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대로 그냥 놓아두라/법상스님

2015. 7. 4. 11: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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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대로 그냥 놓아두라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진리,
즉 무상(無常)의 진리이다.

일체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한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찰나 찰나로 흐른다.
어느 한 순간도 멈출 수 있는 것은 없다.

변화를 멈출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어떻게 멈출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변한다는 진리를 멈출수는 없다.
진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그렇듯 끊임없이 변화해 가기 때문이다.

고정된 진리는 하나도 없다.
끊임없이 변화할 뿐.
변화한다는 그 사실만이 변치않고 항상할 뿐.

진리와 하나되어 흐를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이 그대로 진리가 된다.
우리 자체가 곧 진리의 몸이 되어 버린다.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진리와 하나되어 흐르라.
그러면 어떻게 진리와 하나되어 흐를 수 있는가.

변화한다는 진리,
무상이라는 진리와 하나되어 흐르면 된다.
변화를 받아들이며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그 흐름을 벗어나려 하지 말라.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변화는 진리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진리다운 현상이다.
그러니 변화를 붙잡으려 하지 말라.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데서 온다.

변화하는 것은 두렵다.
변하면 안 될 것 같다.
지금 이 모습이 그대로 지속되길 바란다.

이 몸이 지속되길 바라고,
이 행복의 느낌이 지속되길 바라며,
내 돈과 명예, 권력, 지위, 가족, 친구, 사랑......
이 모든 것이 지속되길 바란다.

그것들이 변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변화는 곧 괴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도된 망상이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변화’한다는, 무상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지속’과 ‘안주’를 바란다.
지속됨과 안주 속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언제까지고 지속되는 것은 없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영원히 안주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변화만이 있을 뿐.
변화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온전한 진리이다.
그러므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말라.
몸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며,
감정도 변하고, 사랑도 미움도 변한다.
사상이나 견해도 끊임없이 변하고,
욕구나 욕심도 변한다.
명예나 권력, 지위도 언젠가는 변하고 만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름다운 법계의 본연의 모습이다.
바로 그것을 받아들이라.

함께 변화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수행이란
바로 이것 밖에 없다.

모든 것은 변화하는데
나만 변치않고자 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난다.
모두가 변화하는데 나는 변하기 싫고,
다 변하는데 내 것은 영원하길 바라며
내 생명, 내 소유, 내 사랑, 내 사상은 영원하길 바란다.

모든 것을
변하는 대로 그대로 두라.

어떻게 하려고 애쓰지 말라.
붙잡아 두려고 노력하지 말라.
어떻게 바꿔보려고 다투지 말라.

그냥 변한다는 진리를
변하도록 그냥 놓아두라.

그 흐름에 들라.
변하지 않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 삶의 목적이
‘변치않음’을 추구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 세상을 그냥 놓아두라.
어떤 것도 붙잡지 말라.
집착하지 말라.

다만 흐르도록 놓아두라.
변화하도록 그대로 두라.

‘나’라는 것도 붙잡지 말라.
‘나’도 끊임없이 변화할 뿐,
거기에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
안주할 내가 없다.

이 세상은 그냥 놓아두면 스스로 알아서 흐른다.
그리고 그 흐름은 정확하다.
정확히 있어야 할 일이
있어야 할 그 때에
있어야 할 곳에 흐르고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법계라고 하는 것이다.
명확한 진리, 법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라는 뜻이다.

법계는 변화에 의해 온전하게 흐르고 있다.
그 흐름을 거부하지 말라.
그대로 놓아두라.

어떤 것도 잡지 말라.
깨달음 또한 잡지 말라.
잡을 것이 없는 것, 고정된 것이 없는 것,
안주할 것이 없는 것, 항상하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깨달음이라 한다.
그런데 왜 도리어 그것을 잡지 못해 안달하는가.

깨달음은 잡았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놓았을 때 온다.
깨닫고자 애쓸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조차 완전하게 쉴 때 온다.
깨달음 속에 안주하려 들지 말라.
안주하는 순간 깨달음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오직 이것이다.
그냥 놓아두라.
어느것도 붙잡지 말라.
변하는 대로 그대로 놔두라.

변화는 진리이니 그것을 따를 일이지
그것을 내 고집으로 붙잡고자 하지 말라.

이렇게 단순한 것이 불법이다.
단순한 진리를 공연히 머리굴려 어렵게 만들지 말라.
단순한 것은 단순하게 놓아두라.

그저 푹 쉬기만 하라.
푹 쉬면서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함께 따라 흐르라.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놓아두라.
그저 놔두고 푹 쉬기만 하라.

 

 

 

  장류수 長流水

 

  도도대하(滔滔大河)  도도히 흐르는 저 큰 강물이여
  무변무제(無邊無際)  가도 없고 끝도 없구나,
  원원부절(源源不絶)   흐름이 멀어 끊이질 않으니
  종우귀해(終于歸海)   마침내 바다로 가는구나!

 

 

 

 

산노을 비낄때 / 지안스님

 

해질 무렵 마당에 있는 평상에 앉아 오랜만에 산 너머 구름 사이로

하늘이 빨갛게 물드는 노을을 보았다.

요즈음은 이처럼 아름다운 노을을 보는 것도 흔하지 않다.

기후가 변한 탓일까? 멋진 노을은 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아주 가끔씩만 내게 허락한다.

저녁노을은 신비로운 색깔로 사람의 마음에 생각의공간을 키워준다.

 일찍이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노을에서

종교적 실존을 추구하는 단서를 찾았다 한다.

어느 정치인은 인생의 끝자락을 노을빛으로 짙게 물들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황혼을 마주하며 어떤 이별을 예감이라도 한듯

지나간 날을 회한하면서 깊은 애상에 빠져드는 사람도 있었다.

넘어가는 해가 하늘을 물들이며 산 너머 구름 사이로

선혈같은 붉은 빛을 토해내는 것을 보라.

수많은인연에 의지하여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단독자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실존적 고독이 노을처럼 영혼의 하늘을 물들일 것이다.

분명한 건, 저녁노을을 보고 자신의 고독을 발견한 자는 스스로에 대해

끝없는 연민을 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은 무지개처럼 찬란하게 살고 싶어 했던 인생이 결국

노을빛 회한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살면서 겪어온 숱한 고난의 사연도 노을 속에 투영해서 보면

모두가 스쳐간 기억의 편린에 불과함을 알게 될 것이다.

산봉우리 위에 떠 있는 구름처럼 내 존재의 허상이 내 생각의 머리 위에

까닭 없이 떠 있음도 보게 될 것이다.

살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영욕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라는 일본 시인이 있었다.

26세로 요절한 매우 불우한 시인이지만 근래에 와서는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의 한사람이 되었다.

스님의아들로 태어난 다쿠보쿠는 어쩌다 고향에서 쫓겨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선동하여 데모를 일으켜 교장을 내쫓았는데,

그 일이 문제가 되어 고향 사람들이 그를 쫓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객지에서 망향의 슬픔을 안고 살다 한번은

걷잡을 수 없는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결심하고 조용한 바닷가를 찾아간다.

죽으려고 찾아간 바닷가 하얀 백사장에서 그는 작은 게 한 마리를 발견한다.

동해 바닷가
조그만 갯바위 하얀 백사장

나는 눈물에 젖어
게와 놀았지.

다쿠보쿠는 그 게에 눈이 팔려 놀다가 자살할 생각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돌아와 위 시를 지었다. 다른 뭐 대단한 게 아니라

그저 작은 게 한 마리가 그를 살린 것이다. 고작 작은 게 한 마리가.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것이 삶에 불쑥 끼어드는 때가 있다.

그것은 미처 거부할 틈도 없이 별안간 내면으로 파고들어,

북받친 감정 같은 것을 돌파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놓고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산 노을' 이나 '다쿠보쿠의 게'처럼 말이다.

그러니 보고 듣는 경계를 통해 세상을 세밀히 관찰할 일이다.

그리한다면 괴로움이나 슬픔에서 탈출할 수 있는 돌파구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