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육체 영원한 마음 / 월하스님

2015. 3. 13. 12:2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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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한 육체 영원한 마음 / 월하스님 
 

 

 유머가 많은 사람이 건강하다고 합니다.
유머스러운한 사람은 남을 잘 웃기고
이마살 찡그리리는 일은 안하거든요

자기 마음이 쾌활한 사람이라야 남을 웃기지
자기 마음이 찌그러진
사람은 남을 잘 웃기지 못하거든요.

이것도 다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안 좋은 기분으로 살다 보면 항상 이마가 찡그려지고
얼굴에 주름살도 는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신과 모든 힘이 위축되어
결국 활력을 잃게 되고 빨리
죽게 마련입니다.
중생계에는 재앙 등 장애가 많습니다.

불심이 깊고 경험이 많은 분들은 재앙에 슬기롭게 대처하는데
그렇지 못한 분들은 앞뒤가 막혀서 혼미에 빠집니다.

그래서 그런 것 들을 잘 피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밝아야 하는데
지혜가 밝으면 그런 묘미가 생깁니다.
그야말로 죽지도 살지도 않은 그런 경계까지 밝혀서
잘 실행이 된다는 것이지요

불교 에서는 생사를 초월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죽는 것에도 걸리지 않고 사는 것에도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은 육체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지
육체를 떠난 입장 에서는 생사의 구애가 없다는것입니다.
그런데 중생 입장에서는 죽고사는 것이 분명히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초월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지요.

그러나 사람은 육체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중심으로 사는 것인데
마음이라는 것은 죽고 사는 것이 아님니다.

육체가 죽고사는 것이고 육체가 사는것 이지
마음 자체는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산다고 해서 별스럽게 더해지는것도 아니고
죽는다는고 해서 감해지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육체라는 것은 지수화풍 사대로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연따라 모였다가 흩어진다고 하지요
뼈는 흙에서 온것이기 때문에 흙으로 간다고 합니다

또 모든 액체, 소변 이나 피, 고름은 물에서 왔기 때문에
물로 가고, 체온은 자연물의 에너지를 취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로 돌아 갑니다.
또 움직이는 동작은 바람에 속하는데 그것 역시 바람으로 돌아가고
네 가지가 다 돌아가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는 허망 하다고 하는 겁니다

육체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섞여 형성되었기에
그것을 고정된 실체로 보지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 들은 육체처럼 깨끗한 것이 없고
육체처럼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몸 말고도 아무 물건도 없다해서 몸을 제일로 여기고,
조금이라도 상할까 봐 애를 쓰고 좋다는 약은 다 먹고
도움이 된다고 하면 무엇 이든지 다하지요,
그러나 육체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늙고 병들어 죽게 마련입니다. 그
래서 육체는 무상하다고 합니다.
반면 이면의 자기 마음자리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그대로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다음 애기를 통해 이러한 도리에 확신을 드리고자합니다.

옛날, 등은봉 이라는 스님이 주석하시는 큰절이 있었지요. 당연히
대중도 많았지요. 그러니 공양주 소임이 바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공양주 소임을 맡은 한 스님이 불을 지피다 잘못 하여
옷에 불이 붙는 바람에 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이 죽는 순간에 든 생각이
'내가 공양주를 안했으면 타 죽는 일이 없을 텐데'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공양주 소임을 맡긴 등은봉 스님을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사람이 일단 죽으면 염라대왕을 한번 거친다고 하지요.
염라대왕이 그사람이 생전에 복짓??일을 많이 했나 복을 감하는 일
을많이 했나를 살피는 것이죠. 복짓는 일을 많이 한사람은 좋은 곳으
로 안내해 사람으로 또 태어나게 한다든지,아니면 도인으로 태어 나
게 한다든지 하는 조사나 재판을 하는 셈입니다.

어째든 불에 타 죽은 공양주 스님이 염라 대왕 앞에 갔는데
염라대왕이 너는 생전에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지요.
그래서 불에 타죽은 것은 것을
억울 하게 여기고 있는 터라 마음대로 애길 했어요.

등은봉은 스님이 억지로 공양주를 시켜 밥을 짓다
옷에 불이 붙어 타 죽어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고
그 스님이 원망스럽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스님을 잡아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보탰어요.

염라대왕도 그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해
등은봉 스님을 데리고 오라고 저승 사자를 보냈어요.
절에 가면 가람신이 있는데 가람신은
도량 전체를 살피는 일을 합니다.
가람신이 저승 사자 에게 어딜 가는냐고 물었어요.
등은봉 스님을 데리러 왔다고 했더니 찾아보라고 하면서,
12년을 여기 있었어도 등은봉이란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그래요

역시 가람신이 말한 대로 아무리 찾아도 없자
그냥 돌아가서 그대로 염라대왕 에게 보고를 했어요.
그러자 불에 타 죽은 공양주는 발을 구르면서
거기 가면 있는데 못 찾고 왔다고 하더란 말이애요.

염라대왕은 그럼 네가 가서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가 보니 스님이 마당에 있었어요.
가서 붙잡고 염라대왕에게 가자고 했더니
무슨 이유로 나를 오라 하는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자총지종을 애기하고 자신의 불만을 털어 놓자
스님은 한 마디만 하고 가자면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자기의 성품과 마음자리는 본래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자리라고 하는 것은 능히 불로도 태우지 못하고
능히 물로도 빠뜨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게 와서 이러는 걸 보면 죽지 않은 모양이구나".
하는 거예요. 듣고보니 납득하지 않을수 없었어요

자기가 생각해 봐도 죽으면 아무것도 없을 텐데
이 스님을 원망하는것이 무엇인가 하는데
생각이 미치는 순간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깨닫고 나니까 스님을 원망한것도 부질없고
염라대왕에게 다시 갈 필요도 없게 되었답니다.

이렇듯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선 여러분들은 중생의 몸을 가지고 세상살이도 해야 하고
자녀도 키워야 하고 사업도 해야 하고 자기 몸도 가꿔야 하고
좋은 것도 사서 발라야겠고 좋은 옷도 입어야 하겠지요.
이것이 중생의 본 모습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 들은 찰나에 무너지고 말 것들입니다.
성불과는 더욱 거리가 멀지요.
그런데 그런 이치를 모르니까 자꾸 거기에 치중하고
그 야단치다 인연이 다해 죽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다 소용 없는 것이죠.

육체에 치중해 봐야 허망하고 허사라는 걸 깊이 깨닫고 나면
알뜰히 먹고 입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히 그런 생각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굶주리지 않을 정도로 먹으면 그만이고
적당히 입으면 그만이지
좋은 것 갖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불교 믿는 분들은 그것을 배워야 함니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차츰차츰 익히고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미소가 묻어나는 행복

    내 삶이 너무 버거워 하며 생각이들 때
    오늘하루 무사히 보내 감사하다고

    "가진 것이 없어" 라고 생각이들 때
    우리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고

    "나는 왜 이 모양이지" 라고 생각이들 때
    "넌 괜찮은 사람이야
    미래를 꿈꾸고 있잖아" 라고

    주머니가 가벼워 움츠려 들 때
    길거리 커피자판기 300 원짜리 커피의
    그 따뜻함을 느껴 보세요.
    300원으로도 따뜻해 질 수 있잖아요.

    이렇게 생각하지 못 하는 이유는
    당신이 살아 숨쉬는 고마움을
    때로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어 내일을
    오늘 보다 더 나으리라는 희망을
    생각한다면 우리 행복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삶을 늪에 빠뜨리는
    무모함은 없어야 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변하여진 당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답니다.

    나는 자식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에너지가 되는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에너지를 주는 것이 아닌
    빼앗는 말은 부정적인 말이겠죠.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좋은 말을 하면 그렇게
    좋게 되어 질 것입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나오는 음악 : How Can I Keep From Singing~Enya







      진실은 가슴속에 있습니다

      하고픈 말 다하고 살 순 없겠지요.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못할 때도 있고

      넘치도록 행복해도 굳이 말로
      하지 않을 때도 있답니다.

      좋은 일 있을 때 함께 기뻐해 주진 못해도
      가슴으로나마 잘된 일이라고

      축복해 주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외롭고 슬플 때 세상에 혼자라고 느낄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함이 안타까운 것을
      꼭 말로 해야 할까요.

      멀리서 지켜보는 아픔은 말로는 못한답니다.
      흔하디 흔해 지겹게까지 느끼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고
      그토록 아파하진 말아요.

      하고픈 말 다하고 살수는 없답니다 아끼고
      아낀 그 한 마디 사랑한다는

      그 말 쉽게 하는 것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은 가슴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