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행본처(行行本處) 지지발처(至至發處)

2016. 11. 5. 19:0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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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행본처(行行本處) 지지발처(至至發處)

 

 

 

아무리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고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늘상 본래의 자리일 뿐이며,

도착하고 도착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출발한 본래 자리일 뿐이다.


이 지구행성에 잠시 다니러 온 여행자라는 숙업(宿業)에 의한 것인지,

더운데다가 길기까지 했던 맹렬한 여름을 치러서인지, 굳이 사색의 계절이라는

가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반복되는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여행길을 떠나는

나그네가 되어서 나를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기회를 가져 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인생을 통찰한 천병상 詩人이 하늘로 돌아간다며 귀천(歸天)을 노래하고

삶을 마감한 것처럼, 내려오기 위해서 山에 오른다는 등산가의 명제처럼,

짧게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 돌아오기 위해서 짐을 꾸려 떠나는 것이며,

일생의 기나긴 시간으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결국에는 내가 이 세상으로 떠나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한바탕 살아가는 여행의 과정이 삶이 아닐까 싶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구초심(首丘初心),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때에는

머리를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을 향해서 죽는다고 하니 이런 성품은

모든 생명과 존재에게 보편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성품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길을 떠나는 방랑벽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순간도 여행을 꿈꾸거나 계획하지 않는 삶이 있을 수 없는

것이리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인생, 삶에서 行行本處  至至發處(행행본처 지지발처)

라는 말은 감탄을 자아내는 삶이라는 여정에 맞춤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은 보다 많은 접촉과 새롭고 낯선 경험을 통해서 시야를 넓히고 이해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른 사람과 다른 지역의 문화와 풍속과 형편을

이해하여 나의 식견(識見)을 확대한다면 여행의 목적을 충족하고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확이충지(擴而充之),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인식과 이해를

확대시키고 채우기 위한 이 여행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연(柔軟)한 사고와

포용적이고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가짐이 필수적이다. 

또한 간소한 차림새와 최소한의 가벼운 짐을 통해서 보다 많은 경험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발품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도움을 받거나 주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와 대처가 필요하다.


잠깐 동안의 여행에서와 같이 인생, 삶의 여행에서도 확이충지를 위한 조건은

그대로 적용된다. 길지 않은, 단기간의 여행이 아닌 몇 달, 몇 년, 몇 십년의 기나긴

여정일수록 더욱더 단촐한 차림과 홀가분한 마음과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생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첫째, 유연한 사고와 포용적이며 너그러운 마음은 중도(中道)의 실천과 다르지 않다.

절대적인 善이나 절대적인 惡은 성립할 수 없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有와 無, 生과 滅,

增과 減, 구(垢 더러움)와 정(淨 깨끗함)을 分別하고 편을 갈라서 어느 한 쪽을 배제하고

배척하기보다는 존재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中道의 생활실천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 등으로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는 것은 결국 하나하나의 입장과 각각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강한 긍정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여행을 떠나면서 간소한 차림새와 최소한의 가벼운 짐을 준비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두타(頭陀行)의 지침에 입각하고 수순하는 검소하고 소박한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영위하는 것과 동일하다.


셋째, 도움을 받거나 주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적극적인 마음자세와 능동적인 대처로

자신의 시야와 이해의 지평을 넓혀서 도움이 절실한 지역과 사람들에게 서슴없는

혜택을 나누고 베풀어 주는 보시행(布施行)야말로 최상의 여행을 성취하는 조건이다.


무소유(無所有)로 일관된 진솔한 일생으로 맑고 향기로운 자취를 시현하시며

시대적인 스승이며 인도자이셨던 법정 큰스님의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은 물론

죽음에 이르러 본처(本處)로 회귀(廻歸)하는 자리에 이르러서도 격식과 겉치레를

벗어버린 단출하지만 당당한 本然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소탈하고 멋지고 호방한 

여행자의 진실면목(眞實面目)일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오랫동안 꿈꾸고 계획하며 준비해온 여행을 드디어 감행하는

당신과 나에게 던진다. 가벼운 여행보따리와 넓은 마음과 깊고 따뜻한 손길이

내딛는 발걸음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 ..

그리하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는 가벼운 차림새와 짐보퉁이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체험과 접촉으로 풍성해질 것이며, 넓고 넉넉한 마음은

편견(偏見)과 집착(執着)으로부터 벗어나 中道의 眞理, 즉 不二法을 깨닫는데

도움을 줄 것이며,

깊고 따뜻한 도움의 손길은 자비로운 보시의 실천으로 탄탄해 질 것이다.


이것이 무소유와 중도와 보시실천, 행행본처 지지발처를 분명하게 보고

깨달은 지구촌을 여행하는 나그네들의 살림살이이며 마음이며 행동이다.


-토론토 한국불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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