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6. 20:5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앉은 자리에서 해탈하는 법
불교에서 깨달음의 성취를 삼해탈문(三解脫門)의 성취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삼해탈문이란 해탈을 얻는 세 가지 방법입니다.
첫째는 공해탈문(空解脫門)으로 일체가 다 공하다고 관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으로 상대적으로 차별된 모양이 없다고 관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 또는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으로
일체 것을 구할 것이 없다고 관하는 것입니다.
이 삼해탈문은 우리가 스스로의 참된 본성을 깨닫고 나면 저절로 생기는 안목이자
능력입니다. 실상을 제대로 깨치고 나면 모든 것이 꿈과 같고 허공과 같다는 자각이
옵니다.
또한 이 허공이 그저 허무한 허공, 그야말로 빈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로서 상대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모든 것이 허공과 같고, 그것이랄 게 없으니 마음을 내어 무언가를 얻거나 바라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아무것도 실체가 없지만 하나의 일로서 이미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묶여있지 않으니 본래 해탈이었습니다. 이미 일체가 그것이랄 게 없으니 적멸입니다.
이미 일체가 하나의 마음으로 온갖 꿈과 같은 연기가 펼쳐지니 생생하고 생생합니다.
본래 이랬습니다. 다만, 스스로가 이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작 없는 세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사로잡혀온 분별 의식과 그 분별된 것에 대한 애증,
집착 때문에 스스로의 눈이 어두웠던 것입니다.
지금 가만히 스스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면 온갖 일이 펼쳐지지만 한 생각이 없을 때는 아무런 일도 없습니다.
생각이 없다는 일도 없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일어난 습관화된 생각에 속고, 생각 따라 일어난 감정에 속고, 감정 따라 일어난
집착에 속고 있을 뿐입니다. 본래, 생각 즉 분별 의식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시작은 이 한 생각입니다. 인연 따라 일어난 무의식적 분별, 미세한 분별에 순식간에
사로잡히는 것이 번뇌에 시달리는 일반 사람들의 모습이고,
이것이 그저 지나가는 바람처럼 실체 없는 생각임을 뚜렷이 자각하는 것이
깨달음도 잊고 얻을 것도 놓아버린 사람의 경계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생각이 일어난 것도 생각이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본래 없던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니 아무 일이 없는 것입니다. 깨닫든 깨닫지 못했든 본래 아무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깨달았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고 깨닫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습니다.
본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여기에서 홀연히 일어난 망상에 사로잡히지 않을 뿐입니다.
이 온갖 망상의 근원은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지만 늘 여여합니다.
생각이 일어나도 상관없고, 생각에 사로잡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가 눈이 멀어 일어난 그림자와 헛것에 휘둘리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삼해탈문도 성현들이 마지못해 베푼 친절이어서 따로 존재하지 않고,
여러 가지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이 다르지 않을 뿐입니다.
유마경에 악마 파순이 천녀를 데리고 내려와 유마를 유혹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실패하자 다시 천녀들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깨달음의 마음을 낸 천녀들은 악마를 따라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자 악마가 유마에게 보살의 마음으로 천녀들을 돌려달라고 합니다.
유마는 천녀들을 오욕의 상징인 악마에게 돌려 주었을까요?
아니면 돌려주지 않고 청정한 법의 세계에 머물도록 하였을까요?
유마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천녀들을 다시 악마 파순에게 돌려줍니다.
본래 악마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욕은 생각이 일으킨 욕망입니다.
이 욕망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오욕이 따로 없으니 청정한 세계도 따로
없는 것입니다. 즉 악마가 그대로 악마가 아니고 유마라고 유마가 아닙니다.
악마가 유마이고 유마가 악마입니다. 천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본래 살아온 그 자리, 따로 옮겨갈 자리가 없는 곳에서 아무 일이 없어질 뿐입니다.
사람들은 온갖 차별된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부자로, 어떤 이는
가난뱅이로, 어떤 이는 장사치로, 어떤 이는 지도자로, 어떤 이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백수로, 어떤 이는 가정주부로, 어떤 이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가장으로, ....
그 자리에서 해탈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본래 아무 일이 없는 곳임을 여실히 깨달을 뿐입니다.
천녀를 유마의 손에 넘기는 공부가 아닙니다. 앉은 자리에서 아무런 시간과 공간의
변이 없이 해탈하는 것이 이 묘법입니다.
- 릴라님
긍정이 최고의 유머
차동엽 신부가 쓴
"무지개 원리"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한 사람이 낙천주의자에게
행복해지는 비법을 물었답니다.
"만약 당신이 모든 친구를 잃는다면
그래도 행복할 수 있나요?'
"그럼요.. 비록 친구는 잃었어도,
내 자신은 잃지 않았으니 행복하지요. 하하"
그럼 길을 가다가 진흙탕에
빠졌는데도
그렇게 웃으시겠습니까?"
"그럼요.
제가 빠진 곳은 깊은 연못이 아니라
고작 진흙탕이잖아요.하하"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아도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그럼요...
주먹으로 한 대 맞았을 뿐이잖아요.
칼로 맞은 것보다야 낫죠..하하"
살다보면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이 정말로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나도 모르게 생각이 밝아집니다.
긍정보다 더 재미있는 게 있을까요?
쌍문동에 사는
이현숙님은 치과의사 입니다.
그분은 유방암에 걸려
몇 년동안 고생을 하셨습니다.
얼마 전 그분을 만났을 때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건물이 오래되면 리모델링 하잖아요.
예쁘게 재단장되면 가격이 오릅니다.
사람도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유방암 수술을 해서
제 몸을 리모델링 했더니..
제 몸값이 올랐어요..호호호"
놀랍게도 그분은 지금
치과의사를 그만두고
웃음치료사 가 되었습니다.
긍정이 최고의 유머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 인생의 꿈은
인간이 갖는 모든 종류의 아픔,
고통, 슬픔, 괴로움, 부정적인
생각 등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도록 돕는 것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유머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공격적으로 이겨내도록 돕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유머는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눈구경은 실컷했지만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 중에도
미국에서 공부하던 딸이 한국에 왔다가
새학기를 앞두고 출국하기 바로 전
눈길에 미끄러졌습니다.
그 사고로 팔에 금이 가고
인대가 손상되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출국과 학사 일정이
연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손녀가 다쳤다는 소식에
시골에서 급하게 올라오신 할머니 는
풀이 죽어있는 딸과 손녀를 보고는
함께 기도하자고 하셨답니다.
“우리 손녀가
대꿀빡(?)이 뽀사지지 않고
팔이 부러져서 감사합니다.
또 다리몽댕이(?)가 부러지지 않고
팔이 부러져서 감사하고,
궁둥이뼈(?)가
다치지 않아 감사합니다.
또한 밥 먹는 팔이 아니라
왼쪽 팔을 다쳐 감사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두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하던 모녀는
할머니의 유머러스한 감사 기도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박장대소 포복절도로
웃음보가 터졌다는 것이다.
원래 사투리를 쓰지 않는 분이
사투리를 쓰시는 것보다
더 그 상황을 감사하는 것에서
큰 힘과 웃음을 받았다고 좋아합니다
유머는 긍정에서 나옵니다.
상황을 놀랍도록 반전시키는
이런 긍정유머 하나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자신을 즐겁게
포지셔닝할 수 있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유머코치로 활동하면서
'진정한 명품유머는
남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즐거움에서 온다.' 는 것을 배웠습니다.
꼭 한번을 웃기더라도
사람의 영혼을 울리는
유머가 있습니다. 바로 긍정유머!
ㅡ유머발전소ㅡ
모든 날 중 가장 완전히 잃어버린 날은
웃지 않는 날이다. <샹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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