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성철스님

2015. 5. 24. 21: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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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성철스님   


1. 자기 마음자리는 밝히지 못하고 망령되게 남의 스승 노릇하는 병통

생각컨대 마음 자리법문〔心地法門〕은 참구하는 근본이다.
마음자리란 무엇인가? 여래께서 크게 깨치신 성품이다.
그러나 옛부터 한 생각 뒤바뀌어 사물을 자기로 착각하며
탐욕이 불길같이 타올라 생사 떠다닌다.

각성〔覺照〕이 어두워지고 무명(無明)이 덮여 업륜(業輪)이 밀고 굴러나가면서
자유롭지 못하니, 일단 사람의 봄을 잃으면 긴 세월 동안 돌이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어 많은 방편문을 베푸셨으나
의미에 막히고 말을 따지면서 다시 상견(常見), 단견(斷見)에 떨어진다.

조사께서 이를 불쌍히 여기고 심인(心印) 하나만을 전하여,
단계적인 수행을 거치지 않고 단박에 범부와 성인을 뛰어넘게 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 깨달아 의혹의 뿌리를 영원히 끊게 하였을 뿐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대부분 여를 태만히 하고 쉽게 여겨,
총림에 들어오긴 했어도 열심히 참구하겠다는 마음을 게을리 한다.
설사 여기에 마음을 두는 정도는 되었다 해도 선지식을 잘 가려 찾지 않아서
삿된 스승의 허물과 오류로 둘다 함께 종지를 잃는다.

육근(六根), 육진(六塵)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삿된 견해를 내므로,
저 마군의 경계로 들어가 본심〔正因〕을 완전히 잃는다.

그리하여 주지하는 일만을 급선무로 여기며 외람되게 선지식이라 자칭할 줄만 알 뿐이다.
그렇게 헛된 명예를 세상에 날림을 귀하게 여기니
몸에 쌓여가는 악을 어찌 다 논할 수 있겠는가.

후학을 귀 먹고 눈멀게 할뿐만 아니라, 교풍을 피폐시킨다.
높고도 드넓은 법왕(法王.)의 자리에 올라 어찌 뜨겁게 달궈진 무쇠 평상에 누워
순타(純院)가 주는 최후의 음식을 받겠는가.

잠깐 있다가 뜨거운 구릿물을 마시게 되면 두려움에 떨어야 할 것이요.
스스로 편안하게 여길 곳이 없다.
대승(大乘)을 비방한 죄는 그 과보가 작지 않을 것이다.


2. 무리를 지어 가풍은 지키면서 이치에는 통달하지 못하는 병통

생각컨대 조사가 서쪽에서 여기까지 오신 것은 전할 만한 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 마음을 그대로 지적하여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고자 하였을 뿐이다.
그러니 어째 숭상할 만한 가풍이란 것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뒤에 가서는 대대로 종사들이 교화를 달리 세우게 되었고
이윽고는 서로가 내력을 따르게 되었다.
우선 혜능(慧能), 신수(神秀) 두 대사는 원래 조사 밑에서 견해가 달랐다.
그러므로 세상에선 남종(南宗), 북종(北宗)이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혜능이 가신 뒤 행사(行思) 청원, 회양(懷讓) 남악 두 대사가 나와 교화를 이었다.
행사스님에게서 회천(希邊) 석두스님이 배출되고 회양스님에게서 마조( 馬祖)스님이 나와
강서(江西) 석두(石頭)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두 갈래로 내려오면서 각자 줄줄이 파를 나눠 모두가 한 지역씩을 차지하였는데,
그 시작되는 원류를 다 기록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덕산(德山), 임제(林際), 위앙(寫 째),조동(費洞), 설봉(雪峰),운문(雲門)에 와서는
각자 높고 낮은 품격대로 가풍을 세워 법을 폈다.

그러다가 계승하는 데에 이르러선 자손들이 종파를 지키고
조사에 따라 무리를 짓느라 진실된 이치〔眞際〕에 근원을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끝내는 많은 갈래를 내어 칼과 창칼이
서로 공격하며 흑백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다.

슬프다. 큰 도는 정해진 방향이 없고 법의 물줄기는
똑같은 맛임을 전혀 몰랐다 하겠으니 허공에다 색을 칠하고
철석에다 바늘을 던지는 격이다.

싸움을 신통이라 여기고 입만 나불거리면서 그것을 삼매라고 하여
시비가 시끄럽게 일고 인아산( A我山)이 높다.
그리하여 분노가 일면 그것이 아수라(阿修羅)의 견해가 되고,
끝내 외도( 外道)를 이룬다.

만일 선량한 벗을 만나지 못하면 미혹의 미루터기에서 빠져 나오기 어려워,
비록 선인(善因)을 심었으나 악과(惡果)를 부른다.


3.강령을 제창하면서 맥락을 모르는 병통

생각컨대 선문을 표방하고 법요(法要)를 제창하려 하면서 맥락을 모르면
모두가 망령되게 이단(異端)이 되고 만다.

그 사이에는 먼저 표방하거나 뒤에 제창하기도 하며
불법을 설명하기도 하고 기봉(機錢)을 단박에 꺾기도 한다.

조사의 법령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살리고 죽임이 손아귀에 있어서
혹은 천길 절벽에 선 듯 물샐 틈 없기도 하고,
혹은 자재한 살림을 잠깐 허락하여 물결을 따르기도 한다.
마치 왕이 칼을 어루만지면서 자유로와진 것을 귀하게 여길 때,
그때그때 쓰면서 주었다 뺏었다함이 몸에 차고 부리는 듯하다.

파도가 날 듯 선악이 서있듯 하고 번개가 구르듯 바람이 달리듯 하며
큰 코끼리 왕이 유희하고 진짜 사자가 포효하듯 한다.

그러나 자기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쓸데없이 남의 말을 훔쳐 놓아주는 것만 알 뿐 거둘 줄은 모르고
살리기만 하고 죽일 줄은 몰라 종〔如〕인지 낭군인지를 분별 못하고
진짜와 가짜를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옛사람을 모독하고 종지를 매몰하여 사람마다 알음알이 속에서 헤아리고
낱낱이 오음 십팔계(五陰十八界) 안에서 찾는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깨달음인 줄을 몰라
가짜 반야[相似般若〕를 이룰 뿐이니
머물 것 없는 근본에서 법당(法童)을 세우고
부처님을 대신하여 법을 펴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듣지도 못했는가. 운문(雲門)스님께서
“온 나라를 통틀어 화두 드는 사람 하나를 찾아보아도 찾기 어렵다”라고

하셨던 것을 또 듣지도 못했는가.

황벽(黃緊)스님께서
“마대사(馬大師)가 팔십여 명의 선지식을 배출하였으나
물었다하면 모조리 구구한 경지일 뿐이고,
유일하게 여산스님이란 분이 그래도 약간 나은 편이다.”라고 하셨던 것을.

이로써 이 지위에 앉아 법령을 드러내고 강령을 제창할 줄 알면
바로 완성된 종장(宗E)이라는 것을 알겠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듣지도 못했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싹을 보면 토질을 알고 말하는 것을 보고 사람을 알아내니
눈을 깜짝이고 눈썹을 드날리기만 해도 벌써 간파해 버렸다.”라고 했던 것을.
하물며 남의 모범이 되어서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운함과 사랑 / 이해인

사랑하는 이가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서운하게 할 때는
말을 접어 두고 하늘의 별을 보라.

별들도 가끔은 서로 어긋나겠지.
서운하다고 즉시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별들도 안다.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중에서 -

 

 


행복의 문을 여는 비밀번호


일상의 풍요로움은

욕심 그릇을 비워서 채우고

자신의 부족함은 차고

매운 가슴으로 다스리되

타인의 허물은

바람처럼 선들선들 흐르게 하라.

생각은 늘

희망으로 깨어있게 손질하고
어떤 경우도 환경을 탓하지 말며

결코 남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미움은 불과 같아

소중한 인연을 재로 만들고

교만은 독과 같아

스스로 파멸케 하니

믿었던 사람이 배신했다면

조용히 침묵하라.

악한 일엔

눈과 귀와 입을 함부로 내몰지 말고

선한 일엔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탕진하여

삶의 은혜로움을

깊고 깊은 사랑으로 완성하라

 

 


- 헬렌 니어링, 소박한 밥상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