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빵 한 조각 / 홍어이야기

2016. 2. 6. 18:3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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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악마와 빵 한 조각 ☆

옛날 러시아에 한 가난한 농부가 살았다.


이른 새벽에 밭일을 나간 농부는 아침식사로 빵 한 조각을 가져가 나무 밑에


놓아두었다. 어느덧 쟁기질이 끝나고 시장기가 돌자 농부는 나무 밑으로 다가가


빵을 찾았지만 이상하게도 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자 마음 착한 농부는 이렇게 말하며 맹물로 허기를 달랬다.


“할 수 없구나, 어쨌든 한 끼 굶는다고 죽진 않을 테니까.


누구든 그 빵이 필요했으니 가져갔겠지. 그 사람이라도 잘 먹으면 좋겠군.”

그런데 가난한 농부의 아침을 훔친 자는 바로 악마였다. 악마는 농부가 죄를 짓게


만들려고 빵을 훔쳤는데 가난한 농부는 빵도둑에게 욕을 퍼붓기는커녕 오히려


축복을 내리며 자신의 허기를 달랠 뿐이었다.


 당황한 악마는 이 일로 대악마에게 야단을 맞게 되었다.

악마다운 지혜가 부족했다는 대악마의 꾸지람에 이번에는 다른 술책을 간구하였다.


 악마는 농부의 빵을 훔치는 대신 농부의 빵을 늘려주기로 했다.


농부의 부지런한 하인으로 숨어들어간 악마는 홍수가 들 것 같은 해에는 고지대에


씨를 뿌리라고 가르쳐 주고, 가뭄이 들 것 같은 해에는 습지에 씨를 뿌리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해서 농부는 해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하게 되었다.

풍요로운 수확으로 곡식이 남아돌자 악마는 이것으로 술을 만드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허기를 달래주던 일용의 양식이 쾌락을 위한 도구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술이 생기자 농부는 친구들을 불러들여 먹고 마시며 놀았다. 이 술친구들은 처음엔


여우처럼 서로들 좋아하며 알랑거렸지만 곧 늑대처럼 변해 서로에게 사납고 거칠게


대하였다.

마침내 술자리가 끝날 즈음엔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들 돼지로 변해 모두


여기저기 흘리고, 소리치는 지저분한 짐승이 되어 있었다. 이 모양을 본 대악마는


몹시 흡족해하며 도대체 술에 어떤 악마의 묘약을 넣었기에 그토록 착하던 농부가


저처럼 짐승이 되었느냐고 물었다. 악마의 대답은 이랬다.

“제가 한 일이라곤 농부에게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수확을 준 것밖엔 없습니다.


짐승의 피는 인간의 마음속에 항상 있으니까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양밖에 없을 때까진 그 짐승은 잘 묶여 있지요.


한때 저 농부가 마지막 빵을 잃어버리고도 빵도둑에게 축복을 내렸던 것처럼요.

하지만 필요를 넘어 남아돌기 시작하면 인간은 거기서 쾌락을 찾아낼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제가 ‘술’이라는 쾌락을 알려주었죠.


신이 주신 선한 선물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쓰기 시작하자마자 그동안 묶여 있던


여우와, 늑대와, 돼지의 피가 다 뛰쳐나온 거지요.”

- 톨스토이 -


2 ☆홍어 이야기☆

김주영의 소설 '홍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 너네 아버지 별명이 왜 홍언지 알아? 홍어는 한 몸에 자지가 두 개 달렸거든,


그래서 바람둥이였던 거구.

홍어좆은 두 개가 맞다.
정약전의 '자산어보' ('현산어보'라 읽는 이도 있다)에도 홍어에 대한 정보를


싣고 있다. 그 중의 일부이다.

'수컷에는 흰 칼 모양으로 생긴 좆(陽莖)이 있고, 그 밑에는 알주머니가 있다.
두 개의 날개(가슴 지느러미)에는 가느다란 가시가 있는데,


암놈과 교미를 할 때에는 그 가시를 박고 교미를 한다.

암컷이 낚시바늘을 물고 발버둥칠 때 수컷이 붙어서 교미를 하게 되면


암수 다 같이 낚시줄에 끌려 올라오는 예가 있다.암컷은 낚시에 걸렸기 때문에


결국 죽고 수컷은 간음 때문에 죽는다고 흔히 말하는 바, 이는 음(淫)을 탐내는


자의 본보기라고 한다.



남도땅 강진에서 태어난 김선태 시인은 홍어의 '거시기한' 교미를 시로 묘사했다.


그는 지금 목포에 둥지를 틀고, 고향 강진을 오가고 있다.


그도 술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 홍어에 관해서도 일찍이 한 발을 걸쳐놓았다


'홍어이야기' 라는 시를 통해서였다.

홍어 낚기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홍어 수컷을 낚는 데야 홍어 암컷을 미끼로 쓰면 직방이지요
갓 잡은 암컷을 실에 묶어 도로 바닷물 속에 집어 넣으면
수컷이 암컷의 아랫도리에 달라붙어 그대로 따라 올라오지요

대롱 모양의 수컷 거시기는 두 개인데 희한하게 가시들이 촘촘 박혀 있어


발버둥쳐도 잘 안빠진다는 말씀. .
거참, 그야말로 거시기 물린 셈입니다.그렇게 해종일 수컷을 낚다보면
아랫도리가 너덜너덜해진 암컷은 그만 기진하여 죽고 만다니..
하여튼, 짝짓기를 위해서라면 홍어도 한 목숨 거나 봅니다.




그런 홍어 좆은 뭍에 올라오면 완전히 '찬밥'이다.


홍어배가 주낚(홍어를 잡기 위해 심해에 늘어뜨리는 긴 낚시줄)을 걷어 올릴 때


큰 암컷이 물린 채 올라오면 어부들이 신이 나서 '암치다' 라고 요즘도 소리친다.

수컷은 찬밥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세'를 당했다.홍어꼬리가 가운데 있고,


양쪽에 꼬리보다는 짧은 '거시기'가 달려 있으니, 꼬리처럼 달린 것이 도합 셋이다.


암컷은 당연히 하나 밖에 없다.

수컷은 암컷보다 살이 뻐세기(뻣뻣하고 질기다) 때문에 이왕이면 찰지고 씹는 맛이


좋은 암컷을 더 선호할 수 밖에.그렇다 보니 수컷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팔리더라도 암컷이 더 값을 받았다.

수컷의 '거시기'를 자르면, 암컷으로 둔갑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으니,


어부나 상인의 입장에서는 수컷은 별로 환영 받지 못한 선수다.

나주 영산포에서 '홍어1번지'를 하는 주인장 안국현씨는 이런 얘기를 했다.
예전 5일장 마다 홍어장수들이 돌아다녔다.


홍어를 팔기 위해서는 '맛뵈기'라는 것이 있었다 한다.

몸체의 살점을 떼내기는 아까웠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거시기'였다는 것이다.
어차피 '달려있어도 환영 받지 못하는 거시기'를 미리 떼내어 놓았다가,
살 사람들에게 현장에서 한 점씩 맛보게 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잘리는 신세'는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뭍에 나오기만 하면 '잘리는 신세'. 그랬으니 '만만했다'는 것 아닌가.


사람들 사이엔 그래서 "만만한 게 홍어좆" 이란 말이 소통되었다.


 


아래의 글은 홍어 유통지였던 1970년대초 영산포 선창에서 오고 갔을 대화라고 한다.

영산포 선창에서 '성님' '동상'이 나누는 홍어 '거시기' 대화다.
그냥 간직하고만 있기보다는 '남도이야기' 독자들과 함께 웃음을 함께 하고자 한다.


대화가 너무 솔직했다면, 너그러이 받아주시길.

어이, 동상! 홍애는 어디가 질 맛난지 안가?


누가 머시라고 해도 홍애 배야지를 짝 갈라 갔고 애나 쌈지를 꺼내


찬지름을 째까 친 굵은 소금에다 찍어 묵으믄 그 맛이 차말로 고소해불제!


거그다가 막걸리 한 사발 드리키면 세상 둘도 없는 맛이어불제.
느그들은 애래서 그 맛을 잘 모를 것인디.

성님, 먼 말씀을 그리 섭하게 허시오?
지가 애리다고라? 저도 장개 들어서 처자식이 있는 몸이요.


글믄 형님은 홍애를 어째서 홍애라고 헌지 아요?


껍닥은 시커매도 배깨가꼬 썰어노문 살이 삘개부요.


그래서 붉을 홍자를 써서 홍애라고 했답디다. 이것은 참말이요.

동상, 먼 소리여? 그게 아니여!


홍애는 다른 물괴기보다 넓적하다고 혀서 넓을 홍자를 써서 홍어라고 한 것이여!


너는 몰라도 한참 몰라, 이 무식한 놈아!

성님, 머시라고라? 무식하다고라?
홍애좆 같은 소리 허덜 마시오

너, 시방 머시라고 씨불거리냐? 홍애좆이라고 해부렀냐?


이런 씨벌놈이 없네? 너, 홍애좆이 먼 말인지 알고나 씨부리냐?

성님도 참, 홍애좆을 지가 왜 모르겄소?


숫놈 꼴랑지 양쪽에 까시 달린 거시기가 두 개씩이나


달래있는 것이 홍애좆이제 머시라요?

동상, 차말로 홍애좆도 모르구만. 잘 들어! 이놈아,


홍애좆은 너같이 씰데 없는 놈이나 밸볼일 없는 놈들을 비꼴 때 쓰는 말이여.


잡을 때 거시기 까시에 찔래서 기찮고, 괴기를 썰어 놔도 암놈보다


맛탱가리가 없어서 잔치집이나 상가집에서도 사가들 안해부러.그래분께


뱃사람들이 좋아 허겄냐 ?

아따, 성님. 벨라 유식헌 척 허요 잉? 그래도 숫놈은 심 하나는 끝내주겄소 잉?


거시기가 두 개씩이나 달래쓴께 말이요.

에라, 상놈의 새끼! 근께 너보고 홍애좆이라고 허제.

"만만한 게 홍어좆이냐" 라고 했을 때는
"내가 그렇게 홍어좆 처럼 만만하냐" 는 항변이고,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라는 자기 주장이다.

소리 높여 말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에 가시가 박히도록 대항하는 언사인 것이다.


직설적이고 꾸밈이 없는, 오히려 격정적인 남도인들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덧붙여 볼까.
'만만찮기는 사돈집 안방'
'만만한 년은 제 서방 굿도 못본다'
'만만한 놈은 성도 없다'
'만만한 데 말뚝 박는다'
'만만한 싹을 봤나'.

'만만하다'와 관련된 속담들이다.
어느 것도 '만만한 게 홍어좆' 이라거나 '만만한 게 홍어좆이냐' 보다
더 직설적이고 의미 전달의 강도가 센 것 같지는 않다.

- 옮긴 글 -


 

 

유럽여행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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