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덕지덕지 옷

2016. 4. 17. 18:1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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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덕지덕지 옷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옷을 벗으면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하면 믿으시겠는가?



벗을 수 없는 옷


사람들은 옷을 입고 있다. 벌거벗어도 옷을 입고 있다. 종교라는 옷이다. 이승에서는 목욕탕과 나체촌에 가도 벗을 수 없는 옷이고, 저승에 가서도 벗을 수 없는 옷이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혹은 중음신계에서 사자(死者)의 빛이 뜨겁게 비치더라도, 입고 있어야 한다. 입은 (종교라는) 옷에 따라 가는 지옥과 천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일을 했어도 저쪽 종교에서 인정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벌 받기 딱 좋은, 악행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 평생이 허사다. 누구나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르므로, 또 불의의 사고로 횡사할 수 있으므로, 종교인은 항상 자기 종교라는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불교 옷을 입으면 아무리 나쁜 짓을 했어도 무기지옥에는 가지 않는다. 고재봉이도 신창원이도 유영철이도 오원춘이도 사형을 당할지언정 무기지옥에는 가지 않는다. 반면에 기독교 옷을 입으면 그렇게 나쁜 짓을 안 했더라도 재수 없게도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에 걸리면, 무조건 무기지옥행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천주학이 도래하기 바로 직전의 조선(朝鮮)에 태어났으면, (아무리 착하게 살았어도) 무조건 무기지옥행이다. 예수를 몰랐다는 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씻을 수 없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또, "그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생각만 해도 지옥행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는 것은 마음으로 짓는 죄 중에 으뜸이기 때문이다.



열역학 제1법칙의 위배


그러므로 나쁜 사람은 불교를 믿는 게 낫고, 착한 사람은 기독교를 믿는 게 낫다. 지옥은 불교가 낫지만, 천국은 기독교가 낫기 때문이다. 불교지옥은 유기(有期) 지옥이지만 기독교지옥은 무기(無期) 지옥이며, 불교천국은 유기 천국이지만 기독교천국은 무기 천국이다. 기독교천국은 우리나라 국민연금처럼 조금만 붓고도 엄청나게 많이 타먹는다. 적어도 정부의 초창기 선전에 의하면 그렇다. 그런데 기독교천국은 ‘유한한’ 복을 짓고 ‘무한한’ 복을 받아먹는다. 우리나라 정부보다 더 심하다. 이건 분명히 인류역사상 아니 우주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다. ‘유한한 에너지로 무한한 에너지를 만드는’ 영구기관이 불가능하다는 ‘열역학 제1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불교의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작자수(自作自受) 인과응보(因果應報)론은 정확히 영적인 ‘열역학 제1법칙’이다. 불교는 정말 과학적이다.



평행지옥론


만약, 근자의 아소카선언처럼, 종교다원주의가 참이라면 다음 둘 중의 하나다. 지옥이 아예 없던가, 아니면 여러 가지 지옥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기독교지옥, 불교지옥, 이슬람지옥 등이 따로따로 다른 공간에 하지만 같은 시간에 존재해야 한다. 이것은 평행지옥론(parallel hell theory)으로서 평행우주론(parallel universe theory)의 일부이다. 이게 보기보다는 그렇게 모순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구상의 감옥만 봐도 나라마다 따로 있고 환경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겁탈을 해도, 이란에서 하면 높은 기중기에 매달린 채 공개교수형을 당하고, 한국에서 하면 살려주고 얼굴까지 가려준다.) 천국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아소카 선언에 찬성한다면 종교를 믿기 전에 (종교) 쇼핑을 잘해야 한다. 이미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금 자기가 믿는 종교가 자기 특성에 잘 맞는지. 아, 참, 그런데 만약 지옥과 천국이 없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종교를 믿을 근본적인 이유가 사라질 것이다. 아소카선언 내용이 참이라면 지옥과 천국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고 없다고 해도 이상하고, 아소카 선언은 참으로 이상한 물건이다.



왜 믿는가


종교라는 옷의 속옷은 생각외로 단순하고 간단하다. 줄팬티이거나, 삼각빤쓰이거나, 아프리카 아마존 뉴기니 석기시대 원시인들의 성기를 담는 성기집·성기커튼 정도이다. 당신이 외계인에게 당신의 종교를 설명한다고 해보자. 그렇게 복잡할까? 아니면 당신 종교의 핵심교리를 한 시간 내로 설명하는 게 불가능할까? 종교의 속옷은 단순하고 간단하지만 겉옷은 복잡하고 여러 벌이고 무척 무겁다. 교주가 죽은 후 역사와 문화와 구라와 환망공상이 엄청나게 쌓였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믿는 종교와 2,000년 전 교주가 살아있을 당시의 사람들이 믿던 종교가 같은 종교라면, 설사 금박 입힌 두꺼운 성서와 거대한 성바오로 성당과 성스러운 그림들과 조각들과 아름다운 그레고리 성가와 장엄한 의식과 이스터 크리스마스 부활절 명절이 주는 들뜬 신나는 기쁨이 없어도, 종교를 믿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게 다 사라져도 당신은 여전히 믿을 수 있는가? 아름다운 산 중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사찰이 없어도, 황금빛 저녁노을에 핏빛으로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이 없어도, 그리고 계곡을 뒤흔들고 마을로 달려나가는 범종소리가 없어도 믿을 수 있는가? 새벽 어스름을 뚫고 저녁 땅거미를 건너뛰어 삼천대천세계로 퍼지는 청아한 염불소리가 없어도 믿을 수 있는가? 도솔천을 찌를 듯 까마득히 솟아오른 대불(大佛)이 없어도 믿을 수 있는가?



모두 지옥행이다


이런 건 다 교주생존 시에는 없던 것들이다. 만약 교주가 살아 돌아오면 혹은 재림하면 종교인들은 모조리 지옥행이다. 당신의 가르침과는 몹시 달라진 엉뚱한 종교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민낯은 무엇일까


2015.8.8일자 영국신문 데일리메일에 의하면 알제리의 신랑이 결혼식 다음날 자기 신부를 고소한 사건이 일어났다. 첫날밤에 강도가 든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자기 신부였다. 화장을 지운 신부의 용모가 너무 추해서 강도로 오인했다는 것이다. 화장발로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보이던 신부의 추한 본색이 드러난 것이다. 신랑은 자기를 속인 죄를 물어 신부에게 2만불(약 2,30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보통 데일리메일은 믿을 수 없는 기사로 악명이 높지만, 이 기사만큼은 어쩐지 신뢰가 간다. 그런데 나머지 신랑들은 아직도 속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신부가 여전히 아름다운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육체적 용모는 따지지 않고, 마음의 용모만 본 것일까?)


신부의 화장을 벗기듯 종교의 겉옷을, 한 겹 한 겹 차례차례, 다 벗기면 어떤 모습이 드러날까? 성자들의 신통력 일화, 초자연적인 일들, 뼈 숭배, 치병, 의식, 음악, 역사를 모조리 벗겨내면 어떤 민낯이 드러날까?

사람들이 믿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가 만들어낸 문화다. 종교의 본질이 아니다. 사람들은 술자리를 좋아하지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혼자서 술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신다면 그건 알코올중독이다. (그걸 종교적으로는 광신(狂信)이라 한다.)

중년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는 젊은 남자가 아니다. 가진 건 없지만 바스락 바스락 희망과 꿈으로 부풀고 봄날 연둣빛 새순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싱그럽던 남자가 아니다. 놀라운 감수성으로 여자를 웃기던 유머감각이 넘치던 남자도 아니다. 그동안 남자가 올라온 사회적 지위와 쌓은 재력이다. 늙은 여자는 늙은 남자의 돈과 사회적 힘을 사랑한다. 웃음은 한때이지만 돈은 영원하다. 심지어 이성의 화신 칸트조차도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것은 ‘돈’이다”라고 순수이성적으로(?) 선언했다. 중년여인은 칸트는 몰라도 돈은 안다. 여인 자신도 변했으니 지난 세월의 순수한 단순한 사람을 앞에 데려다 주어도, 그리고 그 시절로 돌아가도, 지금 마음이라면 결코 옛날처럼 사랑할 수 없다. 더 이상 예전의 자기와도, 예전의 남자와도, 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종교에는 옷이 입혀졌다. 난해한 교리, 자다가도 깜짝깜짝 눈을 뜨게 하는 무시무시한 협박, 지루하고 장엄한 의식, 벼락출세가 불가능한 수구보수적인 계급제도, 이상한 가사의 성가 등 덕지덕지 옷이 입혀졌다. 추하게 늙은 여인이 자극적인 색깔로 두텁게 화장을 해 늙고 추한 모습을 가리듯이, 종교도 역사와 문화로 그리고 (72명의 처녀가 대기하고 있는 천국으로 보내주겠다는) 공수표(空手票)와 (지옥으로 밀어 떨어뜨리겠다는) 협박으로 수천 살 먹은 늙고 추한 모습을 가린다.


진정 사랑하는 것이 여인의 화려한 옷과 향기로운 화장품이 아니라면, 여인의 민낯이 궁금하지 않을까? 종교의 민낯은 무엇일까? 아마 당신은 종교의 민낯 보기를 거부할지 모른다. 당신이 종교를 믿는 것은, 지옥과 천국이 참이라 믿는 것이 아니라 ‘지옥과 천국이 참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당신 생각에, 당신이 싫어하는 자들은 지옥으로 가고 당신과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야 우주의 정의가 바로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신의 적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종교를 믿는다. 심지어 같은 종교를!



벗자, 다 벗자, 발가벗자


당신이 종교를 믿고 있다면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 이미 옷을 입고 있다. 덕지덕지 입고 있다. 오히려 옷을 벗어야 한다. 우리 벗자, 다 벗자, 발가벗자. 그리고 보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노파심에 알려드린다. 이 글에서 민낯과 화장은, 정신적인 낯인 민마음과 정신적인 가면인 위선을 포함하는, 가장 넓은 의미의 민낯과 화장이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春思(춘사) 봄날의 시름 / 李白

 

燕草如碧絲 (연초여벽사) 연나라 풀이 파란 실 같을 때

秦桑低綠枝 (진상저녹지) 진나라 뽕나무는 푸른 가지 드리웠지요.

當君懷歸日 (당군회귀일) 당신이 돌아가리라 생각하는 날

是妾斷腸時 (시첩단장시) 이럴 때 제 창자가 끊어지는 때이지요.

春風不相識 (춘풍부상식) 봄바람은 나를 알지 못하는데

何事入羅幃 (하사입나위) 어찌하여 비단 휘장 속으로 들어오는지요.

 

 

 

 

부처의 길을 가지 않는다

단숨에 훌쩍 벗어날 일이지, 도니 깨달음이니 말을 붙들고 헤매지 마십시오.
모든 일어나는 분별망상에 정신차릴 뿐이지,

분별 속에서 부처의 일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 세상 그대로, 삼계 그대로가 모양없는 진실 하나임에 눈뜰 뿐입니다.
달리 부처의 경계를 헤아리고, 깨달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 있는 그대로 마음하나입니다.

당장 이것입니다. 모든 일이 바로 여기의 일입니다.
당장 존재자체로 돌이킬뿐, 생각을 일으켜 부처니 중생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분별속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세상에 대한 생각도 깨달음에 대한 생각도 없습니다.
그 모든 생각이 바로 지금 여기의 일이며 여기에서 나고 사라질 뿐입니다.
이 당연한 존재자체에 눈뜰 뿐이며,
이 하나의 일뿐임이 분명해지며,
모든 현상 그 자체로 여여함을 체득할 뿐입니다.

중생에게는 깨달음이 있지만,
부처에게는 부처도 없고 깨달음도 없습니다.
부처니 중생이니 모두 망상입니다.
모든 부질없는 망상에서 놓여날 뿐
달리 부처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 릴라 임순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