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8. 20:05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종교가 참일 확률은?
불교닷컴 2014.06.09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2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부처님은 성도(成道) 후 ‘의지할 스승이 없다’고 한탄하셨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자 군집동물의 본성이다.
집단은 지도자가 없으면 유지되지 않는다. 집단의 힘은 집중(concentration)에서 나오고, 집중은 결정(decision making)에서 나오며, 결정은 최고의사결정권자인 지도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간이 46억년 진화의 여정에서 그렇게 집단을 이루어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결국은 먹이사슬의 정점(頂點)에 선 것이므로, 지도자를 세우고 따르는 것은 인간의 뇌에 깊이 각인(刻印)되어 있다.
5,000년 동안,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신하들은 왕에게 의지하고, 왕은 종교나 신에게 의지했다. (그리고 왕은 신의 이름으로 백성을 통치했다. 지금은 신이 헌법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는 신은 많지만, 세상의 신은 많아야 하나만 진짜이고, 최악의 경우 모두 가짜이다(이 경우가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서로 상대방이 가짜라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윤회가 있든지 없든지 둘 중 하나이다. 따라서 유일신교와 불교는 양립할 수 없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거짓말쟁이이다. 뿌리가 같은 유일신교인 회교와 기독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거짓말쟁이이다. 회교에 의하면 예수는 피조물인 ‘인간 예언자’일 뿐이고, 기독교에 의하면 예수는 ‘창조주 하나님’이다. 따라서 기독교가 보기에 회교는 거룩한 창조주 하나님인 예수를 피조물 인간이라고 부르는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있고, 회교가 보기에 기독교는 피조물인 인간 예수를 감히 하나님이라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도가 사후에 회교지옥에 가든지 회교도가 사후에 기독교지옥에 가든지 둘 중 하나이다. 하지만 불교가 보기에 두 종교는 쓸데없이 다투고 있다. 창조주라니? 둘 다 헛소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자꾸 어리석은 소리를 하면 멍청한 동물로 환생한다.
기독교와 회교가 전쟁을 일으켜 서로 학살하는 것은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있는 상대방을 빨리 자기들 지옥으로 보내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어차피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 시꺼먼 염소 같은 자들은 살아 있어봤자 죄나 더 지을 것이니 빨리 없애는 것이 서로 좋다. 그런데 양측 사망자들 중 한쪽은 절대로 상대방 지옥에 가지 않는다. 두 종교가 동시에 참일 수는 없으므로 한쪽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두 종교가 이런 지적을 받고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불교가 나선다. 미망(戒禁取見)에 빠져 서로 증오하고 살해했으므로 둘 다 우리 지옥행이다. 어리석은 생각에 빠지기만 했다면 대뇌신피질이 발달하지 않은 미련한 축생계로 유배가는 정도로 충분하겠지만, 그 미망을 살인으로 실현하는 이념형 중범죄를 저질렀으므로 지옥행이다. 법계보안법(法界保安法)위반에 해당하므로 엄벌을 피할 수 없다. 하하하. 재미나는 결론이 아닌가?
이렇든 모든 종교는 서로를 부정하고 있고, 많아야 한 종교만 옳을 것이므로, 대다수 종교인은 지독한 망상 속에서 사는 셈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종교인들은 비종교인들에 비해 망상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신앙심이 깊을수록 중증 망상증환자일 가능성이 급증한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 인구가 600만 명인데, 기독교인이 100만 명, 회교 100만 명, 불교 100만 명, 힌두교 100만 명, 유대교 100만 명이고, 무신론자가 100만 명이라 하면, 종교인 500만 명 중 적어도 400만 명은 망상증이 확실하다. 누가 가짜라고 찍어 말할 수는 없지만 가짜가 400만 명 이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많아야 한 종교만 참일 것이기 때문이다. 수학적 추론의 힘이다. 하지만 무신론자 100만 명 중 적어도 몇 명이나 망상증인지는 확실치 않다. 종교가 하나라도 참이라면 무신론자 100만 명은 모두 망상증이고 종교가 모두 거짓이라면 무신론자 망상증 환자는 한 명도 없다. 즉, ‘0’명이거나 ‘100만’ 명이다. 그 중간은 없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닌가?
인간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못 산다. 신이 없고 귀신조차도 섬기지 않는 유가(儒家)는 공자에게 의지해서 살지만, 공자는 요순에 의지했다. 주공에게도 의지했다. 그래서 논어에 공자가 “꿈에 주공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인간은 어류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 순서로 진화했다. 어류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가 내세나 종교가 없는 것이 확실하므로, 종교는 영장류와 인간 사이 어디선가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정확히 언제라고 지적할 수 없지만 그사이 언젠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인들이 주장하듯이 종교가 시작도 없는 태초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천부당만부당하다. 그리고 어류 파충류는 지도자 없이도 아쉬움이 없어 보이므로 지도자에 대한 의지(依支) 역시 파충류와 포유류 중간 어디선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그리고 특정 종교와 무관한 황금률에 따라 사는 것’이다. 모든 종교에는 인류가 축적한 지혜의 말씀과 황금률이 들어있다. 이들을 충실히 따르면 행복도 절로 따라온다.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지나치게 술을 마시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삿된 음행을 하지마라, 효도하라, 증오하지 마라, 사랑하라, 해를 끼친 자에게 관용을 베풀어라,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마라, 대접받고 싶은 데로 남에게 행하라,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라, 보답 없이 선행을 행하라, 어려운 이들을 도와라, 약자를 감싸라, 악과 타협하지 마라, 모든 인간은 모두 형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탐욕을 멀리하라,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 집착하지 말라, 어두운 데서 손톱을 깎지 마라,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마라, 겸손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근면하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등등 무수히 많은 가르침이 있다. 아마, 다 모으면 어느 종교경전보다도 양이 많으리라.
이런 가르침에 충실하면, 신이 있건 없건, 천국이 있건 없건, 지옥이 있건 없건, 성직자들이 협박하건 말건 개의(介意)치 않을 것이다. 스스로 자기 마음이 보람과 긍지와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선(善)함은 다른 누군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옛날부터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자기들 신을 믿으면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는 악마의 종교가 분명하다. 그리고 스스로 이리할 수 있다면 종교가 필요할 이유가 나변(那邊)에도 없다.
아마 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이런 힘든 일을 하지 않고도 값싼 믿음에 영(靈)을 싣고 절대자(초월적 독재자 또는 천상의 독재자 transcendental dictator, or celestial dictator)의 빽으로 손쉽게 구원을 얻으려는 한탕주의적 무임승차철학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선행(八萬四千細行)을 하지 않고도 예수만 믿으면 혹은 아미타불만 믿으면 천국이나 극락에 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쉽고 편한 복된 길인가? 종교적인 ‘은하철도(銀河鐵道)’나 ‘UFO(신비한 비행능력을 지닌, 선택받은 극소수만 그 정체를 안다고 하는, 비행물체)’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를 절대화하고 그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 것은 유한하고 불완전하고 비(非)절대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또 해서도 안 된다. 도대체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다른 존재가 완전한지 알 수 있다고 하며 ‘자신의 완벽한 인식능력’을 주장하는가? 그런 일은 망상(妄想)이자 광신(狂信)이고, 그런 일이 인류에게 무한한 고통을 초래해 온 것은 인류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5,000년 동안 왕들이 (폭력적인) 신들로부터 권한을 받아 (폭력적으로) 사람들을 지배해 왔으나(왕권신수설이나 중국의 천자개념), 지금은 헌법(憲法)이 신의 지위를 박탈하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였다. 정치체제의 근거가 신이라는 종교적 권위로부터 헌법이라는 세속적 권위로 옮겨간 것이다. 우리를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악당들로부터 구원하는 것은 헌법이지 신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신은 존재하지도 않는 악마로부터나 우리를 구원할 뿐이다(모든 신들은 서로 반목하고 상대방을 부정하므로 전체적으로 보아 신들은 가짜이다, 즉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로, 인간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서로 반목하는 편협하고 폭력적인 신들 때문이다. 인류가 이만큼 국제적인 평화를 이룬 것은 종교를 초월한, 즉 신을 초월한 유엔과 같은 세속기구 덕이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의 정신적인 구원 역시 유신론적 종교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
이 일의 첨병(尖兵)으로는 신을 세우지 않는 불교가 가장 적합하며, 그리하려면 불교가 먼저 정화되어야 한다. 부처님 재세시의 맑고 깨끗한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정각(正覺)직후 존경하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시던 부처님은 결국 ‘존경하고 의지할 대상은 진리(法)’라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46억년 진화의 과정에서 취득되고 인정받고 각인된 ‘누군가를 따라야 한다’는 유전적 습성을 깨뜨린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의 유언인 ‘법등명 자등명(法燈明 自燈明)’에 여실(如實)히 반영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이 부처님의 최후의 가르침이라는 사실로부터 깨닫는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직 진리(法)라는 것을. 그리고 그 진리는 남이 대신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하므로 자기 자신(我)에게 의지해야 한다. 부처님(我)을 구도의 길로 나가게 한 것도, 육 년 고행을 하게 한 것도, 정각을 이루게 한 것도, 정각을 이룬 후의 삶을 지탱한 것도 모두 진리(法)에 대한 목마름, 추구, 획득, 그리고 전파이다.
이 진리를 향한 한마음이 인류를 새로운 진화(進化)의 길로 그리고 구원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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