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거울에 비친 그림자들 / 법상스님

2014. 7. 16. 19:1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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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거울에 비친 그림자들 / 법상스님

 

 

 

 

 

佛法을 眞理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本來性稟을 밝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本來性稟 本性은 無始無終으로 단 한 순간도

어두웠던 적이 없었고, 사라진 적도 없었으며,

이 세상 삶은 언제나 늘 영원히 本性 위에서  피어나고 있다.

 

다만 生滅心인 우리 마음/의식이 일으키는 망상 시비 분별 비교 판단과 온갖

생각들로 因해서 우리 의식 마음이 온갖 생각들로 가려진 本性을 보지는 못한 채,

가짜인 겉모습(相)의 이름과 모양(名色)만을 집착하고 따르기 때문에

늘 텅~빈 본바탕 그 자리에 있는 自然性稟을 보지 못할 뿐이다.

 

예로부터 禪에서는 이 本性의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곤 한다. 

거울은 모든 것을 차별하거나 분별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를 비추어 낸다.

거울 앞에 나타나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다  거울 속에 수용해서

좋거나 나쁘거나, 추하거나 아름답거나  나누어 상관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낼 뿐이다.

 

그 때 사람들의 의식 마음은

그 거울 속에 비춰있는 온갖 좋고 나쁜 對相들이 진짜인 줄 착각해서 알고

좋으면 애착해 가지려고 하고, 싫으면 미워해 밀쳐내고 멀리하려고 하면서,

의식이 의식 속에 생각으로 온갖 시비분별과 괴로움등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의식이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 같은 가짜 모습이

진짜 自己인 줄 알고, 진짜 世上인 줄로 錯覺하는 것이다.

 

그러나 本性을 본다고 함은 거울 속에 비친 가짜 그림자들을 보면서

그것이 진짜인 줄로 잘못알아 집착하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거울이라는 그 自體 모든 것을 비춰내는 그 본바탕을 올바로 보는 것이다.

 

아무리 좋고 나쁜 것들이 거울 속에  비치더라도

거울 그 自體는 거울 속 가짜 그림자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상관도 없다.

그저 그냥 그 가짜 그림자들을 비추어 낼 뿐

아무런 판단 분별도 하지 않고,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도 않으며,

그 거울 속에 비친 가짜 그림자인 對相들을 相對로 해서

그 어떤  분별 차별 괴로움도 일으킴이 없다.

 

우리의 본래 마음이 바로 이 거울 자체와 같다.

우리의 본래 마음 또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完全한 性稟이다.

 

부처를, 깨달음을 밖에서 따로 얻으려고 애쓸 일도 없고,

찾아 나설 필요도 없이, 부처 깨달음은 지금 이대로 한 시도 빠짐 없이 영원히

우리가 늘 쓰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의식 마음이 눈을 통해서 보이는 모든 사물을 判斷하지 않는다면,

귀를 통해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分別하지 않는다면,

코와 혀를 통해서 느껴지는 모든 맛과 향을 差別하지 않는다면,

몸을 통해서 느껴지는 모든 감촉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다면,

마음을 통해서 일어나는 온갖 生覺들을 집착해서 따라가지만 않는다면,

 

이 세상 삶 그 모든 것들이 다만  마음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일 뿐

고정되고 불변하는 실체가 아님을 안다면, 지금 이대로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모든 對相이 있는 그대로 本性 아님이 없고 眞理 아님이 없다.

 

우리의 의식 마음이 가짜 겉모습이나 이름, 모양을 집착해서 따라가지 말고

이 세상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 마음거울이라는 텅~빈 본바탕을 올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거울 텅~빈 본바탕을 보려면 生覺이나 分別心으로는 不可能하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 마음 생각으로 認識되는 對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직 모를 뿐'이다.

안다고 입 뻥끗하는 순간 어긋난다.

法은 眞理는 알려지는 어떤 對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선사 스님들께서는

머리로 헤아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方便을 쓰셨다.

 

道가 무엇입니까 라는 물음에,

마른 똥막대기라거나, 뜰 앞의 잣나무라거나, 손가락을 들어 보이거나,

우리 의식 마음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禪問答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 方便이 바로

머리로 마음 의식 생각으로 헤아리고 판단 분별해서 알려고 하는

그 모든 習慣的인 思考方式을 탁 그치고, 도무지 어찌할 수 없어서

앞뒤로 마음이 꽉 막히는, 은산철벽과도 같은, '오직 모를 뿐'인,

도저히 答이 나오지 않는 그런 工夫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看話禪의 話頭란 바로 여기 '오직 모를 뿐'에서 나오는 疑心이다.

도무지 생각 마음 의식으로는 암호 같은 화두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생각이나 의식 마음을 造作해서도 안  풀리게 된다면,

그러나 반드시 答을 찾아야 한다면, 당신은 어찌할 것인가?

 

그저 생각 마음 의식이 꽉 막힐 뿐이고, 답답하고 갑갑할 뿐이며, '오직 모를 뿐'이다.

 

이러한 답답한 생각 마음 의식의 상황이 지속되고,

答을 알고자 하나 그러나 그 무엇도 할 수 없어

꼼짝달싹 못하는 마음 의식 생각으로

화두에 대한 疑心  門 없는 門을 계속해서 두드리다 보면

門이 활짝 열린다는 것이 바로 간화선의 方便인 것이다.

 

내 눈 앞에 등장하는 인생 세상 그 모든 삶 세상의 스토리며, 등장 인물들이며,

그 모든 성취와 실패등등 이 세상 그 모든 것들은  단지 마음거울 속에 비친

허망하고 헛된 꿈 같고 幻想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은

고정되고 불변하는 실체가 아닌 의식 마음이 의식 속에 만드어내는 생각일 뿐이다.

 

당신이 關心을 가질 부분은

그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 같은 가짜 모습들이 아니라,

이 세상 그 모든 것이 일어난 근본바탕을 되돌아 비추어(廻光返照)

마음거울 그 自體를 보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당신을 너무 좋아합니다 
 
 

 

어느 날 아침이슬 처럼 살며시

내 마음안에 들어온 당신

눈빛만 봐도 알수있는 너무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당신

그런 당신이 자꾸만 좋아집니다.

 

 

 

 

 

 

당신을 좋아한 뒤로는 가슴

벅차옴으로 터질것만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해 라는 말보다

당신이 자꾸 보고싶어 라는 말이

내 가슴에 더 와 닿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길 바라는 나의 마음은...

당신을 향한 단 하나뿐인 나의 사랑입니다.

당신을 위해 저하늘 별은 못 되어도

간절한 소망의 눈빛으로 당신께

행복을 주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나의 마음이지만 따뜻한 말한마디 해 주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얄밉기만 합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당신이 있어 이 순간에도 난 행복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당신은 나의 행복한 비밀입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이 생명 다하는 그 날까지

당신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그런 당신에게 나의 마음을

나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 당신을 너무 좋아합니다.

 



ㅡ 좋은 글 中에서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