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8. 17:5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꿈과 현실
◆하나님의 복, 인간의 복
구정이든 신정이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고받는 새해인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다.
복받는것과 건강이 우리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나타내는 인사말이다.
이 두가지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 누구라고 복과 건강은 최대의 관심사 이며
사실 그것을 얻기위한 우리들의 노력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렇다면 복(福) 이란 어떤것인가.
건강은 복에 비하면 그 개념이 확실한 단어다.
그러나 복은 대단히 광범위한 뜻을 가지는 말이며
그 해석도 여러가지 일수있다.
우선 사전적인 의미를 풀어보면,
복은 편안하고 만족한 상태와 큰 행운이며,
이로인해 얻는 기쁨과 즐거움이다.
큰 행운과 만족은 '물질' 이 전제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일반적 의미의 복은
'돈-물질' 이라는 등식이 성립될수 있다.
우리의 문화사적인 영역에서 가장 전통적인 복은
유교에서 말해지고 있는 오복(五福)일 것이다.
'이빨이 좋은것도 오복의 하나다.' 라는 말이있다.
물론 치아의 건강이 오복에 드는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며 이를 오복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우리사회에서 오복이 하나의 기준이 되어있다는 뜻 이기도하다.
오복은,수(壽), 오래 사는것이다.
지금의 발달된 의학은 인간의 기대수명을 120세까지 잡고있다.
육체적으로 오래 사는것이 꼭 좋은것인지는 별문제지만
오래 살기를 원하는 인간의 오래된 염원은 변함이 없다.
음이 부(富), 재물-돈-재산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재산은 자칫 인간을 망칠수도 있다.
그래서 부도 자기분수에 맞게 가지는 지혜가 필요하다.
녕(康寧),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다.
사실은 돈보다 더 중요한 복일지도 모른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진수성찬도 소태맛' 이라는 말은
마음의 평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유호덕(攸好德),도덕을 지키는것을 낙으로 삼는일이다.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 오래사는게 이런 이유일 것이다.
끝으로 고종명(考終命).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것이다.
비명횡사(非命橫死-뜻밖의 재난이나 사고등으로 죽는것) 하지않고
제 집에서, 자식들 앞에서 임종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적인 의미의 복이나 전통가치로서의 오복을 살펴보면
가장 뚜렷한 공통점은 그 안에 '종교적' 요소가 없다는 점이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다.
복과 오복은 평범한 모든이들이 바라고 있는
긍정적인 희망사항 이기도 하다.
전혀 나쁜것이 아니다.그렇게만 될수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모두는 이러한 '복' 의 개념속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때문에 이 복들은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고정관념 이기도 하다.
이런 전통문화에서 성장한 자연인이 종교를 가지게 될때
대부분의 경우 이 '복' 개념이 신앙생활 속에 쉽게 이입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일수 있다.
그러나 그 이입이 신앙생활의 '내용'에서
변질을 가져오는 '매개' 가 될수도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복' 과 종교가 말하는 '복' 이
그 의미에서 질적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기복화와 미신화의 현상이 일어나며
종당에는 본래의 모습을 벗어나는 변고가 생기게 된다.
그 서로 다름을 깨달아 아는 노력이 부족하면
그게 어떤 종교라 해도 딴것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종교의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넓게볼때,구약의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의로운 생활을 하는자에게 주시선물이었으며
생명, 건강, 많은자손, 안전, 풍성함등 이었다.
그러나 신약에서의 복은 그 본질에서 영적(靈的)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지밀하게 지내는 생활자체다.
말하자면 기독교의 복은 세상이 말하는 돈-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을 깨달아 알고,
그분의 말씀에 청종하는 영적인 것임을 알수있다.
이 차이는 절대적이고 근본적이다.
유대, 기독교의 복을 가장 소상하게,
길게 설명하는 유명한 본문이 시편 1편이다.
시편(詩篇-The Book of Psalms)은,구약성경의 19권째 책이며,
히브리식 이름은 '찬양의 책- 테힐림' 이다.
시편이란 명칭은 구약 그리스어역인 '70인역' 에서 유래했다.
히브리의 성경분류 기준으로 시편은 성문서-케투빔 에 속한다.
모세, 아합, 코라자손, 솔로몬, 에단, 헤만등이
작자로 언급되지만 그 대부분이 다윗의 작품들이다.
모세때인 주전 1500년 경부터
에스라때에 이르기까지 약 1000여년에 걸쳐 쓰여젔다.
5권 150편으로 편집돼 있으며
공통적으로 각권의 마지막 편은 송영으로 되어있다.
시편은 이스라엘과 개인에 의해 읊어진 신앙정서들이다.
내용의 대부분이 하나님에 대한 절대신뢰와 감사,
자신의 죄에대한 참회, 미래에 대한 소망등
세가지 흐름으로 대별되며 특히 미래에 대한 소망안에는
'메시야' 대망이 나타나 있기도 하다.
방대한 시편의 제1편은,
'복있는 사람-복받은 사람' 에 대한 기사로 시작된다.
복있는 사람, 복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제 성경스스로의 풀이와 설명에 귀를 기울여 보자.
실로 그 안에는 우리 신앙생활의 기둥이 되는 요체가 들어있다.
-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여기서 악인(惡人)은 나쁘고 사악한 사람이며
그 행실이 옳지못한 부도덕한 사람이다.
그리고 '꾀' 는 의도와 계획이다.
복받은 사람은,그러한 악의 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 근본에서 악이 계획되는 영역에는 접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저지른 자이며
그에게서 벌을 받은 사람이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은 그 영역을 밟지않는다는 뜻이다.
그런곳은 거닐지도 않으며 스스로 차별화 하는것이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기서 오만하다는 뜻은 '비웃는자' 라는 의미다.
남을 비웃는다는것은 자기는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남을 없신여기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런 거만하고 남을 조소하는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자가 복받은 사람이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율법은 '말씀' 이며 성경이다.
그 말씀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항상 명상, 눈을감고 깊이 생각하는자,
그 말씀을 되새기는 자가 복받은 사람이다.
다음은 복받은 사람의 '일상' 이 설명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본문의 해석은 끝부분이 앞에오게 된다.
만사형통이 그것이다.
그에게는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물가에 심겨진 나무는 물이 마를일이 없다.
그 근본이 바로 돼 있다는 의미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으니 열매가 풍성할것언 정한 이치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음부분은 '복받은 사람' 과
정반대편에 있는 악인에 대한 설명이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여기서의 악인은 이미 등장했던 '비웃는자' 다.
여기에 사악(邪惡-마음과 생각이 간사하고 악독함)이 더해진다.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겨는 버려지는 물건이다.
바람은 하나님의 힘-입김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무가치한 존재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지디 못하며.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피할수 없으며
그 죄악을 감출수도 없으며
머리조차 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못하리로다.
염소가 양의 무리안에 들지못하는 이치다.
이미 분리된 죄인이 선한부류에 들수 없다는
하나님의 판단하심을 의미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인정 하신다는것은 지켜보시고, 보살핀다는 의미다.
그 길을 걷는사람은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수가 있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할수가 있는것이다.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비웃는자' 거만하고, 오만한자,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하지않고
명상하지도 않는 죄인은,멸망할 것이다.
타락해서 사라질 것이다.
궁핍때문에 죽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깊이 명심해야될 사실은,
본문1절과 2절에 묘사된 '복있는 사람-복받은 사람' 의 특징은,
그 복이 '소유' 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부가 '어떤상태' 로 설명되고 있다.
'소유' 는 그 상태의 결과로 주어진 사실에 주목해야
이 심오한 본문을 바르게 이해 할수있다.
기독교 교회안에서 말해지는 '복'은 성경의 복이다.
성경이 말하는 어떤상태로서의 복만이
교회안에서 말해져야 한다.
기복(祈福)이 문제가 되는것은 교회안에서 세상의 복,
돈-물질을 구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신앙내용을 왜곡,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당면문제가 그것이다.
이 문제게 관한한,주께서는
이미 분명한 기준을 말씀하신바 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것(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도
곁들여 받게될 것이다.' 마태6:33.
먼저 할일은,먹을것과 입을것,
돈과 물질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생활,
올바른 신앙생활' 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 졌을때
먹을것과 입을것은 곁들여 받게되는 것이다.
지금 교회의 위기는이 순서가 바뀐데 있다.
교회의 물량화, 기복화, 미신화가 그것이다.
인간이 원하는 세상의 복을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오만함이 그 안에있다.
그 '소유'를 더하기 위한 종교는 미신일 뿐이다.
진정한 종교는, 신앙적 삶은,
인간이 말씀을 통해 변하는 것이다.
그걸 구원이라고 부른다.
예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품고 사는것이 신앙생활이다.
때문에 성경의 복은 끝까지 어떤 '상태' 일수밖에 없다.
주께서 영생을 구하는 부자청년에게 주신 말씀이 그 뜻이다.
'먼저 네가 가진것을 모두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그 후에 나를 따르라.'
분수에 지나친 소유는 신앙생활의 '짐' 이 된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흔히 노년 (老年)을 상실 세대라 한다.
상실 당하기 전에 버릴 것은 스스로 버려라
그래서 우리인생의 배낭은 가볍게 하자.
과거에 내가 xxx 자리에 있었는데
그 때 그 사람은 내 부하였는데
과거에 묶여있으면 현실에 적응력이 떨어진다.
인생의 종착역엔 1등실, 2 등실이 따로 없다
60대는 직업의 평준화,
70대는 건강의 평준화,
80대는 생명의 평준화라 하지 않았는가?
잘나고 못나고는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을
삶의 끝이요 생의 종착이다
품 안에서 벗어나고,
조직에서 벗어나고,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고,
미움도 짐도 벗어 버리고,
원망의 괴로움은 끊어버려 배낭을 가볍게 하여
불필요하고 과도한 탐욕이나 욕심을 버리자
자유선언의 포즈,
마음을 비운 해탈의 포즈,
평심서기(平心舒氣)의 포즈로
한번 남은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자.
인생의 배낭 속에 즐길 것 낙(樂) 하나는
꼭 들어 있어야 한다.
낙(樂)이 없는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생물학적인 연명뿐이다.
등산의 쾌감을
흔히들 마운틴 올가즘 이라고 한다
등산이든 무슨 취미든
최고의 낙(樂)이 올가즘 아닌가.
살아있을 동안에 올가즘을 최대한으로
누리다 가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 한다.
낙(樂)이 없는 인생은 권태의 연속뿐이다.
똑같은 소금도 대상에 따라서 효과가 달라진다.
미역에 뿌리면 팔팔하게 살아나지만
배추에 뿌리면 시들시들 죽어버린다.
똑같은 물도 소가 먹으면 우유를 생산하고
뱀이 먹으면 독을 생산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즐겁게 사는 사람은 즐거울 낙(樂)이요,
불평하고 사는 사람은 괴로울 고(苦)로 바뀌어 진다.
자신의 배낭 속에는 무엇을 담았습니까 ?
오늘도 마음 속에 기쁨과 희망이란 시간을 담아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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