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7. 11:4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우리 몸에 가장 완전한 보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일
청화스님
만법은 유식이라 모든 존재가 오직 식(識), 곧 마음 가운데 다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도 동물도, 유정(有情)ㆍ무정(無情)도 모두가 오직 식, 곧 마음입니다. 식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만법유식(萬法唯識)의 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도 역시 식덩어리요 마음덩어리요, 산도 태양도 별도 식덩어리요, 우리 지구도 바로 식입니다. 따라서 우리 지구는 바로 그대로 지장보살입니다. 또 태양은 바로 그대로 관세음보살이요, 달은 대세지보살입니다.
반야바라밀은 생명의 실상의 도리
그런데 우주의 도리인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대체로 어떤 것인가? 우리는 여태 반야에 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도 하고 검토해 왔습니다. 반야는 바로 제법공(諸法空)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다만 비어 있고 허무하다고만 생각할 때에는 반야바라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 중생이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는 현상계는 사실은 시간적으로 무상(無常)하고 공간적으로 비어 있어서 허무한 것이나, 모든 허망한 존재의 근본성품인 진여불성(眞如佛性)은 무한공덕을 갖추고 우주에 충만해 있는 바로 생명의 실상(實相)입니다.
이러한 실상의 도리가 반야바라밀입니다. 따라서 반야가 있으면 비로소 참다운 수행자이고, 반야가 없다면 수행자가 못 됩니다. 반야는 어느 고유한 존재가 아니라 바로 생명입니다. 우리가 전도된 몽상만 여의어 버리면 바로 반야의 생명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반야와 더불어 있어야 참다운 창조가 있고 참다운 수행이 있습니다. 반야가 없다면 모두가 다 범부의 허물을 벗지 못하는 것이고, 어떤 행동도 때묻은 유루행(有漏行)밖에는 못 됩니다.
중생이 보고 느끼는 일체 현상은 모두가 다 허망하고 무상한 것이며, 범부인 한 우리가 보는 것은 다 전도된 몽상입니다. 전도된 몽상을 끊어 버리지 않고는 공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끊어야 할 것인가? 바로 이런 수도의 방편이 화두(話頭)요 염불(念佛)이며, 관법(觀法)이요 주문(呪文)이며, 계율(戒律)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아직 반야의 도리를 증명은 하지 못하더라도 우선 이론적으로 바른 이해가 있어야 수행이 바로 되기 때문에, 철두철미하게 이론적인 자기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이른바 선오후수(先悟後修;먼저 깨치고 뒤에 수행하는 것)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상을 여의면서 체(體)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불성을 깨닫는 대도에는 문이 따로 없어...
현대사조(現代思潮)는 여러 갈래로 다원적이고 다양한 문화현상들이 하나의 도리, 하나의 근본체성(根本體性)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전환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분야에서나 모두가 다 개방적이고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하나의 진리, 포괄적인 본체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상에서 체로, 또는 분열에서 화합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맞이하여 불교도 내 종파, 네 종파의 편견에서 벗어나 불법의 근본이자 우주의 법칙인 반야바라밀로 돌아가는 것이 절실한 때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여러 가지 방편이 있는 것인데, 우주 자체가 무량무변한 진여불성이므로 불성을 깨닫는 대도(大道)에는 문이 따로 없는 것입니다.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스님에게 '무엇이 조주입니까?' 하고 법을 물으니까 '동문(東門) 서문(西門) 남문(南門) 북문(北門)이라', 진실한 조주는 어느 한 문이 아니라 동문이나 서문이나 남문이나 북문이나 어디에나 걸림이 없는 참성품이라는 말입니다. 불법은 이와 같이 위대한 길이기 때문에 문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진리에 마음만 사무치면, 상을 여의고서 본체를 지향하는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수도정진하는 과정에서 물[水]보고 깨닫고 불[火]보고 깨닫고 달[月]보고 깨닫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직 우리가 체를 여의지 않고 용(用)을 나투고 또는 용에서 본체로 돌아가는 간절한 뜻이 없으면 수행자의 자세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근본성품인 진여불성을 깨닫고 진여불성과 하나가 되고자 출가사문이 된 것입니다. 삼천대천 세계도 모두가 체에서 용으로 화현(化現)되었다가 다시 체로 돌아갑니다. 체와 용이 원래 둘이 아니지만 현상적인 세계는 체에서 용으로 온 세계입니다. 현상적인 용이란 본래 본체에 입각해서 용을 나투어야 온전하게 바른 통찰과 올바른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본체란 가명(假名)과 가상(假相)을 여읜 일미평등(一味平等)한 자리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무아(無我)ㆍ무소유(無所有)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아ㆍ무소유의 경계는 일체 만유 그대로 진여법성의 경지입니다. 어느 것도 진여법성, 부처님 아님이 없는 자리입니다. 한 생각 잘못 비뚤어져서 '저것은 부처가 아니다, 이것이 부처다'고 분별하는 마음 자체가 체를 여의고서 상에 얽매이는 미망(迷妄)인 것입니다.
참다운 도덕률은 우리 마음을 실상자리에 두는 것
따라서 모두가 부처라는, 일체 공덕을 원만히 갖춘 진여불성이라는 생명의 실상자리에다 우리의 마음을 둔다면 우리의 행위인 신(身)ㆍ구(口)ㆍ의(意) 삼업(三業)이 청정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참다운 도덕률입니다. 공자(孔子)나 노자(老子)나 예수 같은 성인들의 행위도 모두가 도덕률에 따른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도덕률의 본체는 바로 참다운 철학인 우주의 도리요, 불교말로 하면 진여불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도리는 본래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는 생명이기 때문에, 말하는 언어나 행동하는 몸짓이나, 윤리도덕에 조금도 어긋날 수가 없습니다. 말을 함부로 한다거나 음행을 한다거나 음식을 함부로 먹는다는 것은 모두가 다 도덕률, 곧 우주의 천연자연(天然自然)한 도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철학에서도 인간성의 실존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어떤 분야에서나 인간성을 탐구하는 문제가 가장 절실한 근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인간성을 똑바로 깨닫고 가르치는 가르침은 불교 외에는 없습니다. 절대로 아전인수가 아닙니다.
우리 수행자는 인간성을 계발하는 선구자입니다. 현대사회의 선구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도덕적으로 우리는 완벽을 기해야 합니다. 인간이란 약한 존재여서 마음으로 다짐을 해도 미끄러지고 비틀어지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칠전팔기(七顚八起)로 즉시 다시 일어나서 나약한 자기를 추슬러야 합니다. 땅에 넘어지면 그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나듯이 강인한 의지로 바로 다시 일어나서 한사코 법성자리에 우리의 마음을 붙이고 미망의 그물을 벗어나야 합니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자기 스승을 위해서나 부모를 위해서나 친구를 위해서나 어느 누구를 위해서나, 이와 같이 생명의 고향인 본체로 돌아가는 그 행위가 가장 수승한 행위요, 가장 진정한 보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전도된 몽상만 떠나면 모든 것이 한결같이 제법이 공이요 오온(五蘊)이 개공(皆空)입니다. 범부중생들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보기 때문에 고민이 생기고 여러 가지 번뇌가 더욱더 치성(熾盛)해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본래면목을 바로 참구하는 공덕보다 더 수승한 보배는 없습니다.
가장 완벽한 영양분은 부처님의 가르침
우리는 몸이 아프면 약을 먹고 영양분을 많이 섭취합니다. 그것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나 가장 훌륭한 영양분, 가장 완벽한 보약은 부처님 가르침을 여법히 수행하는 일입니다.
부처님 법에다가 마음을 두고 바로 생활한다면 웬만한 문제들은 다 풀리는 것입니다. 진여불성에 가까울수록 더 잘 풀립니다. 무슨 병이든 그 근본은 다 무명(無明)에서 오는 것이며, 법성자리에는 본래 죽음도 병도 없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안 먹어도 단백질을 별도로 안 취해도 그것 때문에 죽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약해서 뒤뚱거리고 넘어지기 쉽지만 넘어지면 바로 일어서야 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부처님을 따르는 길은 공명정대한 우주의 공정한 길입니다. 사실은 최상의 안락행(安樂行)입니다. 수행자들이 가는 길은 수많은 성현(聖賢)들이 헤치고 다져놓은, 탄탄하고 활짝 트인 해탈의 대도입니다.
전도된 몽상만 떠나 버리면 훤히 트인 마음으로 영생(永生)의 낙토(樂土)를 지향하여 환희용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도 눈도 열려 버리면 웬만한 병은 침범을 못합니다.
그래서 한없이 틔어 있고 다만 비어 있지 않는 자리, 무량한 공덕을 갖춘 진여불성 자리, 이 자리를 생각하고 그 진여불성을 여의지 않는 생활보다 더한 행복은 없습니다. 불경에서도 아가타약(阿伽陀藥)을 말합니다. 아가타약은 만병통치약입니다. 부처님 명호나 화두나 또는 주문이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법은 다 한결같이 마음의 병과 몸의 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의 아가타약입니다.
우주가 바로 부처님이요, 일체의 존재가 바로 불법이기 때문에 중생이 부처를 생각하면 부처 또한 우리 중생을 굽어보고 호념(護念)하는 것입니다. 다 같은 부처이므로 부처가 부처를 생각해서 이심전심으로 상통하고 감응하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집착을 털어 버려야...
바야흐로 무서운 시대입니다. 자기 문중(門中)에 집착하고 자기 종단(宗團)에 얽히고 자기가 공부하는 법, 내것만이 옳다는 생각에 붙잡히게 되면 우리 마음은 바로 어두워지고 그지없이 옹색해집니다. 이것 자체가 전도몽상(顚倒夢想)입니다.
본래 훤히 틔어서 아집(我執)도 법집(法執)도 없는 마음인 것을, 구태여 지어서 '나'에 집착하고 법에 집착한다면, 공부나 다른 사람한테나 그 무엇에도 도움이 안 되며 그것이 또한 우주를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현대는 개방적인 시대입니다. 아무렇게나 방만(放漫)하게 한다는 개방이 아니라, 법에 대한 집착을 털고 나에 대한 집착을 털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해탈을 지향하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마땅히 번뇌해탈을 지향하는 시대적인 조류에 맞춰야 참단과학에도 뒤지지 않고 오욕의 수렁에서 헤매는 무량중생을 구제하는 진정한 보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자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과거 전생에 두고두고 공덕을 쌓아서 금생에 영광스러운 법의(法衣)를 입었습니다. 우리들의 무상한 금생 인연이 몇 차례나 다시 만나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러나 내생에 가서도 우리는 꼭 수행자가 되어서 피차 청정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생겁래(多生劫來)로 몇만 생을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한사코 중생 제도를 위해서 반드시 고통 많은 사바세계에 태어나야 합니다. 그때마다 출가하여 성취하고 본래 없는 무명 다 여의고, 본래 없는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여 다 함께 성불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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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자기 스승을 위해서나
부모를 위해서나 친구를 위해서나
어느 누구를 위해서나, 이와 같이 생명의 고향인
본체로 돌아가는 그 행위가 가장 수승한 행위요,
가장 진정한 보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전도된 몽상만 떠나면 모든 것이 한결같이 제법이 공이요
오온(五蘊)이 개공(皆空)입니다.
범부중생들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보기 때문에 고민이 생기고
여러 가지 번뇌가 더욱더 치성(熾盛)해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본래면목을 바로 참구하는 공덕보다 더 수승한 보배는 없습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약을 먹고 영양분을 많이 섭취합니다.
그것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나 가장 훌륭한 영양분, 가장 완벽한 보약은
부처님 가르침을 여법히 수행하는 일입니다.
부처님 법에다가 마음을 두고 바로 생활한다면
웬만한 문제들은 다 풀리는 것입니다.
진여불성에 가까울수록 더 잘 풀립니다.
무슨 병이든 그 근본은 다 무명(無明)에서 오는 것이며,
법성자리에는 본래 죽음도 병도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된 몽상만 떠나 버리면 훤히 트인 마음으로
영생(永生)의 낙토(樂土)를 지향하여
환희용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도 눈도 열려 버리면 웬만한 병은 침범을 못합니다.
그래서 한없이 틔어 있고 다만 비어 있지 않는 자리,
무량한 공덕을 갖춘 진여불성 자리,
이 자리를 생각하고 그 진여불성을 여의지
않는 생활보다 더한 행복은 없습니다.
불경에서도 아가타약(阿伽陀藥)을 말합니다.
아가타약은 만병통치약입니다.
부처님 명호나 화두나 또는 주문이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법은
다 한결같이 마음의 병과 몸의 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의 아가타약입니다.
안나 푸르나의 웅장한 봉우리들. ⓒShutterStock
여행 고수들이 ‘네팔’을 추천하는 12가지 이유
다녀오시면 순수한 오지의 자연과 문화유적 신비에 네팔痛을 겪게 됩니다...
하늘 맞닿은 신들의 땅으로 알려진 네팔. 히말라야 산맥 중앙에 자리한 네팔은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으로 가득해 우리들에게 미지의 나라로 느껴진다.
독특한 불탑과 사원이 어우러진 풍경, 자연을 벗 삼아 소박하게 살아가는 소수민족의 모습은 여행자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면서 우리들에게 더욱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럽이나 동남아 휴양지도 좋지만, 우리게에 다소 낯선 나라인 네팔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 저렴한 물가를 감안하면 비용도 크게 부담되지 않을 것 같다.
또한 트래킹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멋진 자연과 웅장한 산맥이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휴가지로 네팔을 선정해야 하는 12가지 이유를 소개한다.
1. 세계의 지붕 안나푸르나
네 팔은 세계의 지붕이자 세계 최고의 트레킹코스로 잘알려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지역이 있는 곳이다. 안나푸르나의 초입 도시에는 아름다운 호수도시 포카라(Pokhara)도 있다. 하지만 네팔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리고, 가장 건조하고, 가장 바람이 강한 장소다.
2. 14개 최고봉 중 8개 네팔에
네 팔은 세계 14개의 최고봉 중 8개를 보유한 명실상부 최고의 산악국가이다. 해발 8km가 넘는 고봉으로 정상까지 오르기는 쉽지 않는 곳이 대다수다. 그렇지만 해발 2만피트(약 6km)까지만 올라가도 그 높은 위상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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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56종의 새들이 사는 천국
네팔에는 856종 이상의 다양한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지상 낙원이다. 전세계 조류의 약 10%가량이 이곳에 서식하고 있어 여행하는 동안 수많은 새들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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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양한 모험의 나라
네팔은 모험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고 있다. 그들은 등산, 트레킹, 래프팅, 야생 동물 사파리, 열기구, 패러 글라이딩, 번지 점프, 행글라이딩 비행 등 행복한 선택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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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계문화유산
네 팔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을 비롯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을 총 7곳이나 보유하고 있어 트래킹 및 배낭여행을 위해 많은 개별 자유 여행객들이 찾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간직한 나라다. 찬란했던 그들의 역사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사원, 성지 등을 체크하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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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저렴한 관광지
네 팔은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관광지다.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페루 잉카 트레일과 비교해 트레킹 코스를 선택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약 10달러 가량만 있으면 하루 식량 가격이 충분히 해결된다. 또한 18.50달러면 괜찮은 호텔방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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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바다 같은 호수
네 팔의 아주 많은 호수들은 모두가 뛰어난 아름다움을 뽐낼 뿐만 아니라 네팔 힌두교도들이 신들의 성지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빙산이 녹아내려 호수 범람 위기에 직면한 호수가 200개나 있다. 바다 같은 호수를 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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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다양한 해발 고도
네팔은 해수면 위로의 고도 변화가 60미터에서 8000미터까지 이르는 단 하나뿐인 나라이다. 그것은 대단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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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다양한 문화와 종교
네 팔은 서로 다른 70여 소수민족이 2300만 인구를 이루며 살고 있다. 민족의 수가 다양한 만큼 사용하는 언어도 70여가지에 이른다. 네팔 인구 중 80% 가량이 힌두교, 15%가 불교, 3%가 무슬림, 나머지 2%가 다른 여러가지 종료로 나뉘는 등 다양한 종교와 음식, 음악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특히 힌두교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를 숭배하는 세계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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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네팔 요리
네 팔 요리는 중국과 인도처럼 무거운 남아시아 음식과 달리 가벼운 살코기와 야채를 주원료에 강낭콩, 토마토, 감자, 요구르트, 마늘 등을 더불어 먹는 가벼운 식사가 대부분이다. 특히 이 같은 음식을 아주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며 먹을 수 있다.
ⓒShutterStock
11. 카트만두 계곡
카트만두(kathmandu) 계곡은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으며 궁전·힌두사원·스투파 등 7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기원전 3세기 세워진 세계 최초 불교 사원을 보유한 기념비적 도시로 네팔 중앙에 위치해 있다.
ⓒShutterStock- 카우만두 도심에 있는 '박타푸르' 유적 지구
12. 평온
네 팔은 수백 년 된 성지로 간주돼 왔다. 만년설 아래 펼쳐진 에메랄드빛 호수는 더없이 맑고 평온해 여행 내내 기분마저 평온해 지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네팔의 사람, 건물, 땅은 모두 평온해 보여 바쁜 현대인들이 네팔을 가게 되면 진정으로 탈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현대 도시의 삶에 지친 당신에게 영적인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눈을 뜨게 할 것이다.
ⓒAlex_Saurel/flickr
아름다운 소리의 소리
01 섬집 아기 With Harmonica
02 찔레꽃 With Harmonica
03 아델리따 Tarrega_Adelita
04 지르말 바덴 재즈 조곡 1악장
Jirmal_Baden Jazz Suite 1St Mov
05 소르 월광 Sor_Claro De Luna
07 지르말 바덴 재즈 조곡 2악장
Jirmal_Baden Jazz Suite 2Nd Mov.
08 사그레라스 마리아 루이사
Sagreras_Maria Luisa
09 란제이 빗방울 Lindsey_Raindrops
10 코스트 기러기 Coste_Andante
11 반달 With Harmonica
12 카르카시 프렐류드와 안단티노
Carcassi_Prelude And Andantino
13 따레가 사장조의 마주르카
Tarrega_Mazurca En Sol
14 사랑의 로망스 Romance De Amor
15 비냐스 판타지아 오리지날
Vinas_Fantasia Original
16 망고레 훌리아 플로리다
17 포스터 꿈길에서
Foster_Beautiful Dreamer
18 소르 나비 Sor_Estudio No.6
19 꽃밭에서 With Harmonica
20 헨제 야상곡 Henze_Noctur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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