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本鄕)으로 돌아가야 한다

2016. 4. 24. 11:1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 질문 >
 요즘 ‘본향(本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에 붙들려 있습니다.

< 답변 >
 모든 말은 어쩔 수 없어서 방편으로 한 소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말인 즉슨 본향으로 돌아가라 말하지만, 일찍이 여러분은 단 한 순간도
본향을 떠나본 적이 없소.
본향을 떠나서는 그렇게 묻지도 또 이렇게 대답할 수도 없는 거요.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모든 행위의 주체로서의 ‘나’란 놈이 여전히
빳빳하게 고개를 곧추 세우고 있기 때문에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돼서 걱정이다’, 이런 식으로 법문을 듣는 거요.
그렇게 법문을 들어서는 천년만년 가도 제자리에서 맴맴 돌며
먼지만 피울 뿐이오.

‘나’는 없는 거요.
티끌 하나 움직인 조짐조차 없는 여여부동한 법계 가운데서, 지은 업에 따라
울퉁불퉁한 목전의 온갖 현전상(現前相)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 오인하고
있는 거요. 실제란 없소.
‘나’를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이 몽땅 범부의 망정으로 빚어진 업의 그림
(業影)일 뿐이오. 그럼에도 허망하게 이 움직이는 몸, 움직이는 마음을 붙잡아
‘나’로 삼고, 그 ‘나’가 깨달아야 한다느니,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느니 하고
있으니, 그게 전부 꿈속의 얘기를 하고 있는 거요.
 지금 이러한 얘기를 듣고 또 ‘무아(無我)의 경지를 증득해야 되겠다’는
어떤 의도가 고개를 추켜든다면 여전히 제 자리요.
무아라고 하면서 도대체 누가 또 증득한다는 거요?

· · · · · · 끝끝내 ‘나’는 없소. 그저 모든 것 다 놓고, 지금 있는 이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된 거요.
어떻게 해야 할 ‘나’, 어떻게 되어야 할 ‘나’는 없소. 그러니 기존에 들은 바,
안 바에 맞지 않는다고 자신을 비난하거나 못살게 굴지 말고,
그저 가만히 지켜보시오.
내내 그렇게 촘촘히 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본래 여여부동한 ‘참 나’가
우뚝 드러나 있음을 알게 될 거요. 그것은 결코 내가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니라, 무심(無心)이 되면 그 때 저절로 저 쪽에서 스스로 찾아오는 거요.
 
- 현정선원





 

하루는 작은 일생

 

하루는 작은 일생이다.
아침에 잠이 깨어 일어나는 것은 탄생이요,
상쾌한 아침은 짧은 청년기를 맞는 것과 같다.

그러다가 저녁, 잠자리에 누울 때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쇼팬하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