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佛法)이란? / 만공스님

2015. 6. 26. 11:2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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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佛法)이란? / 만공스님

 

 

불법(佛法)이라고 할 때, 벌써 불법은 아니니라.
일체의 것이 그대로 불법인지라 불법이라고 따로 내세울 때에
벌써 잃어버리는 말이니라.

물질(物質)은 쓰는 것이요,

정신(精神)은 바탕인데,
물질과 정신의 일단화(一單化)를 불법이라 하나니라.

불법엔 완전을 이루지 못하면,

인생의 영원한 전정(前程)을 보증할 길이 없나니라.
불법은 어느 시대 어떤 인간의 호흡에도 맞는 것이니라.

불법을 듣고 생명의 중심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인간의 생명을 잃어 버린 사람이니라.

불(佛)이라는 것은 마음이요, 법(法)이라는 것은 물질인데,
불법이라는 명상(名相)이 생기기 전에, 부처가 출현하기 전에,
나는 이미 존재한 것이니라.

질그릇 같은 나를 버리면

칠보(七寶)의 그릇인 법신(法身)을 얻나니라.

입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요, 손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니,
말하고 일하는 그 정체(正體)를 알아야 참된 말과 일을 하는
정작 인간(人間)이 되나니라.

불법은 육체나 영혼의 책임자이다.
책임자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그 얼마나 불안한가.
이것을 알면, 곧 불법에 돌아오게 될 것이니라.

세간법(世間法)과 불법이 둘이 아니요,

부처와 중생이 하나니,
이 불이법(不二法)을 증득(證得)해야 참 인간이 되나니라.

불법을 알면 속인(俗人)이라도 중이요,

 중이라도 불법을 모르면 이는 곧 속인이니라.

여러가지의 자물쇠를 열려면 여러가지의 열쇠가 필요한 것 같이
백천삼매(百千三昧)의 무량 묘리(無量妙理)를 해득(解得)하려면
백천만의 지혜의 열쇠를 얻어야 하나니라.

불법을 부인(否認)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요,
불법을 배척(排斥)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배척하는 것이니,
이는 곧 자기가 부처이기 때문이니라.

소리소리가 다 법문(法門)이요,

두두 물물(頭頭物物)이 다 부처님의 진신(眞身)이건만,

불법 만나기는 백천만겁(百千萬劫)에 어렵다고 하니,

 그 무슨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도리인지 좀 알아 볼 일이니라.

불교(佛敎)란?

불교(佛敎)라고 주장할 때 벌써 불교 교리와는 어긋난 것이니,

불교 교리는 아집(我執)을 떠난 교리이기 때문이니라.

불교의 종지(宗旨)가 악(惡)을 징계하고 선(善)을 장려하는 종교가 아니라,

선악이 다 불법인 까닭에 천당·극락의 즐거움이나,
반대로 지옥의 극고(極苦)한 세계가 다 나의 창조물인 까닭이니라.

먼저 대가(代價)없이는 얻어지지 않고,
노력 없이는 성공이 오지 않는 것이 우주의 원리이니라.

일체는 그대로 불(佛)이기 때문에

일정한 규칙이나 조직을 세워서 가르치지 않고,

기류 차제(機類次第)로 가르칠 뿐이니라.

불교의 유심(唯心)이란 유물(唯物)과 상대가 되는 유심이 아니요,
물심(物心)이 둘이 아닌 절대적인 유심임을 말하는 것이니라.

허공(虛空)은 마음을 낳고,

마음은 인격(人格)을 낳고,

 인격은 행동을 낳나니라.

세상에는 물심 양면이라면 우주의 총칭(總稱)인 줄 알지만,
우주의 정체(正體)는 따로 있나니라.

불교에서는 신(神)을 초월하여 법신(法身)이 있고,

영혼 위에 진인(眞人)이 있음을 알아,

그것을 증득하는 것으로 구경(究竟)을 삼는데,

육신(肉身)과 신과 영혼의 근본이 법신이요,
그 근본을 잃어 버린 육신과 신과 영혼이 서로 교환 이동(交換移動)하는 생활이

사바 세계(娑婆世界)의 인간이니라.

불교는 전인류의 자아(自我)를 완성시키는 교육 기관이니,
다종(多宗). 각법(各法)의 종교가 다 진아 완성의 가교(架橋)요 과정이니라.

불교 교리의 오의(奧義)는 표현할 수 없는 법이지만,
각자가 다 이미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응할 수 있고,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없으되 주고 받을 수 없는 그 법을
전불(前佛)·후불(後佛)이 상속하여 가나니라.

 

 

                                                                                              - 북한작가 장일남의 수채화
5월의 시 - 이해인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

하늘이 잘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요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씻게 하십시요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속에 퍼올리게 하십시요

말을 아낀 지혜속에 접어둔 기도가
한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월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요

은총을 향해 깨어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속에 물흐르게 하십시요

구김살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내는 5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요

 

 

                                                                                  

본바탕 성품은 비록 비었으나, 법칙(法則)을 잘 베풀 수 있네.

體性雖空, 能施法則.        - 부대사 심왕명(心王銘)에서

본성이라는 정해진 물건은 없지만,
만물의 법칙이 모두 본성으로 인해 드러나기에 본성을 떠난 만물은 없지요.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정성을 쏟으면 결실을 맺을 것이고,
풀려 나면 자유로우며,
집착하지 않으면 구속이 없습니다.

공부를 하면 깨어날 기회를 갖지만,

마음공부에 뜻이 없다면 영원히 분별망상 속을 살지요.
모든 것에는 인과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오늘 이렇게 아픈 이유가 있을 것이고,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과보를 받으며,
나쁜 일을 하면 좋지 않은 결과가 찾아올 것입니다.
생겨난 것은 사라지게 되어있고, 행동을 하면 그에 따른 변화가 찾아옵니다.
생사의 법칙은 엄연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인과와 생사가 마음바탕의 일이어서

원인이 있어도 원인이 아니고 결과를 받더라도 결과가 없습니다.
나타나는 것은 사라짐의 인연을 따르지만,

제대로 보면 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어떤 정해진 본성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취하고 버릴 수 있는 마음은 없습니다.
취하고 버리는 것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영화가 그것그대로 텅빈 마음이지만,
텅빈 마음은 언제나 각양각색으로 드러납니다.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가만히 보십시오.
지금 당장 만물이 알 수 없는 채로 이렇게 나고 사라지고 있음을요.
모든 것이 그저 지금 여기에서 이런저런 인식의 작용으로 춤을 추고 있음을요.
영구불변의 그것이랄 게 없지만, 이 묘한 작용은 끝이 없습니다.
헤아릴 수 있는, 혹은 드러나는 어느 것도 이것을 벗어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강력한 이 부정할 수 없음이

끝끝내 모든 분별망상심을 조복시킵니다.

 

- 몽지릴라 밴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