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기술] 남성과 여성은 무엇이

2016. 8. 28. 18:4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행복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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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기술[남성과 여성은 무엇이]
 
              사람의 모습이 다른 것은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남성은 대부분 불과 바람이 몸속에 많으므로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내고, 잘 잊어 버려서
              잘못을 반복하는 일이 많습니다.
 
              여성은 대부분 물과 흙 성분이 몸 속에 많으므로
              남성보다 추위를 많이 타며 참고 견디는 힘은
              좋으나 잘 잊어버리지 않아서,한번 잘못했더라도
              두고두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므로 남성은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성은 말 자체에 신경 쓰지만
              여성은 말 이면의 뜻에 관심을 더 쓰며
              남성은 어떻게 되겠지 하고 일을 저지르지만
              여성은 냉정하게 따져서 살피는 면이 강하므로
              서로 존중하여 장점을 살리면
              새의 양 날개와 같이 환상의 조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단점을 들추어 내면
              함께 하기가 가장 힘든 존재입니다.
 
              지구의 2분의 1인
              남성과 잘 지내고 싶다면
              남성의 특징인 '도전' 의식을 이해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잔소리 하는 것을
              싫어 한다'.는 것을 알아서 평생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과 다르다는' 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를 존중하면서 산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서
              살더라도 함께 잘 살수 있습니다.
 
           - 성담스님 -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고추보다 매운 인생살이



'인생(人生)' 살이가 고추보다 맵다'는 말이 있습니다
좌절하게 될 때면 곧잘 매운 맛을 봤다고도 하지요

그럼 ‘매울 신(辛)’ 자를 한 번 보겠습니다
‘매울 신(辛)’에 ‘한 일(一)’을 더하면 
바로 행복을 뜻하는 ‘다행 행(幸)’이 됩니다

좌절의 순간에도 무언가 하나를 더하면 
"행복(幸福)'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것이 눈물일수도 있고, 당신의 웃음일수도 있습니다
행복은 '매운 맛(辛)'을 본 사람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 행복운동가(칼럼니스트)

알지 못하는 그것

 

문 :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에 기틀을 돌이켜 문득 자기의 성품을 깨닫습니까?
답 : 다만 그대 자신의 마음일 뿐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짓겠는가?

만약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하는 것은,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의 눈을

보지 못하는 것을 자기 눈이 없는 것으로 여겨서 다시 눈을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어떻게 다시 보려 하는가?

 잃어버리지 않았음을 알았다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이 없는데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겠는가?

자기의 신령스런 앎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기를 구하겠는가? 만약 알려고 한다면 곧 알 수 없으니,

다만 알지 못하는 줄 알면 그것이 바로 성품을 본 것이다.

- 보조국사의 수심결


바로 지금 어떤 대상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마치 눈과 같아서, 다른 모든 대상들은 눈으로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눈 자체는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보지 못할 수도 없습니다.

 

본다, 보지 못한다는 분별을 일으키기 이전에 이미 눈의 존재가 당연하게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 ‘무엇’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대상을 알기 이전에 이미 이 ‘무엇’이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알지 못할 때도 또한 그러합니다. 따라서

이 ‘무엇’은 아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알지 못하는 것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즉 어떤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무엇’을 참나, 절대자, 주인공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제 스스로는 결코 대상화되지 않는 절대 주체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과 설명도 이미 틀렸습니다.

이런 말을 보고 듣고 ‘무엇’이라는 절대 주체가 따로 있는 줄 생각한다면

그것은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 또 다른 대상에 불과합니다.

예화 속의 말처럼 똥을 퍼낸다는 것이 또 다른 똥을 퍼붓는 꼴이 됩니다.

바로 지금 이것입니다. ‘무엇’에 해당하는 무엇이 없습니다.

그것을 무심(無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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