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소멸이란/서진스님

2014. 8. 13. 07:0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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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장소멸이란 / 서진 스님 업장소멸이란 지금까지 지은 업을 다 없애버리고 또 앞으로 새로운 업을 짓지 않음으로써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지은 업을 다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또 앞으로 새로운 업을 짓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지은 업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스스로가 받는 수 밖에는 없다. 이를테면 선업을 받는다고 하였을 때 선업관계는 크게 두 가지가 될 것이다. 그 관계란 은혜를 입었기에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 관계와 은혜를 베풀었기에 은혜를 받아야 하는 관계일 것이다. 이를테면 불쌍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도울 수 있었다고 하여보자.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히 선업관계이다. 왜냐하면 도울 수 있는 연을 만난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기에 지금 은혜를 갚기 위하여 만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를 돕는다는 것은 전생(前生)에 자신이 지은 선업관계를 소멸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도운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덕분에 나는 전생에 지었던 선업을 하나 소멸시키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가 바로 공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더라도 그 관계는 전생에 내가 도와주면서 만들어진 선업을 받아 소멸시킨 것이니 그 또한 나의 업장을 소멸시켜 주신 그러한 분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이 또한 공덕이 되는 것이다. 악업관계 또한 그러하다. 내가 그에게 원한을 가졌는지 아니면 그이가 나에게 원한을 가졌는지 이 두 가지 악업관계에 의하여 만날 것이다. 상대가 나에게 원한을(전생의) 가졌다면 그 사람이 나에게 아무리 잘 해주려고 하여도 그 결과는 나에게 피해를 주는 관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에게 악업을 소멸시켜 준 사람이다. 그러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인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원망과 분노 속에서 그를 본다면 이것 또한 악업을 받고 또 악업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그 진실은 밝히려고 할지언정 누가 그르네 누가 옳네 하는 시비를 가려서 원망과 분노 속에서 살지 말고 감사의 마음으로 그 고통을 받아들일 때에 악업을 받았으되 새로운 악업을 짓지 않는 것이 된다. 그 다음 내가 아무리 잘 해주려고 했어도 그 결과가 그에게 커다란 피해를 주고 그에게 원망을 사게 되었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모르고 원망만 한다고 억울해 하고 그를 미워만 한다면 그것 또한 악업을 받으면서 또 새로운 악업을 짓게 되는 것이니 이 또한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 또한 업장소멸을 시켜준 감사한 인연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분노와 억울함을 동정할 줄 알고 감사로써 참회하는 것, 이것이 업장소멸하는 공덕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업장소멸하는 마음가짐과 행위를 우리는 공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덕이란 우리들이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 거기에서 비롯되는 행위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란 단순하게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다 감사와 참회의 마음, 이것이 곁들여져야만 그 행위가 공덕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 지은 업을 소멸함에 있어서는 그 업이 찾아왔을 때 피하지 않고 받아서 소멸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 근본이며 그 이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다. 그것을 잘 가르쳐 주는 말이 바로 부처님의 삼불능이다. 이것은 부처님도 할 수 없는 세 가지를 말하는데 첫 번 째는 정해진 중생의 업장을 소멸시켜 줄 수 없으며, 둘째는 연이 없는 중생을 구원할 수 없으며, 세째는 삼계를 다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이것을 자세히 설명해 보면 첫째. 정해진 업장을 소멸시켜 줄 수 없다는 말은 배가 고픈 아들을 대신하여 어머니가 대신 밥을 먹어 줄 수 없고, 병든 아들을 대신하여 어머니가 병이 들 수 없듯이 업을 받는 중생을 대신하여 부처님이 업을 받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배고픈 아들을 대신하여 어머니가 밥을 먹어 줄 수 없지만 배고픈 아들을 대신하여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여 주고, 병든 아들을 대신하여 어머니가 병이 들 수는 없지만 병든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듯이 부처님도 업을 받는 중생을 대신하여 업을 받아 줄 수 없어도 업을 받는 중생과 항상 함께 하면서 그를 보살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선업과 악업을 모두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선업을 받을 적에는 남들은 백배 천배 노력해야 할 일도 나는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이룰 수 있는 것이고 악업을 받을 적에는 남들은 손쉽게 하는 일도 나는 백배 천배 노력을 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즉 선업을 받을 때에는 행복이 찾아 오고 악업을 받을 때에는 불행이 찾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선업이든 악업이든 다 받아서 소멸시켜야 한다. 인생이란 선업이 끝났으면 악업이 찾아오고 악업이 끝나면 선업이 찾아오는 것이 인생이다.

      <영화> 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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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개봉 첫날 가족과 봤는데

      하기휴가 간다고 늦게 서야 말 하게 되었다.

      오늘 기사를 보니

      이 영화는 현재까지

       

      歷代 영화의 관객 동원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관객 경향을 보면

      初盤에 몰리다가

      얼마 안가서 시들해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꾸준히 이어지는 영화도 있다.

       

      前者는

      선전과 광고에 의존 하는 경우가 많고

      後者는

      작품성이나 영화의 주제가

      당시의 사회적 現實과 관계가 있을 때 그렇다.

       

      이 영화의 주제나 내용은

      국민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어서

      어떻게

      이 영화를 다루고 있는지가 더 궁금하였다.

      역사적 사실에 의한

      國粹的 우월주의 또는 대리 만족감이냐

      아님

      이순신 장군의 인격과 偉大性에 초점을 맞춘 것이냐

      아님

      적당한 눈요기를 곁들인 액션물이냐.

       

      내 느낌은

      세 가지를 모두 함축하고 있었다.

       

      ‘명량'은

      1597년 임진왜란 6년,

      이 순신 장군이 모함에 의거 獄苦를 치루는 동안

      원균이 일본해군에 패하여

      조선 水軍은 전멸 하다시피 하고

      남겨진 단 12척의 배로

      수백 척에 달하는 倭軍의 공격에 맞서

      승리한 '명량대첩'을 다룬 작품이다.

       

      이 무렵이 장군이 57세이며

      이 전투에서 셋째 아들을 잃었다.

       

      이순신 장군의 위대성과

      後代의 동양 三國의 학자들의 다양한 평가는

      “이 순신은 인간인가?

      (2005.10.5 내 블로그 카테고리 : 역사 이야기 )를

      보시면 소개되어 있다.

       

      -↓게시글 아래면을 보면 있어요-

       

      영화는

      이순신 장군의 남겨진 초라한 6척의 배와

      사기가 떨어진

      水軍들의 지리 멸멸한 모습에서 시작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순신 장군은

      군인으로써 민심을 다스리고 얻고

      전투를 총력전으로 만들어 승리한다.

       

      전략과 지형지물의 이용,

      조류의 특성 연구

      그리고

      상대방의 심리까지

      거기다가

      백성을 아끼는 爲民정신이

      백성들을 전쟁의 한축으로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것은

      정보와 군인들의 사기 진작이다.

      영화의 3대 요소라면

      연기와 줄거리와 그리고 촬영기술일 것 같다.

       

      적어도

      이 세 가지는 만족을 시키는 것 같다.

       

      영화에서 좀 아쉬운 점은

      명량 해전 전후의

      역사적 사실의 간략한 내레이션이 추가 되었더라면

       

      그리고

      명량海戰의 전과가

      마지막에 字幕으로 나마 나왔더라면

       

      관객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영화 마지막에

      전쟁은 이 해전이 마지막이 아니기 때문에

      양 水軍 지휘부들의 모습을 간략하게 담았더라면

      다음 海戰의

      모습을 상상 할 수 있어서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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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민족은

      세계 戰史에 몇 가지 기록을 남긴다.

      그 하나가 高.水 전쟁

       

      단일 전투에서

      가장 많은 군인들이 동원된 전쟁이다.

       

      당시 기록으로 보면

      수나라 전투병 100만 명,

      고구려 30만 명

      보급 부대의 비전투원

      대략 300백만 이상으로 보면

      적어도 전쟁에 4~5백만 명이 동원되었다.

       

      두 번째가

      이순신 장군과 왜군의 해전에서

      백전백승한 대 기록이다.

       

      이런 기록은

      세계 海戰史에도 前無後無한 것이다.

       

      역사는 반복하듯이

      지금 다시

      동북아는 힘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다시는

      우리 역사에 기적 같은 전투의 승리는 없게

      사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최근 군대에서 잔인하고 비열하고

      막가파 식의 집단 폭행이 발생해

      사병이 죽음에 이르렀다.

       

      당사자의 엄벌은 물론

      군 지휘관들에게도 책임을 지워야 한다.

       

      혹시

      자신들의 경력에 누가 될까봐

      모른척하거나 피하고 있는 것을 아닌지..

      이순신 장군 같은

      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過慾이겠지만

       

      그 정신의 십분의 일이라도

      군 지휘관들이 본받았으면 한다.

      최민식의 연기도 훌륭했다.

      이 영화는 어떤 기록을 남길지 궁금하다


      이순신장군 업적 [ 특
      아래면(2005년 10월 5일 게시글)

       

       

      ◆이 순신 은 人間인가 ?

       

      1. 개요


      이순신 장군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고

      존경받는 분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왜 이순신 장군이

      그토록 連戰 全勝을 하고 존경을 받아야 하는지...


      나의 이 글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 완승을 가져다 준 원동력이고 ,

      이순신(이하 존칭 생략) 은 인간인지

      아니면

      神性을 갖춘 사람인지를 알려고 하는 것이다.


      [이슈] 4월 28일은 충

       

      2. 약력과 그 의미


      먼저 이 순신의 약력을 살펴보자.

       

      (地上軍 근무는 언급하지 않음)


      1545년 : 출생

      1576년 : 선조 9년 32세 무과 급제

      1580년 7월 : 선조13년 전라 좌수영 수군만호(36세)

      1582년 1월 : 2차 파직 (38세)

      1591년 2월 : 전라좌도 수군절도사(47세)

      1592.4. 13일 : 임진왜란 발발(48세)

      1592.5월7~9월1일 : 옥포 해전을 시작으로

                 한산도 대첩 등 4개월간 9전 9승

      ( 5.29일 사천포 해전에서 거북선 첫 사용)

      1593년 : 삼도 수군통제사

      1594년 : 당항포 해전 등 3전 전승

      1597년1월 : 정유재란 53세

      1597,1~4월 : 파직 ,고문 투옥 ,석방

                  권율 장군 휘에서 백의종군 ,어머니 사망

      1597,7 : 원균 칠전량 해전 참패 전사

      1597, 8 : 삼도 수군통제사 복직 및 9월 명량 해전 대승,

                   3째 아들 전사

      1598.11월 : 58세 명나라 진린군과 합세 노량해전 대승

      맏아들 과 함께 전사

      1598.11/26일 : 일본군 부산포서 완전 철수(7년 전쟁 종결)

       

      거북선


       

      ●약력이 보여주는 의미.


      32세에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한 것으로 보아 ,

      초년은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 같다.

      전체 공직(무관) 생활 22년을 나누어 보면

      부모 시묘 3년,

      북방 변방 방위 등 지상군 근무 14년 ,

      말년의 수군생활 5년으로 ,


      경력으로 보면 주 특기가 육군이고

      水軍은 주 특기가 아닌 것 같다.

      물론 조선조 시대에는

      지금처럼 수군과 육군이 엄밀하게

      그 기능이 세분된 것도 아니고,

      전술 전략이 단순하였기 때문에

      상호 교체 근무가 가능 할 것이다.

      이 점은 일본군도 유사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전라 좌수사란

      지휘관으로 임명 된지 1년이 조금 지나서

      그리고

      왜란 발발한지 즉각 전투에 참여하여 승리.

      해전에 필요한

      지식과 전술 등을 마스터할 시간이 없었다.


      그다음이

      전쟁 중에 두 아들을 잃고 본인도 최후를 맞는다.

      대의를 위하여 자신도 던진 진정한 殺身報國.

       

      이순신장군님의 업적을

       

      3. 내가 알고 있는 이 순신


      聖雄 이순신,

      거북선 발명으로 왜군을 전멸한 장수,

      난중일기의 저자,

      원균의 모략으로 백의종군한 충신,

      세종로 이 순신 동상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같은 무인이기 때문에

      부각 시켰다는 설이 있는 인물.

       

      넬슨제독 과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파한

      일본 장군(이름?)이

      그분의 위대성을 인정하였다 라는

      단편적인 것들이다.


      4. 외국인이 보는 이 순신

       

      <이 란의 내용은

      김현수 브로그에 연재 된 것을 발췌한 것임>


      書名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


      저작기간 : 1990년~1998년...


      저자 : 중국학자 5명, 일본학자 7명 그리고

       

      그 외 일본사관학교(육사.해사) 장교 및

       

      중국인민박물관장. 한국해군사관학교장교들의 도움

       

      총 32권으로 발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내용이 25권.

      역사적 근거로 가설을 부친 내용 :7권

       

      두려움에 맞선 이순신


      4-1.와키자카가 본 이순신


      한산도 대첩 때 이 순신에 대패,

      2천의 군사로

      약 5~10만 명 의 조선 육군을 대파한 名將.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내가 겪은 그 한 번의 이 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며칠 몇 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서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 갔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茶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4-2.명의 사신 “운덕” 이 본 이 순신


      눈이 내리고 추운 겨울날 ,

      포로로 잡힌 15세의 왜군 소년에게

      명심보감 효행 편을 읽어 주더라.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이지만,

      저 두 사람을 보면 어찌 서로를 원수라 하겠는가...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로 보였으니..

      이로 미루어 통제사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충무공 탄신일 기념 이


       

      4-3.명의 도독 진린이 본국 신종 황제에 보고한 이 순신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우리 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 청國)를 견제하고 땅을 수복 할 수 있다.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국왕에게 충의 보였으니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 큰 덕목이다.


      이순신은 (모진 고문 후에도)

       

      단 한번의 불평 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 척의 왜선을 통쾌하게 격파하였다.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 신하로 두소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

                        <토요토미 히데요시>


      4-4.책의  저자인 쟝웨이링 교수가 본 이순신


      1990년 3월 하북에서

       

      제1차 중.일 합동 연구회(이순신)를 가졌다.


      저런 배가 400 여년전에 있었단 말인가...

       

      나의 놀라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을

       

      조선이 아닌 일본과 이순신 한 인간과의

       

      전쟁으로 생각한다.


      이순신....

       

      참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수수께끼 같은 인물.


      <중국 학생들과 대화 대용>


      만일 지금

       

      또다시 중국이 청나라처럼 되었고,

       

      중국 역사상

       

      유명한 영웅이 나타난다고 하여도

       

      결과는 마찬(일본에 패전)가지이다.


      조선을 구한 이순신장군 이야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다.

       

      그 이유는

       

      그가 水軍 장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중국역사에는

       

      세계에 내놀만한 수군장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열렸던 임진왜란 모의전쟁에서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일본국에 점령되었다.



      또한,

       

      조선수군은 인진왜란 1년 전 만해도

       

      허약한 병사들이었으나

       

      그 허약한 병사를

       

      단 1년 만에 40만 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군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순신 장군 강의가 끝났을 때

       

      장 교수가

       

      처음으로 전 학생이 일어나며

       

      기립박수를 받아 보았다 한다)...

       

      이순신장군의 업적을


      4-5 일본의 아리모토라는 역사가가 본 이순신


      세계의 전쟁영웅은

       

      피로 만들어지고,

       

      만인들에게 우러러 보게끔 만든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다.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그분....

       

      이순신 장군을 볼 때면 문득 그분이 떠오른다....

      두 분 다 나의 고개를 숙이게 한다.

       

      이순신 장군은

       

      단순히 조선을 구한 영웅이 아니었다.


      이순신 장군은

       

      그 처절한 전쟁 속에서

       

      忠.孝.義.愛.善 을 가르키신 분이셧다.


      "성웅 이순신"


      4-6. 혁명과 죽음에 대한 논란


      1996.4월 이케다 하야토 교수의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중에서 14부인


      (이순신의 혁명과 죽음) 중에서 .....


      <혁명과 죽음>

       

      이순신의 혁명..


      우리들은

       

      왜 이순신은 혁명을 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 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어보았다.

      수많은 戰功에도 불구하고

       

      조선조정으로부터의 의심과 질투를 받은 그에게는

       

      한번의 혁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먼저,

       

      우린 만일 이순신 장군이 혁명을 일으켰다면

       

      과연 성공하였을까? 하는 부분부터

       

      토론을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12명의 학자 모두

       

      이순신장군은 혁명에 성공과 함께

       

      조선의 멸(滅)과

       

      새로운 이순신의 나라가

       

      세워졌을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순신장군 업적 명언


      이순신이

       

      혁명이 아닌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다.


      왜였을까?

       

      중국역사 조선의 역사..

       

      아니 고금을 통틀어서

       

      이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에는 반드시

       

      쿠테타든 혁명이든 일어나게 마련이다.

       

      아니면 토사구팽이라도....

       

      그런데 이순신은

       

      쿠테타도 혁명도 토사구팽도 모두 거절하였다.


      이순신은

       

      오직 죽음만을 선택 한 것이었다.

       

      이순신 과연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장군이 명나라와 손을 잡고 그리 할 때

       

      조선왕조와 대신은 일본과 손잡으면,

       

      조선반도는 다시금 피로 물든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영화 후기] 명량 평점


      5.全勝의 배경 및 조건


      5-1. 전함 및 무기 체계


      배 이야기에서 언급하였지만,

       

      조선 수군은 튼튼하고 방향 전환이 양호하고

       

      대포의 반동력을 흡수 할 수 있는 구조임에 반해,

      일본 수군은

       

      날렵하고 속도가 빠른

       

      전함들로 구성 되어 있어서

       

      연근해에서 벌어지는

       

      근접전 내지 돌격형인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기본적으로

       

      더 적정한

      무기 체계를 가졌다고 생각 한다.


      조선 수군은

       

      그 이전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에 대항하여

       

      그 들을 상대할 전술과

       

      전함 제조 및 운영 기술을 습득하였고,

       

      반면에

       

      일본은 섬나라에서

       

      중국이나 한반도를 노략질하기 위해서는,

       

      원거리 항해를 위해서는

       

      빠른 속도의 배가 필수적이고,

       

      또 해적질이 주 임무이기 때문에

       

      속전속결과 치고 빠지는 방식이기 때문에 ,

       

      중무장과 튼튼한 배의 건조는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정규전인 해전에 대한

       

      전술과 경험과 Know -How가

       

      조선 수군보다는 열세라고 생각된다.


      무장 측면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일찍 화약을 사용한 기술과

       

      천지현황이라 부르는 대포등도

      튼튼한 판옥선에

      무장을 하여 사용할 수 있고

      복원력이 좋아서 ,

      발사빈도와 명중률을 높일 수가 있었다.

       

      명량 보기전에 알아보


       

      개인 화기는

      일본의 조총은 칼과 창을 화살을 가진

      조선 수군보다는 우수하지만,

      판옥선이 2층으로 높이가 높아 ,

      당시

      근접전에서 상대방 배로 넘어가

      지상전을 벌이는 전법을 사용한

      일본 수군에게는 불리하였다.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숫자 및 병력 함선에서는

      조선 수군이 열세였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우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 진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5-2. 지형적 조건


      전선이 남해안에서 동서로 나뉘어져 있어서

      양 수군이 맞부딪히는 면적이 적은 것도

      조선 수군이 유리한 조건중의 하나이다.

       

      부언 하면

      일본군은 많은 함선을 가지고 있어도

      동서로 길게 전개할 수밖에 없고

      전 전투함을 투입 시키는 작전을 할 수 없었다.


      반면에

       

      예비대 없이

      모든 전력과 함대를 투입시킬 수 있어서

      수적으로 불리한 조선 수군에게는 ,

      그렇게 전개 할 수 없는 왜군을

      차례로 격파사킬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라 생각 한다.

       

      마치

      외나무다리에서 우리 편 5명과

      적군 100명이

      일대일로 밀어내기 시합 같은 거,

       

      이럴 경우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강한 한 사람이 있으면 이길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술적 측면에서 우위에 있었지만,

      준비 부족으로 실제 戰力은

      월등히 왜군이 우세하였음은

      기록이 말해준다.

       

      명량 보기전에 알아보


       

      5-3.사기와 지휘관의 자질


      현대전이나 고대 전투나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직접적인 무기 체계 및 전투병 숫자

       

      그리고

       

      지휘관의 자질, 사기 등 요인이 많이 있다.

       

      드라마에서는 다르게 표현 하였지만,

       

      일본 水軍 장수들도

       

      리더십과 덕목과 충성심과

       

      혜안을 갖춘 명장들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개전 초기에는 월등한 군사력과

       

      육지에서의 일방적 승리 때문에

       

      왜군 士氣 또한

       

      조선 수군보다 낮지는 않았다 생각 한다.


      기타

       

      지리적인 요인은

      조선 수군이 유리한 것만은 틀림없지만,

      왜군도 사전 조사 및 첩자를 이용하여

      상당한 량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 한다.

       

      그에 반하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조정의 반대 및 예산 부족,

      좌우 통제사, 경상 전라 등

      분산된 지휘체계 등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하여

      통합 ,조정 ,승리를 이끈 대목은

      지휘관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이순신 장군. 참도(쌍


       

      6. 이순신은 인간인가 神인가?


      4항에서

      어려운 조건에서도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

      한 국가의 운명을 바뀌게 한 결과에 대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모든 찬사들과 평가가

      외국인들을 통하여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약력에서 보듯이

      처음 부임한지 1년이 조금 넘어

      전투에 참여하여 대승을 하고 ,

       

      그 짧은 기간동안에

      해전에 필요한 모든 전략 전술을 익히고 ,

       

      일사분란하게

      부하들에게 믿음을 주고 신뢰를 쌓은

      그 리더쉽과 천재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


      거북선은

      왜란 중 전선에 투입된 것이 10척 미만으로 ,

       

      초기 기선 제압이나

      돌격용으로 사용된 주력 함선은 아니지만,

       

      그런

      신무기를 전투에 투입하여

      유효적절하게 적용하는

      지휘관의 전술적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동일한 무기 체계라도

      원균의 참패에서 보듯이

      지휘관의 작전 능력과 통솔력이

      전투에서의 승패를 가늠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지만 ,

       

      그렇지만

      전쟁사에서 보듯이

      전승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자신을 모함하고 감옥에 가두고

      모진 고문을 한 조정과 왕에 대하여

      한마디 원망도 없이

       

      다시금

      전장에 나서는

      그 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자신의 불길한 미래를 예감하면서,

      살기위해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혁명을

      왜 생각하고 준비를 하질 않았을까?

       

      이순신장군 임진왜란


       

      난 이글을 마치면서도

      초기에 목표로 하였던,

      전승을 하게 된

      그 실체적 이유를 알려고 하였던 이유가

      머리 속에서

      도무지 정리가 되지를 않는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미스터리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그 실체적 이유가 무엇일까?.

      이점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향후 학자들 또는 국민들이

      탐구해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군 생활 22년 중

      수군 5년 동안에 불가사의를 남긴 그 분은

      진짜 인간일까?.

       

      [기획] 이순신의 조선


       

      7 우리의 의무 및 교훈


      결국

      바다를 제패하는 자가 세계를 리드한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

      성웅 이순신이 남겨준 교훈은 무엇일까? .

       

      해전의 승리에서 .

      미래의 국가 이익을 위한

      국방력 강화를 위해

      어떤 쪽으로 중점을 두어야 할지

      결정하는데

      참고가 되질 않을까 한다.


      좁은 국토에서

      인구가 적은 우리에게 지상전 보다는,

      영공이나 바다에서

      잠재적 거대 적성국을 방어 하는 게

      전략적으로 옳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국방력도

      이런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면서도

      조금이나마 그 분을 기린다는 뜻에서

      더욱 세상에 알리는

      실체적 노력을 하여야 할 것 같다.

       

      한 가지 제안을 하면

      난 확대형 거북선에다

      현대적 추진 장치를 붙여 세계를 누비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 생각한다. (1005.10.5)


      <주> 오류가 있거나

      잘못된 곳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 .

       

      * 난 외국에서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궁금 하엿는데,

      우연한 기회에

      동료 브로그에서 좋은자료를 접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왜군에 대한 연구자료가 부족한 것 같다.

      학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by/배흘리b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