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4. 18:02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허공법계에 두루한 깨달음[覺性]의 큰 나[大我]를 증득하는 지름길
나[我]는 누구인가?
사람의 마음은 본래 깨달아 있고, 밝게 빛나고 있으며
그 본체는 온 법계에 두루 합니다.
다만 시작이 없는 먼 옛적부터 망령되이 움직인 까닭에
그 마음이 육진경계에 가려져 사람들의 지각(知覺)은 한쪽으로만 치우쳐,
오직 이 사대(四大) 육신으로 이루어진 작은 나[小我]만 인식하고
허공법계에 두루한 깨달음[覺性]의 큰 나[大我]를 망각하게 되었지요.
이것은 사람들이 「나[我]」라고 여기는 이 몸뚱이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 근(根), 식(識) 등 칠대(七大)가
잠시 모여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7가지를 하나하나 해체해 본다면
이 몸뚱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겠지요.
우리들의 피부와 살, 근육과 뼈는 지대(地大)에 속하고,
피ㆍ침ㆍ오줌ㆍ눈물 등은 수대(水大)에 속하며,
따뜻한 기운은 화대(火大)이고,
기력과 움직임은 풍대(風大)이며,
신체 내외의 허공은 공대(空大)에 속하지요.
그리고 또 육근(六根) 즉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의식[意]은
근대(根大)에 속하며, 근(根)마다 하나의 식(識)이 있는데
이 6가지 식은 식대(識大)에 속하지요.
그러니 만약 이것들을 전부 분리를 시킨다면 이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니, 어디에 또 ‘나’가 있다 하겠습니까?
가명(假名)과 가상(假相)
비록 현재는 이 7가지의 조건들이 잠시 모여서 ‘나’가 있는 듯싶지만
사실 더러운 껍데기에 불과하며 그 속에는
비린내 나는 더러운 물건들이 잔뜩 담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법문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똥을
가득 담은 가죽자루를 들고 주둥이를 꽁꽁 묶어서 이 법당에 들여
놓는다면, 우리는 더럽다고 코를 잡고 멀리 피하거나, 혹은 재빨리
그 자루를 법당 밖으로 멀리 내다버리겠지요.
그러면서 신성한 법당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 똥자루와 같습니다.
우리의 이 몸뚱이 자루는 진짜로 똥을 가득 담은 가죽자루보다
결코 깨끗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똥자루는
주둥이를 묶어 놓았지만, 사람들의 이 몸뚱이 자루는 아래위로
입을 벌리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있으며,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부정한 것들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항상 이 더러운 가죽자루를 ‘나’라고
여기면서 아끼고 또 아끼지요.
그래서 이렇게 화장도 해보고 저렇게 보양도 해보는데,
만약 부처님의 안목으로 봤을 땐 정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이 몸뚱이는 ‘나’가 아니라 내가 사용하고 있는 하나의 물건이며,
나[我] 뒤에 소유격을 붙여 ‘나의 것’이라 불러야 옳습니다.
왜냐하면, 이 몸은 나의 것의 일부분에 속하므로 마치 내가 사용하고 있는
하나의 물건과도 같아서 내가 사용하고 싶을 때만 사용하고,
사용하기 싫을 땐 놓아 버릴 수 있어 번거롭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 몸은 도리어 짐만 될 뿐이겠지요.
보통 사람들의 습관은, 이 몸을 ‘나’라고 여기고 나 밖은 사람[人]이며,
많은 사람이 모여서 중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오래 살고자하는 생각은 계속되어
끊이질 않는데 이것이 곧 수자(壽者)지요.
사실 이런 것들은 모두 가명(假名)과 가상(假相)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과 나는[人我] 상대가[相待假]이고,
중생은 인성가(因成假)이며, 수자(壽者)는 상속가(相續假)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것들이 떠나면 어디에 또 「나」가 있겠습니까?
나[我]란 주재(主宰)라는 뜻으로, 결코 사람들의 이 색신(色身)의 ‘나’는
자신의 뜻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배가 고플 땐 음식을 먹지 않으면 안 되고,
갈증이 날 땐 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며,
목숨이 다하면 죽기 싫어도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예쁜 걸 보면 몇 번을 더 쳐다보지 않으면 안 되고,
오욕(五慾)의 경계를 만났을 때 누리지[享受] 않으면 안 되지요.
그러나 이것은 벌써 주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지요.
이처럼 먹고 마시고 향수(享受)하는 것은 생명에 속하는 일이나
생명에는 생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 밖에 또 하나의
‘지혜의 생명[慧命]’이 있는데, 이것은 영원히 생멸이 없는 것이지요.
무엇이 ‘생멸이 없는 혜명’일까요?
바로 사람마다 본래 갖고 있는 지각성(知覺性)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지각성은 비록 아무런 형상이 없지만 진허공,
변법계(盡虛空, 遍法界)에 없는 곳이 없고, 아닌 곳이 없습니다.
-
염불을 하는 것은,
곧 자신의 법신혜명을 키우는 것이며,
부처님의 힘과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서방극락세계 왕생을 구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견[佛知見]을 열고
자신의 본각(本覺)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 담허대사의 <염불론> 중에서
블루포피님의 보타닉 가든
저는 꽃잎이 비로드같은 홑겹의 자주 빛 아이비제라늄이 좋더라고요.’ 라고
저의 사진에 댓글을 올리신 것 아직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계곡님을 너무 닮은 제라늄을 좋아 하시는구나 생각을 했지요.
홑겹의 제라늄은 아니나 지난 주말에 보타닉가든에서 아이비 제라늄을 만났습니다.
높은 곳에 아름다운 돌 화분에 자주 빛의 아이비 제라늄을 가득 심어 놓았습니다.
요즘 삶의 방에 자주 게시되는 계곡님의 글을 읽으면서
고마운 저의 마음을 이렇게 저의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이렇게 힘들게 사신 지나온 세월 단 몇 분만이라도 좋아하시는 Ernesto Cortazar의
음악과 함께 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올려봅니다.
Ivy-leaved Geranium
2013년에 찍은 사진.아이비 제라늄이 있는 테라스
지난 주에 찍은 사진 돌 화분에 가득 심은 아이비 제라늄
제라늄이 가득한 벤치
햇빛이 가득한 잉그리쉬 가든..
보타닉가든의 봄은 스노우드롭으로 시작을 했다.
난쟁이 아이리스
네메시아
수선화
목련
튜립
무스카리
아이스랜드 파피 언덕
일본정원의 벗꽃
채진목
애기사과꽃
잉그리쉬 가든의 애기사과꽃
Fritillaria
삼지구엽초
미국할미꽃
야생앵초
알리움
라벤더와 붓꽃
오리엔탈 파피
철쭉
넝쿨장미
호숫가에 늦게 핀 수선화
잉그리시 가든의 여름 전경
디기탈리스
금낭화
처음 만난 불루파피
왕패모
걸이화분
Viola
병아리꽃나무
African Daisy
네모필라
Meadow sage
여름 걸이화분
Poppy
애기범부채
노루오줌
오릴엔탈 릴리
까치수영
샤스타 데이지
천일홍
꼬리풀
큰 호수의 풍경
Daylily
수국
백일홍이 핀 언덕의 아침 (빛과 물내림)
홍초가 있는 가든
또 다른 스냅드래건 Angelface? Wedgwood Blue Summer Snapdragon
Pride of Madeira
수련이 있는 라군
Victorian waterlily
칸나가 있는 풍경
나의 씨크릿가든..
Humming moth
가을장미
추명국
솔체꽃이 핀 오솔길
여뀌가 핀 오솔길
에키네시아
목수국
아나벨레수국과 자작나무숲
야생가든에서
에키네시아와 수쿠령(Pennisetum)
억새풀
호숫가의 에키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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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물이 들기 시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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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o Cortazar : Just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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