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2. 18:5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방하착 하면 본래자리로 간다
방하착 방하착 하였 더니 묻습니다.
‘다 놓으면 다 해결됩니까’
‘놓는다고 다 된다는 것이 어찌 말이 됩니까’
하고 말입니다.
'놓으면 된다 된다 다 된다’
저는 그렇게 말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세속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되는 것과
‘참’으로 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눈으로는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분간하기 어렵 습니다.
우리 중생의 마음에서야
편하고 쉽고 이기심이 충족되는 쪽으로 일이 흐르면
된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참으로 되는 것이란 그렇게 간단한 일만은 아니기 때문입니 다.
우리는 거짓나의 생활에 익숙해 있기에
거짓나의 마음이 충족되고, 거짓나가 행복하면 그만입니 다.
그러나 거짓나의 충족과 참나의 충족,
거짓나의 되는 것과 참나의 되는 것은,
어쩌면 때로는 상반되는 일처럼 보일지도 모릅니 다.
거짓나의 입장에서는 안 되는 일이고
답답하고 괴로운 일일지라도
본래 마음자리의 입장에서는 되는 일일 수도 있는 노릇입니 다.
된다는 말은 본래로 간다는 말입니다.
본래로 간다는 말은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참주인공,
본래 마음 자리와 하나된다는 말입니다.
본래 마음자리, 참주인공 자리는
아무것도 잡을 것 없는 지고의 맑음과 고요함
텅 비어 오히려 충만한 모습이라 합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무소유 속에
일체를 소유하고 있으며,
‘나’ 라고 내세울 것 없는 무아 속에
‘전체로서의 나’, 진아가 밝게 빛나고 있습니 다.
그러나 우리 중생의 마음은
무엇이든 끊임없이 붙잡으며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집착하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한없는 노력을 기울입니 다.
끊임없이 붙잡으며 살아가는 삶이 우리 삶의 모습입니 다.
하나되는 본래 마음자리는
일체의 분별이 끊어진 자리이므로
되고 안되고도 없고, 잘나고 못나고, 잡고 놓음도 없는 자리입 니다.
일체 모든 존재가 바로 이 자리에서 나툰 것입니 다.
우리 모두의 본래 고향이며
우리가 가야할 곳, 추구하며 살아가는 궁극의 본향인 것입니 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자리를 바로 깨쳐야 합니 다.
그래야 모든 것이 본래 있던 제자리를 찾아 갈 수 있습니 다.
그렇다면 마음자리를 깨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 마음은 무엇이든 ‘잡는’ 마음이 며,
본래 마음자리는 일체가 텅 빈 잡음 이전의 자리입니 다.
그러니 잡으며(집착) 살고, 잡음으로써 행복을 느끼며, 또한 잡아서 괴로운
그 일체의 잡음 즉, 집착심을 모두 텅 비우고 놓아버려
잡음이전의 본래 텅 빈 마음자리를 되찾아야 하는 것입니 다.
그것이 바로 마음자리와 하나되는 것입니 다.
그것을 ‘방하착’이라 이릅니다.
방하착, 놓았을 때 우리의 마음은 쉴 수 있습니 다.
잡아서 버겁고 무거운 마음을 놓음으로 가볍게 만들 수 있습니 다.
진정 놓았을 때 우리 마음은 본래로 가는 것입니 다.
본래 마음자리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본래자리와 하나되었을 때
일체 모든 삶의 의문이 ‘참’의 가르침으로 풀립니 다.
도저히 해답이 나올 것 같지 않던 의문들이 풀리게 됩니 다.
금방 죽을 것 같이 느껴지던 병의 고통이 며,
돈 없으면 못 살 것 같던, 경제력에 대한 집착이 며,
사람에 대한 집착,
명예, 지위, 권력, 학력, 배경, 대학, 이 성...
이 모든 집착들을 놓아버림으로써
본래 자리에서 나오는 확연한 해답을 체험해 볼 수 있습니 다.
놓는다는 것은 본래 마음자리와 하나됨이 며,
‘나’를 잡고 사는 아상의 굴레를 벗고 부처님 생명으로 산다 는 말입니다.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성 부처님’으로 사는 것입니 다.
괴로운 것도 부처님이 괴로운 것이요,
즐거운 것도 부처님이 즐거운 것이며,
돈, 명예, 권력, 지위, 계급, 철학, 이성, 지 식...
이 모든 것을 가지는 주체 또한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 다.
그러니 사사로운 내 욕심으로 가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 다.
일체 모든 것을 부처님께 돌려 놓으면 그만입니 다.
돌려 놓고 나면 본래 가야할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가게 됩니 다.
본래 있던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기준에서 되고 안되며, 잘되고 잘못되는 것이 아닌
본래 마음자리에서 무분별의 지혜로운 판단으로
되는 쪽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안 되는 듯 보여도 걱정할 것 없 고,
되어지더라도 호들갑 떨 것 없습니다.
놓고 가면 그냥 그냥 살려지는 것입니다.
여여하게 함이 없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다 놓고 살아야 합니다.
잘하고 못하고 다 부처님 일이니 상관할 바가 아닙니 다.
다 놓고 살아야 본래마음이 사는 것입니 다.
어두운 중생마음으로 붙잡고 사니 힘이 듭니 다.
본래 마음자리로 살아 법계를 호령하는 수행자가 되어야 겠습 니다.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있는 그대로
진리를 구걸하지 마십시오.
바깥으로 진리를 구하거나 찾지 마십시오.
그러한 행위가 오히려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다만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잊으십시오.
당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을
돌아보지
마십시오.
갓난아이처럼
그냥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끼십시오.
그리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저 단 한 번의 멈춤,
단 한 번의 쉼이면 됩니다.
멈추고 바라보십시오. 쉬면서 느껴보십시오.
이미 있는 그대로
아무 변함없이 펼쳐져 있던 지금 여기 이것을.
- 몽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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