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노래-지공화상14과송

2015. 1. 10. 04:1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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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지공화상14과송

성문(聲聞)은 마음 속에서 깨닫지 못했으므로,

오직 언어 문자를 뒤쫓을 뿐이다.
聲聞心中不了 唯只趁逐言章

여기서 마음이란 일체를 머금는 본성입니다.
언어와 문자 또한 인연따라 드러난 마음입니다.
마음을 순수의식이라 하고, 언어와 문자를 오염된 의식이라고 말합니다만,

순수와 오염이라는 가치부여의 대상이 아니라

묘한 마음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편의상 나눈 이름입니다.

언어와 문자가 마음은 아니지만 언어와 문자가 아닌 곳에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우주 삼라만상을 전오식, 육식, 말나식, 아뢰야식으로 얘기합니다.
전오식, 육식, 말나식, 아뢰야식이 어우러져서 삼라만상이 드러나는데 

 이 말들이 모두 식( 識)으로 끝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만법이 유식(唯識)이라합니다. 이 식은 모두 마음이 일으킨

그림자와 같은 것이니 또한 삼계가 유심(唯心)인 도리가 되구요.
여기서 심과 식이 이름은 다르지만 한 개의 본성을 그 미묘한 이중성 때문에

두 개의 이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란 그 말에 해당하는 뜻이 명확해야 성립이 되는데

우리의 본성은 미묘해서 딱 한 마디말로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부동성과 운동성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로서 하나이긴 한데 움직이지 않는 물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움직이기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만 본성이라 할 수 없고 움직이는 것만을 본성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측면을 얘기할 때 편의상 마음이라고 하고

움직여서 드러나는 모양을 갖가지 식,만법( 萬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성은 마음도 아니고 식도 아닙니다.

움직이는 가운데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움직입니다.
드러나는 가운데 드러나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드러납니다.
말하는 가운데 말을 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가운데 말합니다.
글을 읽는 가운데 글을 읽지 않고 읽지 않는 가운데 글을 읽습니다.

지금 보는 가운데 보는 게 없고, 보는 게 없는 가운데 보는 것이 실상입니다.
무엇을 말하는지 명확하지 않지요. 이게 실상입니다.
그래서 법은 말로 할 수 없다. 그저 묵묵히 계합할 뿐이다 하지요.

그냥 통할 뿐이지요. 말을 해도 통하고 하지 않아도 통합니다.

모든 작용가운데 통하고 작용하지 않더라도 다른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실에 계합하지 못하는 이유는 보는 것, 듣는 것, 아는 것, 깨닫는 것,

움직이는 것만 볼줄 알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이자 보는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이자 식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어와 문자만 쫓고 언어와 문자 가운데 언어와 문자가 아님을 알지 못합니다.
마음을 요달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모양없는 마음을 깨달아 마친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깨닫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마쳐야 합니다.

만약 종( 終)치지 못하면 마음이 여전히 쉬지 못합니다.

즉 모양 있는 곳에 있다가 모양없는 곳에만 머문다면 깨달아 마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모양있는 세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여전히 보이고, 들리고, 냄새맡고, 맛보고, 움직이며

좋고 싫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과 똑같은 환경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분열과 갈등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양이 모양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모양 아닌 것만도 아닙니다.

이 묘한 것은 죽은 물건이 아니라서 상황따라 자재하게 움직이거든요.
예전과 똑같은 환경이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 눈앞의 세계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뿐이어서 그것이랄 게 없지만, 쉬는 일 없이 활발히 제 성질대로 합니다.
본래 이러함을 깨닫는 것이 계합이지, 달리 두 조각에서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실상을 제대로 못보게 하는 것은 '나'라는 개체가 존재한다는 허망한 신념과

그것으로 인해 파생된 나의 주동성입니다. 이 한 생각이 온갖 흙탕물을 일으킵니다.
이 미꾸라지 같이 날뛰는 '나'라는 생각,

'나'라는 그림자같은 말라식이 그저 식일 뿐임을 보아야 합니다.
이 한 생각이 위력을 잃으면서 본래 아무 일이 없었음이 밝혀집니다.

쉬고 또 쉬세요.
온갖 것이 장애없이 살아나도록.

 

- 몽지릴라 밴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