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의 삶과 깨달음

2015. 3. 7. 21:3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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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선사의 삶과 깨달음

 

경허스님은 이제까지 명맥만 유지한 한국불교, 특히 선불교의 법통을 전승하고 

그 수행가풍을 크게 진작한 대 선불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경허 큰스님은 1849년 전주에서 태어나,

아홉살때 경기도 과천 청계사로 출가, 법호는 경허(鏡虛 ), 법명은 성우(惺牛)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스님은 출가한지 스무 해 만인 1879년 이르러

동학사 밑에 살고있던 한 신심 깊은 재가 불자의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到牛無鼻孔處 = 우무비공처>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대오각성하였다고 한다.

 

스님의 수제자로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慧月>, 수월<水月>, 만공<滿空>, 선사가 있다.  

 

        스님은 살아생전에   "만공<滿空>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正進力>은 수월<水月>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智慧>는 혜월<慧月>을 당할 자가 없다." 고 제자들을 평가했다.   

 

   "꺼져가는 선의 등불을 밝힌 한국 선의 달마"라 이르는 경허선사

 

鏡虛선사

 

 

경허는 출가 초기부터 선수행에 전념한 선사가 아니다.

그는 23세(1868)이후 34세(1879)까지 10여 년간

동학사에서 불교경학, 특히 화엄경을 강의하던 강백이었다

 

그가 선사로서 삶의 방향을 돌리게 된 것은 어린 시절의 은사였지만

지금은 환속하신 桂虛스님을 만나러 서울로 가는 길에

천안의 한 마을에서 맞닥뜨리게 된 콜레라라는 하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전염병 때문에 한 마을이 통째로 폐허가 되어있고,

누구든지 걸리기만 하면 멀쩡한 사람도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모습을 보게 된

경허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죽음과 굶주림의 마을 그리고 거리들의 풍경을 통해서

경허는 눈부시게 보이는 세상이 사실 장례식의 기나긴 행렬에 지나지 않고,

사람의 목숨이 들어 마시고 내쉬는 한 호흡간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자기가 가르치던 경전상의 교리들이

목전에 드리워진 죽음이라는 그늘 앞에서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회심하고 스승을 만나러 가는 것을 포기한다.

 

이후 그는 “今生에 차라리 어리석고 미련한 채 문자 공부를 하지 안 하였을 것을,

祖師의 道를 찾아 참구하고, 三界를 뛰어넘는 공부를 하려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됨이라”고 한탄하고,

그 길로 강사 생활을 그만두고 선수행에 전념하게 된다.

 

이후 경허는 ‘나귀의 일이 가지 안 하였는데

말의 일이 당도 하였도다(驢事未去馬事到來)’는 화두를 가지고,

다리를 찌르고 머리를 부딪혀서 수마를 쫓으면서 필사적인 정진을 하나,

은산철벽에 부딪치는 것처럼 그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떤 사미승의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곳이 없다(到牛無鼻孔處)’는 말에

안목이 움직여서 옛 부처 나기 전의 소식이 드러나 現前에 열려져,

물건과 내가 함께 空하여 옛 사람의 곧 바로 크게 쉰 경지에 도달하여

백천 가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해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하고,

꽉꽉 눌러 덮였던 것이 풀려 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깨친 것이다.

 

경허가 부르는 ‘깨침의 노래’ 가운데 일부를 들어보자.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이 없으니 衣鉢을 누구에게 전해 받으리.

의발을 누구에게 전해 받으리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이 없네.  

봄 산에 꽃이 활짝 피고 새가 노래하며 가을밤에 달이 밝고 바람은 맑기만 하다.

 

정녕 이러한 때 無生의 一曲歌를 얼마나 불렀던가?

일곡가를 아는 사람이 없음이여, 때가 말세더냐. 나의 운명이던가.

 

산빛은 문수의 눈이요. 물소리는 관음의 귀로다.

 ‘이랴 쯔즛’ 소를 부르고 말을 부름이 곧 보현이요,

장서장 이첨지가 본래 비로자나로다.

 

…… 내가 큰 法王이 되었음이로다. ……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 이 말을 들으면

내가 헛소리를 한다하여 믿지 않고, 또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귀 뚫린 사람이 있어 자세히 믿어 의심이 없으면 문득 안심입명처를 얻으리라. ……

 

어찌하여 내게서 무생법을 배워 인천의 대장부가 되려 하지 않는가? ……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깨닫고 보니 삼천 대천 세계가 이 내집일세.

 6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 일이 없어 태평가를 부르네.



오도가에서 보이듯이 경허는 깨치고 난 이후

衣鉢을 전해 받을 사람이 없다고 토로한다.

의발을 전해 받을 스승이 없음을,

다시 말해서 그의 깨침을 알아줄 선지식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달마대사가 중국 땅에 들어온 이래 우리 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도를 얻어 곧바로 부처의 경지에 이른 이가 한없이 많건마는

요즘에 이르러 그 도가 폐하여 전하지 않는다”라는 경허의 언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리 나라 선의 법맥이 서산이후 단절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경허의 한탄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자기의 깨침을 인가할 눈 밝은 선지식이 한 사람도 없는

불교계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깊은 우려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경허는 또한 그가 부르는 깨침의 노래인 無生一曲歌를 아무도 몰라주는 것이

 말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의 운명이기 때문인지를 한탄하면서

자기에게서 무생법을 배우면 인천(人天)의 대장부가 될 것임을 설파한다.

 

‘무생’은 ‘본래 천지의 만물은 생도 없고 멸도 없다’는 의미이다.

천지만물을 나타낸 대로 한정된 것으로만 보지 않고,

나타나기 전까지의 본래 상태까지를 깨달아 아는 것을 말한다.  

 

하늘이 가운데도 가장자리도 없는 것처럼 모든 부처의 모습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無生은 佛性 또는 空性과 같은 의미이다.

마치 뿔을 나무에 걸고 공중에 숨어 자취가 없는 영양처럼

불성은 형체도 안 보이고 말소리도 안 들린다.

짐승의 발자국을 찾는 사냥개에게 영양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는 진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경허는 무생의 상태에서 세상을 본다.

그때 산빛은 문수보살의 눈이 되고, 물소리는 관음보살의 귀가 된다.

소를 부르는 아이나 말을 부르는 목동이 바로 보현보살이 되고,

장서장 이첨지가 본래 비로자나부처가 된다.

 

죽음과 삶, 사람과 부처, 큰 것과 작은 것은 무생의 눈으로 보면 만물일체가 되는 것이다. 

경허가 무생일곡가를 몇 번이고 불러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는 것은

바로 대중이, 불법의 진리를 모르고, 자기의 깨침의 경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한탄인 것이다.

 

이후 그는 방장실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고,

심지어 그에게 교학을 가르쳤던 스승이던 萬化강사가 들어와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화가 그의 행동을 힐난하는 것에 대해서 ‘일이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하다’는 등의,

당시의 대중이나 심지어 대강백이던 만화강사 마저도 이해할 수 없었던 대답을 한 것은,

사실 계산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가 깨달은 선의 정체를 만화를 포함한 대중들이 알아차릴 것인가에 대한 시험,

선의 법통이 단절된 것에 대한 한탄과 자기가 끊어진 선의 법맥을 이은 것을

누가 알아줄 것인지에 대한 시험,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기가 바로 그 중단된 선의 법맥을

다시 이을 사람이라는 강한 암시가 그 행동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의 선법을 보자.

參禪이라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네 일상 생활을 잘 返照하여 자신의 주인공을 확연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外物의 잡된 것이나 생사에 이끌리지 않으면

홀로 뛰어나 분명하고 평안하게 된다.

그리하여 얽매일 것도 없고 해탈할 것도 없으며 번뇌도 없고 열반도 없다.

 

대저 이 현묘한 문을 참구하는 이는 항상 반조에 힘써

그것을 참구하고 마음이 생생하고 세밀하여 쉼없이 그것을 참구해야 한다.

이처럼 지극히 간절하게 하여 마음으로 참구할 수 없는 곳에 이르게 되면

갑자기 참구한다는 마음이 없어져 근본 생명에 이르게 되고

本地風光이 저절로 갖추어져 모자람도 남음도 없게된다.

 

경허에 의하면,

부처 되려면 우리는 자기의 몸에 있는 주인공인 마음을 찾아보아야 한다.

내 마음을 찾으려면 세상 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항상 내 마음을 궁구하되,

보고 듣고 일체 일을 생각하는 놈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가.

모양이 있는 것인가, 모양이 없는 것인가, 큰가 작은가, 누른가 푸른가,

밝은가 어두운가 의심을 내어 고양이가 쥐잡듯, 닭이 알을 안 듯,

늙은 쥐가 쌀 든 궤짝 쫓듯 하여 항상 마음을 한 군데 두어 궁구하여 잃어버리지 않고

의심하여 일을 하더라도 의심을 놓지 말고 그저 있을 때라도 의심하여

지성으로 하여가면 필경에 내 마음을 깨달을 때가 있게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모기가 쇠소 등어리를 뚫는 것과 같이,

부리가 들어갈 데가 없는 곳에 온 몸으로 사무쳐 들어가야 하는 것과같다.

 

경허의 법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수행법은 간화선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허가 깨침의 경지를 체득한 것은

서산 이후 그 법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한국불교의 특징인

간화선맥을 수 백년 만에 재건한 것이 된다.

  

 

2 경허 성우 대선사

 

 경허 선사가 연암산 천장암 인근 지장암이란 토굴에서 머물 때의 일화다.

엄동설한의 한 겨울을 토굴에서 혼자 정진하며 지내기로 한 경허 선사는

낡고 헐어 벽에 틈이 벌어지고 문창이 뒤틀린 암자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장(佛藏)에 보관되어 있던 경전을 모조리 뜯어 풀을 바른 후

문이나, 벽, 방바닥, 천장까지 남김없이 바르는 것이 아닌가.

암자로 찾아간 제자들이 이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스님, 성스러운 경전으로 이렇게 벽과 바닥을 발라 도배 장판을 하여도 됩니까?”

경허 선사는 태연히 대답했다.“자네들도 이러한 경계에 이르면 이렇게 해보게나.

토굴로 찾아간 제자들은 스승의 깊은 경지에 삼배를 올리고 물러나왔다는 선화(禪話)다.

 

 경허 스님의 이러한 경지는

불상을 올라타고 불쏘시개로 쓴 단하천연 선사나,

경전을 ‘똥 닦는 휴지’라고 표현한 임제 선사의 경지와 다름이 없다.

우리가 거룩하게 생각하는 경전이나 불상, 부처나 조사라는 고정관념을 훌쩍 초월한 상태이다.

임제록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逢佛殺佛 逢祖殺祖)는 경지다.

관념들로 부터도 벗어나 끌려가지 말라는 뜻에서‘죽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른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가르침은

부처와 조사라는 고정관념과 선입관, 분별심, 집착을 타파하라는 것이지

부처와 조사를 죽이거나 무시하라는 망언이 아님은 물론이다.

 임제 선사는 이 대목에서“설혹 부처와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명칭과 말과 문장일 뿐이다.

어린아이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병에 따라 쓰는 약일 뿐이다”고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일체의 분별심과 망념을 벗어난 무심(無心) 도인에게는

중생의 온갖 병을 치유하기 위한 8만4천 법문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경허 선사도 “부처님이 말씀한 모든 법은 온갖 분별심을 없애기 위해서다.

"내게는 이미 분별심이 없거니 그 모든 법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라고

당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경허집)

물론 부처와 중생, 보리와 번뇌, 옳고 그름, 사랑하고 미워함이라는 양변(兩邊)의 분별심을

버리지 못한 중생심으로 이러한 훼불(毁佛) 행위를 한다면

그는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한 망설임과 후회, 두려움 없이

스스로 부처와 조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부를 시작해야 할까.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분별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삼조 승찬 대사는 [신심명] 첫 머리에서

 “지극한 도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요 단지 취사선택하는 것을 꺼려할 뿐이니,

미워하고 좋아함에 얽매이지 많으면 단박에 오롯이 알게 되리라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고 하였다.

 

 마조 선사는 [마조록]에서

 “만약 곧바로 도를 알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시비도 없고, 취사(取捨)도 없고, 단상(斷常)도 없으며,

범성(凡聖) 등의 차별심, 분별심도 없는 그 마음이다.”고 같은 말을 하고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좋고 나쁨, 아름다움과 추함, 길고 짧음, 옳고 그름 등의

세간적인 분별심은 물론이거니와 선과 악, 중생과 부처, 보리와 번뇌 등

진리를 향한 길에서도 사량분별을 잠시도 쉬지 않는다.

일체의 분별과 망상이 끊어진, 물들지 않은 무심(無心), 청정한 ‘본래의 마음[本來心]’,

평상심으로 사는 것은 선(禪) 수행의 골수 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여기에는 간화니 묵조니 하는 수행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대주 선사는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이 해탈(解脫)이다”고 하였다.

이른바 ‘일체처에 무심하다’는 것은 증애심(憎愛心)이 없는 것이다.

좋은 일을 보고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나쁜 일을 보고도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분별심, 차별심, 증애심이 없이 무심으로 사는 생활은

청정한 평상심으로 일상생활을 지혜롭고 무애자재하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자 수행이다.

 이것을 언제 어디서나 생활화하면 화두를 들 필요도 없이,

어떤 좋거나 나쁜 경계가 오더라도 끄달리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임제 선사가 입이 닳도록 말한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된다면 서 있는 곳마다 그대로가 모두 참된 것이 된다”는

말을 수긍하는 날이 올 것이다

정월대보름

 

 

 

옛날 조상들은
달이 밝은 밤을 신비롭게 여겼다.
특히 보름날 밤에는
둥근 달을 보며 더욱 흥겨워 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중에서도
첫 번 째 찾아오는 정월 보름은
더욱 소중히 여겨서 "대보름"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정월 대보름날 뜨는 보름달을 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빌며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보름달 속에 소원을 비시고

풍성한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본다 / 묘원

 

 

                            누군가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해와 달고 별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새와 나무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자신이 지켜보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자신이 증인이 되어 나중에 자신이 직접 증언을 하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은 마음 속에서 저장되었다가 조건이 성숙될 때 결과로 나타난다. 

                            선한 행동을 했을 때는  선한 결과가 있고

                            나쁜 행동을 했을 때는  나쁜 결과가 있다.

 

 

 

마음으로 삼계가 생긴 것이고

열두 가지 인연도 그러하고

생사가 다 마음으로 짓는 것이니

마음이 다하면 생사도 사라질 것이다.

 (화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