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뚱이 집착 다스리기

2016. 1. 24. 17:5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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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뚱이 집착 다스리기



세상엔 머리로만 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생각만으로, 고뇌만으로,
글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그런 일들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글을 읽고 명상을 하고
마음나누기를 통해 마음을 닦아 가기도 합니다.
법문을 듣고 환희심을 느끼고,
도반들의 수행나눔 속에 나를 채찍하며 반성하고,
몇 자 안되는 글귀에서 삶의 희망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든 문제를 다 풀어 줄 것이란 생각은
역시나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을 적에는 쉽게 쉽게 짓지만
받을 적에는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렇게에 그 힘겨움을 막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를 위해 수행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럽니다.

글귀 몇 줄, 법문 한번 듣는 것으로
도반들 모여 법담을 나누는 것으로
지은 과보, 업식을 녹이기란
때론 너무나 버거울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린 치열하게 수행을 합니다.
3000배 참회 절을 하고
그 긴 금강경을 독경하고
몇 시간이고 앉아 염불도 하고
3.7일 기도니, 100일 기도를 합니다.

때로는 죽기를 각오하고
몇 날 몇 일이고 잠도 자지 않고 눕지도 않고
참선을 하며 염불을 하고
그러다가 힘에 겨워 쓰러지기도 하는
치열한 수행자를 만나게도 됩니다.

왜 그렇게 몸을 던져 수행을 합니까...
두 눈으로 글을 읽고
입으로 법담을 나누고
그저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여여히 마음 관찰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몸을 혹사시키며 고행을 합니까...

마음 먹은대로 다 되지 않으니 중생입니다.
어렵게 지은 이놈의 업식은
쉽게 쉽게 녹아 내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장 착심을 일으키기 쉬운
이 몸뚱이를 던져 수행하는 것입니다.
몸뚱이 착 때문에 몸뚱이를 좀 더 편히 하려고
우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아갑니까.

예전엔 직접 밭 갈고 논 농사지으며
늘 노동을 소중히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노동은 대접받기 어려워 졌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은 천하고
머리로 하는 일만을 귀하게 여기는 풍조 말입니다.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머리 쓸 일은 너무도 늘어만 갑니다.
반면에 몸뚱이는 너무도 할 일이 없어집니다.
버튼 하나 누르면 안 되는 일이 없는 편리한 세상입니다.

요즈음의 시대는
진정 '정신의 휴식'과 '육신의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참선과 절 같은 우리네 수행은
이런 현대인에게 참 밝은 길을 안내해 주기도 합니다.

우리에게서
가장 집착이 강한 것이 몸뚱이라 했습니다.
아집(我執)이라 했습니다.
때문에 몸뚱이 착심을 방하(放下)하고 업식(業識)을 녹이기에
가장 쉬운 것이 몸뚱이 착 닦는 수행입니다.

몸뚱이 집착...
이놈이야말로 우리의 수행을 방해하는,
우리가 초월해야 할 첫 번째 수행의 관문입니다.

수행은 하고 싶은데
쉽게 하고 싶은 마음 앞섭니다.
그러나 쉽게 하면 그건 수행이 아닙니다.
온 몸 바쳐 수행하려는 마음이라야 합니다.
어렵게 수행하려는 마음이라야 합니다.

3000배를 할 때
처음 한 500배 쯤은 참 쉽고 재미있습니다.
몸도 가볍고 신이납니다.
수행한다는 아상(我相) 때문에
작은 다리 아픔 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다가 1000배 쯤 넘어서고 나면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수행은 이때부터 시작입니다.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기 싫은 마음 녹여가며
몸을 일으키고 누이고 일으키고 누이고...
그것이 절 수행입니다.

무엇이든 닦는 것은 어려운 법입니다.
더럽히기는 한 찰나이지만
다시 닦아내기는 억겁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수행 쉽게 하려는 마음 때문에 수행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선 몸부터 낮추고 내던져 보십시오.
하루 108배도 힘겨워 하는 것이
우리네 중생들 몸뚱이 착심입니다.

이 작은 몸뚱이 착심 조차 닦아내지 못하고서
마음을 닦겠다고 큰소리 칩니다.

내 앞에 펼쳐진 일상이 너무도 힘겨워
수행도 싫고 방하착이고 뭐고 이해도 안 가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내 몸 던져 수행부터 하고
몸뚱이 착심 놓아질 때까지 닦아보고
그 다음에 '수행'에 대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논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룡 큰스님께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경계가 닦쳐왔을 때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괴로운 경계일지라도
몸과 마음 다해 정말 열심히 수행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도성취가 되지 않는다면
그때가서 부처님을 욕하고 나를 욕해도 좋다"
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머리로만 수행하고
가슴으로만 수행하고
나아가 마음으로만 수행하지 말고
온 몸으로 수행하려는 용기를 가져 보세요.

먼저 발원(發願)을 세우셔야 합니다.
기도 발원문을 직접 쓰시고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한 번 읽고 시작합니다.

근기에 맞게 기간을 선택하세요.
초심자라면 3일도 좋고 7일, 21일, 100일도 좋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새벽녘에도 좋고 잠들기 전에도 좋습니다.

몸뚱이 착을 닦기 위해, 온몸으로의 수행을 위해
'절' 수행을 꼭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108배도 좋고 1080배도 좋습니다.
적절히 300배나 500배 정도를 정해도 좋습니다

감당키 어려울 만큼 큰 경계를 이겨내기 위한 기도라면
절의 횟수는 많은 것이 좋을 것입니다.
1080배 혹은 3000배도 좋습니다.
3일간 3000배를
혹은 7일간 1080배를 하셔도 좋습니다.

처음엔 절도 잘 되고 기도도 잘 되지만
하다보면 꾀가 생깁니다.
그 꾀가 바로 '몸뚱이 착'입니다.
까짓 오늘 피곤한데 하루 108배 건너뛰자 하는 마음 말입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법계가 보고 있고 내 마음속 주인공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몸뚱이 일시키기 싫어하는 현대인에게있어
절수행은 몸뚱이 착 닦아내는 참 좋은 수행입니다.


 

 

* 온 누리가 부처님 알몸이네

 

항주의 홍수 선사가 운력을 하다가

장작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달아 다음 게송을 지었다

 

박락비타물 撲落非他物   딱! 맞아 떨어지니 남의 물건 아니고

종횡불시진 縱橫不是塵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바깥경계 아니니

 

산하급대지 山河及大地   산이며 강이며 온 세상 누리가

전로법왕신 全露法王身   부처님의 알몸을 그대로 드러냈네

 

 

 

              균형 / 박영배

                 나와 세상과의 관계
                 너와 나의 관계

                 서로의 심장부에 쇠말뚝을 박고
                 수평으로 줄을 연결하여
                 눈높이를 맞춰 가는
                 잠깐의 약속이며
                 일시적 기준치

                 나란히 걷는 서로가
                 다른 생각과 각도에서
                 춤사위를 좁혀오는
                 굿 놀이 같은 것이지만

                 결국은
                 서로에게 지표가 되어주고
                 마주 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영원한 간이 역이다

                 내 시선이
                 모두를 보는 척도이고
                 내 입맛이 표본이고
                 그러다 놓쳐버린 
                 내 생각의 기차표 한 장

                 아! 이제 편견의 쉰 냄새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