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순간 진리를 등진다 / 본각스님

2014. 8. 6. 18:0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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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무는 순간 진리를 등진다 / 본각스님

 부처님의 제자들은 언제나 깨어 있고
밤이나 낮이나 명상으로 그 마음이 즐겁다 

                            『법구경』



위의 게송에서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곧 마음 닦는 수행을 의미한다.
부처님의 참다운 제자들은 명상으로
자신을 가다듬음으로써 마음속에 항상 충만한
즐거움을 누리며 생활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불교만큼 자기 자신의 명상, 마음 수행,
마음의 힘을 강조하는 종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종교들이 무조건 절대자를 신봉하고
전지전능의 기적을 강조하는 것은 불교적으로 보면
우상숭배이고 미신에 가까운 맹목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몸으로 세상의 이익에 편승하고
입으로 남에게 지옥에 간다는 험담을 일삼으며
마음으로 불확실한 대상에 사로잡혀서
비이성적인 맹신에 젖어서 산다면
이는 분명 세상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일생을 통하여 언제나 강조하신 것은,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를
면밀히 관찰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미신이나 맹신이 아니라, 깨어 있는 분명한 정신으로
자신의 몸이 하는 일을 살피고,
입이 하는 말을 다시 듣고,
마음이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잔잔히 흐르고 있는 강둑에 올라앉아서
강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듯이
자신의 마음이 흐르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깊이 살펴보라고 늘 우리를 깨우쳐주시는 것이다.

 
마음이 혼탁하고 악행을 일삼으면
흐린 물을 맑히려고 애를 쓰듯이
혼탁한 원인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맑은 물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발견했다면
강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강 주위를 잘 보호해야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악에 물들어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곧 바로 악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해주기를 막연히 기다릴 필요가 없다.
마음이 비옥한 대지처럼 공덕의 종자를 품고
있음을 알아차렸다면 곧바로 북을 돋구고
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갈 일이다.

이 두 가지를 결단하고 바로 실천에 나아간다면
세상의 공기는 맑고 무척 살기 편한 나날이 이어질 것이다.
신의 나라에 전쟁이 난무하고 부처님의 고향에
차별이 만연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데서 비롯하고 있다.
이에 깨어 있어야 하고 명상으로
스스로를 가다듬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금강경』에
‘응당히 머무는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應無所住而生其心)’는 경문이 있다.

마음이 머물러 있음은
곧 하나의 사물에 정체(停滯)되어 있음이며,
이는 온 우주에 시시각각으로
살아 움직이는 진리의 참 모습을 등지는 것이 된다.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곳에, 그 어떠한 개체에도
제한되거나 집착하는 바 없이 이 마음을 두루
운용(運用)할 수 있을 때,
우주의 감각으로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된다.

이러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
‘지혜의 완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새벽 샛별을 본 그 순간부터
온 우주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진리에
합일되어 일생을 사신 분이다. 그리고 그 이치를
우주생명의 연기법(緣起法)이라고 깨달으셨던 것이다.

이 우주생명의 연기의 이치를 깨닫고
우리의 일상 속에 연출해 내는 것이,
곧 지혜자가 그 마음을 내는 매 순간이 된다.

계곡의 물이 강을 따라서 바다에 이르고
태어난 삶이 흘러서 죽음에 이르듯,
우주생명은 잠시도 머물지 않고서
변화무쌍하게 진리를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치를 알아차리고 다시는 어리석거나
놓치지 않는 삶을 지혜자의 삶이라고 찬탄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어느 하나에 고정될 때
전체를 보지 못하고 어리석게 되는 것이다.
이루어 진 것은 무너져 가고,
태어난 자는 사멸(死滅)해 간다.
어느 하나를 붙잡고 집착을 키워서는
안 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봄의 꽃은 가을의 결실을 예견하게 하며,
강물은 바다에 이르고 다시 기류를 타고 하늘에 오른다.
순간은 영원에 이어지고
만겁(萬劫)은 한 찰나(刹那)도 놓치지 않고서
비로소 영원을 이루어 간다는 이치이다.

석가모니는 순간에 반짝이는 새벽 샛별을 보고서
영원의 이어짐을 깨달았던 것이다.
영원의 이어짐 속에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
함께 소용돌이 치고 있음도 분명히 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각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서
일생을 살아간 분이 곧 진리로부터 오신 분(如來)이며,
진리에 잘 합일되어 가신 분(善逝)이시다
오늘날 불교의 생명은 이 진리를 우리 모두가
일상 속에서 깨닫고, 그리고 단절됨이 없이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다. 생명, 환경, 생태,
시공, 빈부, 자타 등등의 모든 대립 개념 속에서
석가모니가 깨달은 절대평등의 가치를 발견해 내는 것이
불교에서 강조하는 중도(中道)의 삶이며
평화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 된다.

부처님의 참다운 제자들은 언제나 깨어 있고, 모든 대립을
통하여 절대평등을 직관하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다.
이는 곧 명상을 즐기는 삶이며,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불가사의한 우주의 힘과 합일되는 경지이다.
이러한 진리에 눈뜰 때, 모든 생명은 동일한
가치(天地同根)로 다가오고, 함께 어우러지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이는 우주의 진리를 직관하는 명상의 힘임과 동시에
마음수행의 신비로운 결과인 것이다.

 

 

                                             
                                                     曲 : 명상곡 / 고향에 내리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