 있는데 무슨 군더더기를 더한단 말인가?

 

진흙속의연꽃은 91겁 혹은 수십억 겁 전에 비바시불 혹은 시기불이 출현하여 직접 법을 설한 것으로 믿고 있다. 니까야에 쓰여 있으니까 진짜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경전에 기술되어 있는 것을 글자 그대로 믿으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경전의 내용은 모두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기 위해 동원된 대기설법(對機說法) 혹은 응병여약(應病與藥)임을 모르면, 불설(佛說)이 곧 마설(魔說)이 되고 만다. 사캬무니 붓다의 가르침도 시대적 산물(産物)이다. 이 단순한 사실 자체를 모르면 끝없는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붓다의 가르침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마성스님 - 팔리문헌연구소장

 

 

 ♤ 죄(罪)와 벌(罰) ♤


作罪於昭 人責及之 作罪於闇
작죄어소 인책급지 작죄어암

鬼誅襲之 昭闇俱罪 天禍集之 -「質言」
귀주습지 소암구죄 천화집지 -「질언」

환한 데서 죄를 지으면
사람의 책망(責望)이 미친다.

어두운 데서 죄를 지으면
귀신의 주벌(誅罰)이 덮친다.

두 곳에서 모두 죄를 지으면
하늘의 재앙(災殃)이 몰려든다.


   
내놓고 짓는 죄악은 
법으로 견책(譴責)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데서 
남 모르게 짓는 죄악은 
법이 어쩌지 못해도 
귀신의 징벌(懲罰)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면 
하늘의 재앙을 불러들인다. 
어찌 삼가지 않으랴.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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