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마가 중요하다

2016. 4. 17. 17:5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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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마가 중요하다

매월 초하루에 00사에서 장부정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어제는 초하루 날인 데다가 막내의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 갖는 공개수업 날이었습니다.


절에는 조금 늦는다고 연락을 해놓고 공개수업이 끝나자마자 00사로 향했습니다.

벚꽃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신도들이 많이 오지 않습니다.


작은 절인 데다가 대부분의 신도들이 연세가 많은 분들이라 초하루 같지 않게


절이 한적했습니다. 요사채에 들어가 맡은 일을 하고 있는데 창밖에서


한 미모의 여성이 저를 보고 웃고 있었습니다.


출입구를 찾는가 싶어 오른쪽으로 돌아서 들어오라고 현관 쪽을 가리켰습니다.

조금 지나니 그분이 환한 미소를 띠며 제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 모르시겠어요?"
"모르겠는데요? 누구시죠?"
"기억하기 힘들 거예요. 부산대 앞 공부모임에 한번 참석했는데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기억할 수 없겠지요."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떻게 오셨죠?"



그분은 이것이 인연인 것 같다며 그동안의 얘기를 꺼내놓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런 분도 마음공부에 관심을 갖나 싶었습니다.


물론 외모와 상관없이 누구나가 존재의 근원에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


대부분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보려고 마음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미모에 경제적으로 전혀 어렵지 않아 보이는 비교적 젊은 분이


마음공부 말씀을 한다는 게 경험상 낯설었습니다.

그분은 해운대에 산다고 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불교에 인연이 깊었고


전통적인 수행도 많이 해본 것 같았습니다.


특별히 정해놓은 선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절에 가서 좌선도 하고 염불도 하며


여기저기 수행공간에 찾아들어갔나 봅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가족 따라 불교에 인연을 맺게 되었고


저절로 관심이 가더라고 했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마음공부'라는 글자를 쳐 검색을 하니 릴라 마음공부 모임이


검색되었다고 했습니다.


얘기를 듣다 보니 2년 전쯤 제 모임에 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습니다. 


 그때 인상은 공부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자신이 일종의


체험을 했는데 그것이 깨달음의 체험인지도 궁금했고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한 번 찾아왔던 것입니다.

첫 체험은 염불을 하다가 왔다고 했습니다. 염불하는 자기와 주변에서 왔다 갔다 하는


움직임, 그리고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 자기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하나가 되더니


내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자각이 들었답니다.


그때의 경험이 생생하였고 그 이후로 삶의 문제들이 해소되어 편안한 상태였답니다.


마음밖에 한 물건도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답니다.


누구를 봐도 나를 보는 것이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도 체험을 몇 번 더 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갑자기 마음의 짐이 내려놓아지는 일시적인 기간을 갖게 된답니다.


그런데 그 휴지기가 지나면 다시 삶의 문제에 휩쓸리게 된답니다.


그러면서 어떤 때는 너무도 분명하여 아무런 의심이 없다가, 다른 때는


여러 선지식들의 법문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캄캄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공부가 의심스럽고 체험을 했는데도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줄곧 들었답니다.

그런 심정으로 대형 서점에 가서 깨달음 관련 코너에서 이리저리 책을 보다가


눈길이 가는 책이 있어 열어보니 몽지 선생의 책이었답니다.


그렇게 서서 반 정도를 읽었는데, 속이 시원해지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서가 앞을 지나가는데


'아줌마와 선'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했습니다.


이게 인연이구나 싶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유튜브에 올려진 동영상을 보게 되었답니다.


그러다가 이 절의 스님 법문도 함께 검색되었는데


들으면서 참으로 속이 시원해지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초하루 법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무작정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탁마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첫 체험을 한지도 십여 년 가까이 지났고 그 이후로 이 하나에 대한 체험을 몇 번 했지만


여전히 안목이 말끔하지 않았습니다.


의지하는 선지식 없이 혼자 공부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체험을 여러 번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사로잡혀 있는 고정관념을 돌아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꾸준히 환기시켜줄 선지식이 없다면 공부가 분명해지기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깨달음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불성을 체험하게 됩니다.


둘 아닌 실상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세계를 잘못 보고 있었다는 깨우침과 함께


온 세계가 하나라는 가르침에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때 일없는 경계를 맛봅니다.


이게 공부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와 다른 심적 경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법문을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닌데 삶이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아무 일이 없는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온갖 일에 사로잡히는


스스로를 보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안목이 밝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분별망상에 사로잡힘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하나의 일 뿐임이 분명하다면 온갖 경계가 오고 가더라도 여여부동입니다.


그러나 고요하고 평안한 상태가 공부라는 고정관념 등 우리가 사로잡히기 쉬운


공부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공부가 오락가락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고정관념은 육안으로 보이는 어떤 모양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자기도 모르게


사로잡혀온 익숙한 '관념'입니다. 너무도 오래되어 몸에 딱 맞는 편안한 옷과 같습니다.


이것을 벗어버리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체험을 통해 익숙한 것들이 진짜가 아님을 경험했으면서도 교묘한 관념,


긍정적인 관념, 공부하면서 익혀온 공부에 대한 관념에서 말끔히 깨어나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순금이 무엇인지 체감했지만 분별망상의 티끌이 여전히 있을 때는


무엇이 순금인지 무엇이 잡석인지 분명히 감별해내지 못 합니다.


물론 본래 순금뿐입니다. 다만 고정관념의 티끌이 여러 가지로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눈에 든 티끌을 돌아보게 해줄 단련의 기회를 거쳐야 합니다.


말하자면 순금만 추출해내는 공정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꾸준히 가르침을 받을 안목이 바른 선지식의 존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선지식이 공부를 다 성숙시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상황이나 어떠한 관념도 그것 그대로 둘이 아님이 분명하다는 스스로의 깨달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선지식은 다듬어 주고 깎아주고 자기 마음 하나로 돌아가게 하는 자극을 줄 수 있습니다만


스스로가 그러한 깨어남이 없다면 법문만 듣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고정관념은 그야말로 관념일 뿐입니다. 그러저러한 관념의 상태에 걸맞은 공부가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고정관념, 기준들 혹은 그로 인해 빚어지는 여러 가지


상태들이 둘 아닌 하나여서 달리 마음 쓸 일이 없습니다.


이해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 속에 구현되어야 제대로 된 공부입니다.

예부터 탁마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정관념은 금방 알아차려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도 모르게 잘 속는 미세한


고정관념들이 많습니다. 자의식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짓고 있는 수행상,


법에 대한 상, 조작적으로 공부를 하려는 마음의 습관에 쉽게 사로잡힙니다. 


 물론 어떤 상태에 들든 둘 아닌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밝으냐 어둡느냐는 각자에게 달려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확연해질 때까지 탁마하면서 실상을 철저히 깨닫게 해줄 눈밝은


선지식이 필요합니다. 물론 마음 밖에 따로 선지식은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그러하게 될 때까지는 필요한 환영입니다.




- 릴라 임순희님


 


 


 

☆ 구름같은 인생

누가 날 더러 청춘이 바람이냐고 묻거든
나, 그렇다고 말하리니

그 누가 날더러 인생도 구름이냐고 묻거든
나, 또한 그렇노라고 답하리라

왜냐고 묻거든 나, 또 말하리라
청춘도 한번 왔다 가고 아니오며

인생 또한 한번가면 되돌아 올수 없으니
이 어찌 바람이라 구름이라 말하지 않으리요

오늘 내 몸에 안긴 바람도

내일이면 또 다른 바람이 되어
오늘의 나를 외면하며 스쳐가리니

지금 나의 머리위에 무심이 떠가는 저 구름도

내일이면 또 다른 구름이 되어

무량세상 두둥실 떠가는 것을 . .  

 

잘난 청춘도 못난 청춘도
스쳐가는 바람 앞에 머물지 못하며....

못난 인생도 저 잘난 인생도
흘러가는 저 구름과 같을 진데

어느 날 세상 스쳐가다가
또 그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가는 생을 두고....

무엇이 청춘이고 그 무엇이 인생이라고

따로 말을 하리까

우리네 인생도
바람과 구름과 다를 바 없는 것을....


 

 

 

佛敎(불교)의 根本(근본)은 깨달음에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