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속에 살려지는 삶/법상스님
뒷 산 언덕에 나즈막히 서 있는 작은 소나무 한 그루의 하늘같은 은혜를 떠올려 봅니다. 쌀 한 톨과 인연 닿은 수많은 이들의 은혜.. 주말이면 어김없이 밝은 기운 넘치는 부처님 도량을 찾아 주는 나의 따뜻한 수행 도반들의 향기로운 은혜... 이 모든 맑고 향기로운 은혜 속에 '나'는 무한히 살려지고 있음을 알기에 입가에 가득 담백한 미소가 띄워 지나 봅니다.
이 세상 크고 작은, 현명하고 어리석은, 잘나고 못난, 생명 있고 없는 이 모든 존재의 따사로운 은혜에 대해서 고요히 명상해 봅니다.
가깝게는 부모님, 형제, 친척에서부터 주위 도반들 스승, 그리고 선후배, 조금 멀게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은혜로 인해 비로소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저 태양과 하늘, 별과 달의 은혜, 물과 나무의 은혜 그리고 그 속에 감격스레 살아 꿈틀대고 있는 작고 하찮은 미물들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생명의 은혜가 지금의 '나'를 무한한 참 생명의 기운으로 살려지게 하고 있다는 너무도 소박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머리숙여 합장 예배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절대 홀로 '나' 일 수는 없습니다. 이웃이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이 우주 만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찮게 여기던 작은 미물일지라도 나를 나일 수 있게 만드는, 나를 무한히 살려주고 있는 은혜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나 스스로 살고 있다는 생각은 너무도 편협한 안목입니다. 내가 돈 벌어 내가 쓰는 것이고, 내가 잘났으니 이 정도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이라는 등의 '내가...'라는 말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내 혼자가 아니라 이 모든 존재의 작은 은혜 은혜들이 모여 내가 살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은혜로 인해 지금 이 순간도 무한히 살려지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내가 살아간다고 하면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일체만물, 일체중생의 따사로운 은혜로 인해 살려지고 있다는 삶의 실상을 올바로 볼 수 있게 되면 일체 중생을 '나'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 삶의 경쟁자가 아닌 있는 그대로 '나'와 둘이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일러 부처님께서는 자비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제각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무한히 살려주는 감격스런 한 가족이며 한 생명인 것임을 올바로 자각했을 때 나의 삶은 비로소 밝은 빛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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