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종교의 상호보완과 일치 - 청화큰스님

2015. 2. 28. 20:2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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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심은 허공과 등할 새

편운척영이 무한

광대무변한 허공적 심계를 관하면서

청정법신인 달하야비로차나불을 념하고

허공적 심계에 초일월의 금색광명을 대한

무구의 정수가 충만한 해상적 성해를 관하면서

원만보신인 달하야노사나불을 념하고

내로 념기념멸의 무색 중생과

외로 일월성수 산하대지 삼라만상의 무정 중생과

인축 내지 준동함령의 유정중생과의

일체중생을 성해 무풍 금파 자용인 해중구로 관하면

천백억화신인 달하야석가모니불을 념하고

다시 피무량 무변의 청공심계와 정만성해와 구상중생을

공 성 상 일여의 일합상으로 통관하면서

삼신일불인 달하야아화미보타법불을 상념하고

내외 생멸상인 무수중생의 무상제행을

심수만 경전인 달하야미타의 일대행상으로 사유 관찰할지니라

 

아미타불

마음은 허공과 같을 새

한조각 구름이나 한점 그림자도 없이

크고 넓고 끝없는 허공같은 마음세계를 관찰하면서

청정법신인 비로자나불을 생각하고

이러한 허공같은 마음세계에 해와 달을 초월하는 금색광명을 띤

한없이 맑은 물이 충만한 바다와 같은 성품바다를 관찰하면서

원만보신인 로사나불을 생각하며

안으로 생각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형체없는 중생과

밖으로 해와 달과 별과 산과 내와 대지 등 삼라만상의 뜻이 없는 중생과

또는 사람과 축생과 꿈틀거리는 뜻이 있는 중생등의 모든 중생들을

금빛성품 바다에 바람없이 금빛파도가 스스로 뛰노는 거품으로 관찰하면서

천백억화신인 석가모니불을 생각하고

다시 저 한량없고 끝없이 맑은마음세계와

청정하고 충만한 성품바다와

물거품같은 중생들을

공과 성품과 현상이 본래 다르지 않는 한결같다고 관찰하면서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이

원래 한부처인 아미타불을 항시 생각하면서

안팎으로 일어나고 없어지는 모든 현상과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덧없는 행동들을

마음이 만가지로 굴러가는

아미타불의 위대한 행동모습으로 생각하고 관찰할지니라

 

우리가 명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보통 차원에서 그쳐 버리면, 자기실상도 깨달을 수가 없고 우주의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도 얻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바른 사유를 한다면, 실천면에서 깊이깊이 따지고 들어가야 할텐데, 그러지 못하고 미온적으로 어물거립니다. 그래서 이론적인 사유 체계도 상식적인 분야에 그쳐 버립니다. 실천적인 면도 불철저해서, 자연히 모든 면에서 바른 해답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자기 불안 의식을 해소할 수도 없으며, 만연된 사회의 부당한 부조리도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때, 한낱 현상적인 것에 우리 사고를 낭비하지 말고, 근원적인 문제에 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상적인 것, 현상적인 것, 그때그때 있다가 없어지는 것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렸을 때, 실천적으로 자기 초월을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와 철학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동시에, 더 나아가서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중략


철학이 종교적인 실천면을 소홀히 하면, 사실은 철학이 이론적 사변에 그쳐 버리면, 참다운 철학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마땅히 현대에 와서도 여러 가지 지적들을 하지마는, 모두가 이론적인 것이 불철저하고, 동시에 그것에 실천적인 면이 따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실존철학만 보더라도, 야스퍼스(Jaspers 1883-1969)나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 같은 분들이 여러 가지 심오한 철학 체계를 세웠습니다. 그분들이 자기 자신의 한계상황限界狀況을 어떻게 초월할 것인가의 문제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미흡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 초월의 문제는 나날이 자기 개조를 하고, 나날이 변신해 가는 자기초월의 문제는 철학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소홀히 해 버리면, 철학은 철학대로 교리敎理만 분석하고 교리만 따지는 것이 될 것이고, 또 종교는 철학이라는 체계가 없어지면 엉뚱한 미신 같은 맹신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지요. 마땅히 철두철미하게 사유를 해야 합니다.


철두철미한 사유는 그것이 바른 사유가 되기 때문에, 철두철미한 사유를 하는 사람은 자기 개인적인 에고는 저절로 끊어집니다. 왜냐 하면, 철두철미하게 생각하면 자기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두 다 연기법緣起法이기 때문에 자기 몸뚱아리라든가, 자기의 개념적 사고라든가, 모두가 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루어진 것입니다.  때문에 깊이 생각해 보면, 자기라는 고집이나 법집法執을 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철저한 순수 사유로 해서 모든 사태를 바르게 보고, 동시에 바라본 그 자리에서 철저한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 2001년 5월 11일, 국제철학대회 법어(성륜사) 중에서 -

 

 

 

 
 

       

 


 

 

 

 

 

   

돈이란 선인에게는 좋은 것을,
악인에게는 나쁜 것을 안겨 준다
 
 
유태인들은 기독교의 교인들 처럼
인간의 몸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주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몸이란
모든 욕망의 원천이므로 인간의 육체에는 죄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이와 반대로 사람의 몸은
맑은 정신이 담긴 그릇이므로 이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여 육체 자체가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돈에 대한 유태인들의 생각도 이와 같다.
돈 그 자체에서는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이고 생겨나지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돈은 악의 원천이고
죄악의 하나라고 생각하여 왔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유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돈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못한 탓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육체나 돈이 인간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아 그것이 우리 인간을 지배한다고
여긴 탓으로 돈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유태인의 격언중에서 =
 
 
 
 
 
 
 = 탈무드 교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