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생각/무지(無知)

2016. 9. 17. 18:1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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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생각

말과 생각은 도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말에 근육이 있고, 생각에 사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모든 말과 생각이 본성 하나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지 못하면,
모든 말과 생각이 구속이 되어 스스로를 묶을 것입니다.

본성은 말로 물들일 수 없고 생각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본 바탕입니다.
본성으로 인해 말이 말이 되고 본성으로 인해 생각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깊이 말과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에 공부에 들어갈 때는


말과 생각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지만 본성을 깨닫고 나서는


모든 말과 생각이 본성 하나로 다르지 않음을 여실히 볼 일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말과 생각이 장애가 되고,
깨닫고 나면 모든 말과 생각이 도가 됩니다.

깨닫기 전에는 말과 생각 밖의 도를 찾지만,
깨닫고 나서는 말과 생각 그대로 다른 물건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각기 다른 말과 생각이 그 말, 그 뜻 그대로 동일하여,
말 마디마디에 다른 것이 없고, 생각 굽이굽이에 다른 일이 없습니다.
그 근본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전부이지 말과 생각을 상대로 씨름하지 않습니다.

지금 흘러나오는 모든 말과 생각에 마음이 없다면 무엇입니까?
말 한 마디, 한 생각이 바로 이 살아있는 허공과 같은 성품의 표현입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의 본성이 다르지 않고 가지가지 생각이 동일한 바탕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침묵할 필요도 없고 생각을 없애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온갖 말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온갖 생각을 하는데 두려움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온갖 말과 생각을 하는 가운데 말과 생각을 믿지 않게 되며,
말과 생각에 마음이 없으면


온갖 말과 생각을 해도 결코 구속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 릴라님



 

무지(無知)

 

이 세상 사람들은 모르면서도 전체를 아는 체 합니다.

어설프게 아는 것입니다.

엄밀히 생각하면 하나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한 방울의 물과 먼지 하나

풀 한 포기의 이치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피상적으로 이름을 붙여서 알 뿐이지

본질적으로 그 근본을 추궁하면 정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마음의 그림자인 생각으로 감각기관을 통해서 모든 걸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줄로 착각합니다.

 

이러한 지식은 몇 어치 않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백년 안쪽의 얘기는 서로 주고받고

이해가 되는 듯 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빛은

그런 단편적인 지식의 저울대로 달아지지 않습니다.




                    

                          

 

[선으로 읽는 복음] 01.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1 : 23]


여기 복음(福音,Gospel), 복된 소식,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이라는 아들을 낳는다고 합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나님,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동정녀는 순결과 무구를 상징합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에서 진리가, 말씀이 구현되었습니다.

예수(Jesus)란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Jehosua),

곧 ‘여호와(Jehovah)가 구원하다’는 말이 그리스어화한 것이라 합니다.

예수는 여호아, 하나님의 구원이요,

그 구원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의 탄생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臨在, presence)에 대한 자각입니다.

그의 현존에 대한 자각이 바로 그에 의한 구원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와, 하나님과, 그의 임재하심이 결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사건들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 우리가 있음이

바로 현존하는 예수이자, 하나님, 그의 임재하심입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 나는 나다(I AM WHO I AM)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존재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와 하나님에게로 돌아갑니다.

결코 대상화할 수 없는 존재,

절대적인 존재가 바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통해 보시고,

우리의 귀를 통해 듣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는 없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십시오.

세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한 시도 떨어질 수 없는 우리 존재의 근원을 돌아보십시오.

바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잠시 묵상) / 몽지 심성일님(몽지와릴라 밴드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 휘바람, 경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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