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스님의 화작化作

2016. 9. 25. 17:5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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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元曉 스님의 화작化作


 


 


원효스님에게는 그의 깨달음에 영향을 준 스승과 같은 두 분의 스님이 계셨다.


혜공(惠空)선사와 대안(大安)대사가 그분들이다.


혜공스님은 포항에 있는 오어사(吾魚寺)라는 이름이 생기게 한 분인데 설화는 이렇다.


 


하루는 둘이서 천렵(川獵)을 나가서 놀다가 원효스님이 바위 위에서 개울 쪽으로

변을 보니 혜공선사가 그것을 가리키며


네 똥이 내 고기다. (汝尿而吾魚)”라고 했다. 물론 설화여서 다른 버전도 많다.


어쨌든 그 일이 그 당시 그 옆에 신라 진평왕 때 자장율사가 지은 항하사(恒河沙)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의 이름이 오어사(吾魚寺)라고 바뀐 인연이다.


원효스님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혜공선사에게 물었으며 혜공선사는 원효, 자장, 의상,

아도화상 등과 함께 신라의 10대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이 두 스님의 기록은 일연(一然)스님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여러 곳에 나온다.


 


대안스님은 혜공과 더불어 원효와 동일시대에 살면서 아직도 법상(法相)에 걸려 있던

원효의 스승 역할을 많이 했다.


그 시대에는 사찰(寺刹)에 적()을 두지 않고 무애 행(無碍行)을 행하던 스님이

꽤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대사께서 원효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신이 거처하는 곳으로 오게 했다.


원효가 찾아 왔을 때,   마침 어미를 잃은 새끼 너구리가 배가 고파 낑낑거리고 있었는데,

대안대사는 원효에게 배고픈 새끼 너구리를 위해 불공을 좀 드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원효는 목탁을 꺼내어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대안은 원효를 막으면서,


여보시오 스님, 그래서야 새끼들의 배가 부르겠소? 내가 하는 것을 보시오


하고 옆으로 밀치고는, 죽을 쑤어서 새끼 너구리들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러면서


배고픈 너구리에겐 이게 최고의 불공이요.”라고 하였다.


 


또 하루는 대안대사가 원효에게 불법(佛法)에 대해서 논할 게 있다고 하며

원효를 청하여 북촌(北村)으로 데려갔다.


당시 서라벌의 북촌은 천민이 사는 곳으로 단지 시장과 환락가도 함께 있던

저잣거리와 마찬가지였다.


대안대사는 원효를 북촌의 한 술집으로 데려가서 주모에게 술을 시켰다.


그리고는 옆자리에 기녀들을 앉혀놓고는 원효의 옆에 앉은 기녀에게 농()을 던졌다.


네 이년아! 그분이 누구신지 아느냐?”


하니 기녀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는


네 알고 말고요~. 높으신 덕을 지니신 원효스님이시잖아요?”


그러면서 교태가 섞인 몸짓으로 원효의 옷자락을 잡고  원효를 안았다.


그러자 대안대사는 껄껄 웃으면서


어허~! 그년 참~. ! 이년아, 그렇게 높은 덕을 가진 큰 스님에 그렇게 안기면

덕망 높은 스님께 해를 끼친 죄로 마땅히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니라.”하자,

그 기녀는 도리어 웃으면서


아니? 무엇이 걱정이에요? 이렇게 덕이 높으신 스님인데 소녀 따위야 금방 지옥에서

건져주시겠지요.” 하며 대안대사 농을 농으로 받으며 깔깔거렸다.



그렇게 농익은 농지거리가 난무하는 자리에 승복을 입고 앉아 있던 원효는

내내 불편하여 몸 둘 바를 몰라 하고더욱이 출가한 자신이 이러한 곳에서 여인에게

손목을 잡혀 술상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에 얼굴이 붉어져서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렇게 떠나는 원효의 뒤에 대고 대안대사는 껄껄 웃으며 소리쳤다. 


이보시오 원효대사! 여기 지금 이렇게 구제(救濟)받아야 할 중생이 많은데,

이 중생을 여기에 두고 그대는 어디로 가서 어떤 중생을 제도(濟度)하겠단 말이오? 


그 소리에 얼굴이 화끈한 원효는 그곳을 도망치듯 나오면서도 대안대사의 농() 섞인

호통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스스로 한 소식을 했다고 자부하면서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호기(豪氣)롭게 마음을 먹은 자신이 천민촌(賤民 村)을 피해 달아나는 꼴이 너무나 참담하였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귀천(貴賤)이 둘이 아니며, 생사(生死)가 둘이 아니고,

()과 색(), 선과 악(善惡), 옳음과 그름(是非) 등등이 둘이 아니며,

일체가 마음이 짓는 다는(一切唯心造) 사실을 무덤 안에서의 해골 물로부터 깨달은 그가,

대안대사에 이끌려 정작 북촌의 술집에 가자 머릿속에 있던 이러한 불이법(不二法)

어디로 갔는지, 이러한 곳은 승려로서의 신분과 체면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자신도 모르게 분별심이 작동하여 도망치듯 자리를 박차고 나온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또 혼란스러웠고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곳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앉아 있는 것은 더욱 견딜 수 없으니, 자신의

깨달음과 수행이 실제 세상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참담함에 빠진 것이었다.


 


그렇게 부끄러운 자신을 두고 고심을 하던 그는 자신의 이분법적인 분별심의 남은

찌꺼기를 없애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감천사(甘泉寺)라는 절에 가서 부목(負木 :

절에서 땔나무를 하여 들이는 사람)을 살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이 도리를 알아 반듯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부목 이외에도 밥을 짓고 빨래

등을 하면서 남들이 마다하는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그때 그 절에는 방울스님이라고 괴팍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 스님은 절 법규(法規)

잘 따르지 않고 공양(供養) 시간도 맞추지 않으며, 또 스님으로서의 체면이나

위엄이나 권위도 어디로 가고 없고 마치 철없는 어린애처럼 스님 같지 않은 행동을

하면서, 늘 공양 시간이 지났는데도 걸핏하면 찾아와서 누룽지를 내어놓으라고

떼를 쓰는 등 괴팍한 행동을 하였다그래서 스님들 사이에서는 물론

부목들마저도 방울스님을 업신여기고는 스님 취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효는 부목 일도 꾀부리지 않고 잘하고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하는 것은 물론,

방울스님도 잘 모셨다그래서 다른 사람은 방울스님이 누룽지를 얻으러 오면

귀찮아하고 무시했지만, 원효는 오히려 누룽지를 모아 뒀다가 드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의 스님들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가지고 토론하는데

원효가 듣기엔 절대법(絶對法)인 대승(大乘)을 상대법(相對法)인 세간적(世間的)

이분법(二分法)으로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며 떠들고 있으니한심하기도 하여

참다못해 한마디 참견을 했다가 부목이 감히 참견한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당시 신라(新羅)는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스님들까지도 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겼고, 감히 스님들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님들이 아무리 논쟁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자, 주지 스님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니 원효가 지은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를 주면서 보라고 했다.


그들은 그 책을 보며 너무 쉽고 잘 해석해 놓았다고 칭찬하며 좋아하다가, 문득

부목인 원효가 말한 그 이야기와 너무 흡사한 느낌이 들어서 원효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런 분위기를 느낀 원효는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날 것 같아 밤이 이슥할 때

도망치려고 남몰래 절문을 나서는데 문간방에 잠을 자던 방울스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원효, 이 사람 잘 가게나


원효는 머리에 한 방을 맞은 듯하였다. 아무리 부목을 살더라도 남들과 다른 모양을

한 원효를 방울스님같은 사람의 눈에는 속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방울스님에게 자신을 들켜버린 원효는 또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 행동을 한 자신이

견딜 수 없어 미친 듯이 산에서 내려오다가, 문득 북촌에서 빠져나올 때,


이보시오 원효대사! 지금 마땅히 구제받아야 할 중생을 여기에 두고 그대는 어디로

가서 별도로 중생을 제도(濟度)하겠단 말이오?”


라고 자신에게 호통치듯 말했던 대안대사 말의 참뜻이 이해가 되었다.


 


정작 구제 받아야 할 사람은 북촌 사람도 아니고 감천사 사람도 아니었다.


바로 중생을 제도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도 분별심(分別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자신의 그 마음이 진정으로 제도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금강경(金剛經) 3분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 보면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낼지니 있는바 일체중생(一切衆生)들을

내가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 적멸(寂滅)케 하겠다.’라고 하라.

이처럼 모든 중생이 제도 되었으나 한 중생도 제도 된 적이 없느니라. 왜 그런가?

  만약 보살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있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니라.” 라고 하였다.


그가 감천사에서 방울대사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킨 것은 부목이 부목다워야 하는데

원효는 지나치게 수행을 한 사람의 근본 자리를 드러내었기 때문이었다.


 


보살(菩薩)이 화작(化作)하는 모습은 즉 세속(世俗)에 들어가 중생과 같은 모습으로

같이 살아가면서 제도하는 것을 말하는데, 세속에 들어가는 것은 심우도(尋牛圖)

또는 십우도(十牛圖)에서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纏垂手)의 단계이고,

거기서 사람들과 어울려 교화하는 것을 화작(化作)이라고 한다.

화작은 심우도에서 이미 소도 없고 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보살의 모습이 아니라

중생의 모습으로 제도한다는 것이요,

제도한다는 마음조차 없이 같이 살아가는 것을 일러 화작(化作)이라고 한다.


 


그런데 원효는 자신의 깨달음을 완성한답시고, 부목을 살면서도 아직 자신의 수행의

반듯한 모습으로 다른 부목들과 다른 모습으로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모습이 지나치게 모범적이어서 어쩌면 다른 부목들의 눈에는 착한 사람 또는

시쳇말로 밥맛없는 놈이었지 자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모습에 감화를 받아 제도가 되겠는가?


그래서 방울대사에게 자신이 원효임을 간파당한 것이었다.


 


원효는 감천사를 나와 원효는 북촌에서 있었던 일과 감천사이 일을

곰곰이 생각해본 후에 그는 진정한 화작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일설(一說)에는 요석공주와의 일은화작을 하기 위해 북촌으로 다시 들어갔으나

이미 원효가 큰 스님으로 소문이 나 있어 그들과 화합할 수가 없어서 일부러

파계했다는 설과 원효가 스님이 되기 이전에 화랑(花郞)으로 있을 때부터

서로 사모하는 사이라는 설이 있으나, 어찌 되었든 원효의 공식적인 행적은

그즈음에서 끝이 난다.

다만 민간의 설화처럼 신라의 방방곡곡에 원효스님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나,

그것이 오히려 이름과 신분과 모습을 감춘 원효스님의 참모습을 일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 어떤 고을에 원님이 부임했는데 이 원님은 부임 이후 어떤 일도 하지 않고

또 수하들에게도 무엇을 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그런데도 참으로 묘하게도 일 년이 지나자 고을에 싸움이 없어지고이 년이 지나자

도둑이 없어지고, 삼 년이 지나자 모든 집이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고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었다.


원님도 요즈음 말로 공무원이라 때가 되어 다른 곳으로 부임하러 떠나는데 마을 사람이

원님을 칭송하여 공덕비(公德碑)를 세웠다. 그 말을 들은 원님은 스스로


참된 도는 표가 나지 않아야 하는데 나의 공덕비가 세워지는 것을 보니 아직 나의

도력이 한참이나 멀었구나.” 하고는 관직(官職)을 사직(辭職)하고

자신의 도를 더욱 단근질하기 위해 행방을 감추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화인지 설화인지는 몰라도 표가 나면 아직 덜 익었다는 뜻을 담은 이야기다.


 


화작을 하려면 이 자리만 분명해서는 절대 하지 못한다. 원효도 무덤에서 마신 물로

일체가 마음이 짓는다는 도리를 알았지만마음에서 시비와 분별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대안대사와 방울스님에게 일종의 꾸지람을 듣는다.


 


무분별지(無分別智)와 대원경지(大圓鏡智)라는 것이 있다.


무분별지(無分別智)는 말 그대로 분별없이 대상경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이다.

그리고 대원경지(大圓鏡智)는 크고 원만(圓滿)한 거울과 같은 지혜(智慧)이니,

거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것이고 대원(大圓)이라는 것은 크고 원만하다는

말인데, 크다()는 말은, 곧 이 한 법, 즉 우주 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은 원만하다는 뜻이니일체를 가리지 않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니,

대원(大圓)은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원경지는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거울처럼 일체의 시비와 분별을

여의고 있는 그대로 비추어준다는 말이다.


 


무분별지나         대원경지나 같은 말인데,       여기에는 안팎이 사라지고, 대상과 나의 경계도 사라져 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원효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알았다는 마음조차 버리고,

생각이 없다는 생각조차 버렸기 때문에 시장바닥에 뛰어들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미 먼저 시장바닥에 뛰어든 보임의 스승인 대안스님과 함께할 수 있었다.


 


나는 참 공부의 끝은 이와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 도리를 아는 것은 이제 겨우 아이로 태어나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밖에 다름이 아니다.


밥을 먹고 운동을 하여 몸이 자라고 뼈와 근육이 튼튼해져서 제대로 생각도 하고

걷고 뛰며 일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람 노릇을 한다고 하듯이,

이 도리를 깨치고 난 뒤에도 선사어록(禪師語錄)이나 선지식(善知識)

법문(法門)을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기르는 보임 시간을 거쳐,

분별이 사라지고 내가 사라져서 무심(無心)이 되어야 비로소 이 공부가 끝나는 것이다.


 


아기 때는 일어나 걷는 것이 모두 기특하여 하는 일마다 어른들의 칭찬을 받지만,

어른이 되고 세상을 마음대로 살아갈 때가 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자랑거리도

되지 않고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다.


이 공부도 자연스러워지면 내가 뭔가 한다는 생각도 역시 자연히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공부에서 내가 안다.’는 생각이 있으면 이는 한참이나 먼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일 뿐이다.


그처럼 깨달음이 순숙하여 이 도리를 알고 또 지혜를 쓰는 것은 본래 우리가 법이기

때문에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안다는 것조차도 사라져야 비로소

사람 노릇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비록 각자의 인연에 따라, 화작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공부의 끝은 이 한 법을 알고 체험을 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서

안다는 것도 사라지고, 분별도 사라지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 비로소 공부라는 말을 놓아도 될 때일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티끌만 한 것이라도 마음 위에 남아 있으면, 마음이 있게 되고,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자신의 눈과 세상이

어긋나서 고통과 번뇌가 일어날 것이다.


 


물론, 세상의 삶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세간의 삶에서는 그 대상에 따라

또 세간의 법을 끊임없이 배워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신에게 도리를 아는 나라는 것이 떨어지고 무분별지를 터득한 자는

세간의 공부는 절로 될 것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공부에 들어온 사람은 부디 이것을 명심하여, 어렵게 이 길에 들어와

힘들게 이 자리를 알아 놓고는 작은 안심과 만족에 머물러

기나긴 고난의 세월을 헛되게 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있는 그대로 완전한 깨달음 중에서

                           

 

1. 일단 대추는 물에 깨끗하게 씻어서 건져주고, 생강은 껍질을 까서 편으로 썰어 준비합니다.... (생강의 양은 취향껏 조절해도 좋은데요..저는 대추의 맛이 강하게 나라고 생강은 적당히 넣어 주었어요...)

2. 압력솥에 받아 놓은 물에 대추와 생강을 모두 넣고..... (저는 차를 끓일때 주로 압력솥을 이용해서 고아요. 어차피 제가 쓰는 밥솥이 압력솥이라서~~이런 차 종류를 끓일 때도 수분의 손실도 적고, 그냥 저는 압력솥이 좋은것 같더라고요.....일반 솥이나 냄비를 사용하시는 분들은 물의 양을 처음부터 많이 하거나 중간에 뜨거운 물들 보충해 주면서 끓이시는게 좋고요~~)

3. 뚜겅을 닫고 오랜 시간 끓여주기.... (추가 정신없이 흔들리고 나면 불의 세기를 약하게 줄여서 "칙칙" 약한 소리가 나도 계속해서 끓여 줍니다....한 20-30분 정도..?)

4. 다 끓여지고 나면 증기가 다 빠지고 나서 뚜껑을 열어줍니다.....

 

1. 다시 뚜껑을 연 채로 가스불을 켜서 5-10분정도 더 끓여주면 더욱 진하게 우러나요... (나무주걱 등으로 살짝 대추를 터뜨려 주면 더 잘 우려지지요...)

2. 우려진 대추차는 따로 체에 밭쳐서 받아내고, 약간의 물을 더 넣고서 끓여 줍니다.....

3. 이렇게 해서 진한 대추생강차만 우려낸 모습.....

4. 체에 밭쳐서 주걱으로 꾹꾹 국물을 눌러가면서 마지막 생긴 한방울까지 꾹 짜내요....^^

 

이렇게 만들어진 대추생강차는 병에 담아두고 그때그때 먹을 만큼씩만 데워서 꿀을 타서 드시면 되지요..

단것 넣지 않고 그냥 드셔도 좋고요~~~~

 

 

 완성된 대추 생강차....^^

 

 

 

 

 

 차는 오래 뭉근하게 끓여내야 진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것 같아요..

대추 안에 든 강력한 엑기스가 물 안에 녹아있다고 생각하니깐 더욱 건강해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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