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법의 간택 / 본연스님

2014. 8. 20. 18:1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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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근화백/相生 - 和 0418 광목 혼합채색 75 x 51 Cm 2004

                           

 

수행법의 간택 / 본연스님

 

 

큰스님 법문에도 "수행법을 간택하기가 가장 힘들다"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염불도 있고 진언도 있고 참선도 있는데 어떠한 수행방법을 가지고서 공부를

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 어떤 스승에게 의지하여야 하는가 입니다.

 

경전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스승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에

오직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온 학인에게 그 사람의

전생을 보고 전생에 공부한 것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숙명통(宿命通)이 열린

사람이 스승이 될 수가 있고,또 그 학인(學人)은 전생에 공부한 것을 금생에

이어서 하기 때문에 헤매지 않고, 빨리 성취 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양심적 스승은 숙명통은 없지만, 찾아온 학인을 잘 관찰하여서

기질(氣質)에 맞은 수행법을 간택하여 주는 것입니다.

오정심관(五停心觀)이라고 하여서 탐욕이 많은 사람은 부정관(不淨觀)을,

진심(嗔心)이 많은 사람은 자비관(慈悲觀)을,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관(因緣觀)을,

산란한 사람은 수식관(數息觀)을, 번뇌가 많은 사람은 염불관(念佛觀)을,

이렇듯 사람마다 기질이 각각이고,또 기질 따라 수행방법이 다른 것이지, 어느

것만 깨달을 수가 있다하면서 오기(傲氣)를 부리는 것은 편견(偏見)입니다.

편견은 정신적 장애입니다. 정신적 장애(편견)를 가지고는 마지막 깨달음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은 양심적 스승도 없을 적에는 경전에 근거하여 공부하라 합니다.

내 공부가 경전과 비추어 보아 오류(誤謬)가 없으면 바른 길을 갈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수행에 나침판이 되는 소의경전(經典) 하나를 선택하여서 내 주(主) 수행법과

같이 하는 것이 수행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보통 주(主) 수행법은 존경하는 스승이 계시다면 (열반과 상관없이) 스승의

공부 방법을 따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 다음 내가 싫증내지 않고서

오래할 수 있는 좋아하는 한 가지 법을 선택해(그것이 진언이든 염불이든 간경이든)

일생을 바친다 하고 정진하시면 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나무아미타불" 을 한생을 바쳐서 공부한다해도 시간이 짧다는

생각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기대고 싶어 사랑한다면***


'결혼은 반쪽 두 개가 합쳐져서 온쪽이 되는 것이다.'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배우자를 '자신의 반쪽'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반쪽과 반쪽을 합치면 가운데 금이 생깁니다.

 전체 모양은 온쪽 같지만,

갈라진 금 때문에 영원히 반쪽 일 수 밖에 없습니다.

흔히 외롭거나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내가 부족해서 상대를 필요로 하면

자꾸 상대에게 기대감이 생깁니다.

상대에 기대어 외로움을 채우려는 반쪽인 이상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한쪽이 떨어져 나가면 다시 반쪽이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없어도 내가 완전해야 합니다.

 즉 온쪽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온쪽과 내 온쪽이 합쳐져서 가운데 금이 없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없어져도 다시 온쪽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서면 상대가 필요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온전하면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고,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상대가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잘 살펴 만약 누군가에게 기대는 성격이라면,

카르마(업)대로 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외로울때 일수록 사람을 만나서 해결하지 말고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외로움이라는 것이 어디서 오느냐?'를 살펴보는 거예요.

결국 외로움은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생겨납니다.

내 옆에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에요.

싫어하는 마음을 내면

 부부가 한 이불 속에서 껴안고 잠을 자도 외롭습니다.

그러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으면

스님이 깊은 산속에서 혼자서 10년을 살아도 외롭지가 않아요.

외로움은 '같이 사느냐,

 떨어져서 사느냐' 이런 데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마음의 문을 닫으면 외로워지는 거예요.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과 서로 몸을 부대끼는

과정에서도 어쩔 수 없이 외롭습니다.

반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깊은 산속에 혼자 살아도 외롭지가 않습니다.

풀벌레도 친구가 되고, 새도 친구가 되고,

다람쥐도 친구가 되고, 밤하늘의 별도 친구가 됩니다.

 눈을 뜨고 있으면 밤에도 무언가 보입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있으면 대낮에도 아무 것도 안 보여요.

외롭다는 것은 지금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대낮에도 어둡다고 고함치는 사람과 같아요,

 즉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겁니다.

 그걸 알아차려서 스스로 외로움에서 벗어나 버리면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찾지는 않게 됩니다.

흔히 돈이 없어서 돈 있는 남자를 찾고,

외로워서 위로해 줄 사람을 찾습니다.

어쨌든 이건 자신의 이기심 아닙니까?

 이기심으로 누군가를 만나면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됩니다.

어쩌면 이게 인생살이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때는 과보를 받겠다는 각오를 해야 하는데,

과보가 따르는 줄을 모르고 선택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또 내가 상대에 대해 실망할 때,

상대 탓이 아니라 자신의 기대가 높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좋은 남편(아내) 만나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수행부터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스스로 서는 힘이 생깁니다.

결혼을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결혼을 했으면 결혼생활이 행복하도록 노력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삶이 행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행복은 결혼 자체와는 상관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혼자 살면 외롭고,

 같이 살면 귀찮아하면서 끝없이 갈등합니다.

이 마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 [스님의 주례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