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21. 17:20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고통의 세상을 행복의 세상으로
불자님들
오늘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입니다.
요즈음 생활고에 시달려서
자신은 물론 가족들과 동반 자살하는 가정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고통속에서 살다가 떠나신 영가님들의 왕생극락을 지심발원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6.25때보다 더 심한 고통을 느끼고
절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이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중의 하나된 것입니다.
◇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중이 하나가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인 복지제도가 허술하게
운영되는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원인은 개인의 정신이 피폐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사회적 개인적 가치관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그릇된 견해가 세 가지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1) “그 하나는 모든 것은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견해로 만일 그것이 옳다면
잘 살려고 노력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 운대로 살면 되니까?
그러나 실제 모든 사람들은 더 행복하게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운명이 정해져 있어 그 운명대로 살아야 한다는 견해는 인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그릇된 견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모든 것은 신의 뜻이다.”라는 견해로
“ 만일 그것이 옳다면 사람을 죽이거나 상해하거나 도둑질하고 간음을 하고도
그것이 모두 하늘의 뜻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양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하늘(신)의 뜻이다.’라는 견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 그릇된 생각입니다.
(3) 세 번째는 이 세상 모든 것은 우연하게 일어난 것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견해도 옳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 부처님은 위의 3가지 그릇된 견해를 타파하시고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유지되고 소멸된다.’고 하셨습니다.
◇ 현재 내가 못살고 힘든 것은 자신이 과거에 지은 업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그것을 잘 알고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한 잘 못을 범하지 않고
바르게 잘 살아간다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미래는 잘 살게 됩니다.
비록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 지금은 잘 산다고 하더라도 지금 복을 짓지 않고
나쁜 짓만 골라서 한하면 미래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인연과의 이치입니다.
인연과의 이치는 현재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삶과 미래가 결정되어 지는 것입니다.
◇
지금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현재 이렇게 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 안 됩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거나
과거 자신이 게으르고 남에게 베풀지 않고 복덕을 짓지 않아
지금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다시는 그릇된 생각이나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맹세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진참회입니다.
이렇게 진 참회를 하고 나면 세상을 잘 살아갈 지혜가 생깁니다.
◇
생활고 때문에 가족들과 동반자살을 한 사람들이
‘그 고통의 상황을 죽음으로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먼저 사회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가까운 동사무소에 복지담당에게 호소하여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최소한의 삶을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도움을 요청도 해보지도 않고
‘이 세상에 우리를 도와주는 그 누구도 없다.’고 원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 또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죽음으로서 벗어나려 하는 것’도 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이 경우도 정신적 고통을 상담해주는 사회단체나 종교단체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그 고통에서 나올 수가 있습니다.
◇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나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생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고통을 끝내는 것은 오직 죽음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빨리 죽으면 행복한 하느님의 나라에 간다는 믿음 때문에 어리석게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을 하는 것은 지금 자신의 극단적인 행동이
미래에 천배 만 배의 고통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과의 이치는 냉엄합니다.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일 뿐입니다.
자살을 하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지옥에 태어나 죽기 전 고통보다
천배 만 배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과의 이치입니다.
◇
죽으면 고통이 멈추어진다는 생각은 인과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내가 있다.’는 견해를 버려야 합니다.
고통이라는 것은 ‘내가 고통을 받는다.’라는 생각에서 일어납니다.
즉 ‘나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내가 지금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생각이 가장 큰 어리석은 견해입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지수화풍인 물질과 수상행식(느낌/연상/행동/기억)이라는
정신으로 임시로 뭉쳐져 있는 가 화합체인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생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을 계속 일으키게 됩니다.
이 탐진치에 집착하면 바로 고통이 생겨나게 됩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내가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나라는 것’은 색수상행식으로 가화합된 것으로
언제가 변하여 사라질 무상(無常)한 것이요, 무아(無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영원히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식(8식/아뢰야식)만 남아 평생의 기억을 저장한 채
다음에 태어날 인연을 찾습니다.
영원히 살고 싶은 착각(무명) 때문이지요.
이 무명(착각)이 있는 한 끝없이 몸을 바꾸어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는
윤회의 고통바다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뿐입니다.
◇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내가 있다는 견해’를 먼저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몸과 마음 밖에서 얻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서 통찰해야 구해야 합니다.
또 ‘내가 없다.’는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괴로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자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이 고통이나 괴로움을 부부나 가족이나 이 사회나 그 누구나
상대의 탓으로 돌린다면, 어리석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
6.25때 보다 더 극심한 고통에 살고 있다는 것은
모두 자신의 괴로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의 탓으로 돌리는 마음의 실체는 바로
'내가 괴롭고 괴로움을 당한다.'는 '나 있음'에 철저하게 매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괴로움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요
괴롭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큰 이유는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적 성장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번뇌를 완전하게 소멸하여 열반에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수한 윤회를 통해 정신적 성장을 하여
본래 우리가 온 우주 법계 우주의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명을 모르면 남을 번뇌 망상에 가득하여
남을 업신여기고 자기 잘난 채로 살다가거나
아니면 자신을 비관하다가 못난이로 살다가 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바르게 관찰해야 합니다.
이 바른 관찰이 기도입니다.
기도란 비울‘기’ 비울‘도’란 뜻입니다.
기도란 마음을 허공처럼 텅 비우는 것입니다.
그 속에는 ‘나라고 하는 것’이
당연히 없습니다.
그래서 바른 기도는 ‘무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순간 현재 자신이 할 일을
바르게 묵묵히 해 가면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은 다음으로 미루고
남과 비교도 하지 말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먼저 합시다.
이렇게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남에게 많이 보시하고 베풀다보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마음은 편안해지고
지혜가 생겨나고
미래도 당연히 밝게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입니다.
● ‘고통의 세상을 행복의 세상으로’ 이르게 하는 길입니다.
불자님들
모두 힘내시고
오늘도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그리고 매순간 기도합시다.
무아(無我)를 실천합시다.
감사합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정토사(개운선원)
정인(正印) 합장
2014년 3월 6일
나무붓다야
나무달마야
나무승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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