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실천하는 방법 / 법상스님

2016. 11. 20. 15:4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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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유치환 시 일월(日月)


진리를 실천하는 방법 / 법상스님


진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삶이 그대로 진리이기에 진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곧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인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다. 무위로써 사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억지스럽게 엄청난 공력을 들여 노력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여기 진리를 실천하는 삶의 자세 다섯 가지가 있다. 이런 마음자세로 살 때, 우리는 삶이라는 이미 드러난 진리와 하나되어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다.


첫째, ‘받아들임’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수용하는 삶이다. 삶은 그것 자체로 완전하다. 삶이 바로 진리다. [대승찬]에서는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이라고 하여 큰 도는 언제나 목전에 드러나 있다고 설하고 있다. 내 앞에 놓여 있는 삶 그것 자체가 바로 큰 도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삶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보신(報身) 부처님을 수용신(受用身)이라고 부른다. 즉 참된 부처님의 몸은 지금 눈앞에 드러난 일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만끽하는 존재로써, 지금 이대로의 삶이 전부일 뿐 다른 그 무엇을 갈구하거나 찾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부처의 삶이다.


둘째는 ‘놓아버림’이다.


만약 붙잡고 사로잡혀 있는 것이 있다면, 대상을 실체화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 어떤 대상도 실체는 없다. 무아(無我)요 공(空)이다. 그러니 그저 오고 가는 모든 것들을 붙잡아 집착하지 말고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것이 ‘놓아버림’이다.


이것은 놓아버리려고 애쓰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애써 붙잡지만 말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붙잡을 만한 실체적인 것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인연따라 잠시 왔다가 가는 환영일 뿐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알아차림’이다.


수용하고 놓아버린 채 다만 있는 그대로를 구경꾼이 되어 바라보기만 하라. 삶을 내식대로 판단하지 말고 다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라’. 우리가 할 일은 다만 지구별을 여행하며 삶을 눈부시게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제 스스로의 삶을 그저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삶을 다만 바라볼 뿐, ‘나’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벌어지는 삶에 대해 나에게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분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볼 뿐! 


넷째는 ‘내맡김’이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삶 자체에 전부 ‘내맡겨’ 보라. 우주법계의 큰 질서에 완전히 내맡겨 보라. 내맡기고 가볍게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잘 살아 보려고 애쓰는 것은 아상에 휩쓸린 어리석은 삶일 뿐이다. 나는 없다. 내가 있다고 여기면서 내가 어떻게 해 보려는 마음이 모든 괴로움을 만들어 낼 뿐이다. 그러니 나에게 삶을 맡기지 말고, 그저 이대로의 삶 그 자체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마음 편히 살면 그 뿐이다.


다섯 번째는 ‘사랑과 자비’다.


그리고 인연 따라 내 앞에 온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라’ 모든 것이 텅 비어 공하다고 해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무기력해지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어떤 사심도 없이, 집착도 없이, 미움도 없이, 그저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평등하게 수용하고 바라봐 주기에 일체중생을 섭수하게 된다.


대평등으로 그들을 내 몸처럼 사랑해주는 것이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알기에 그가 배고픈 것은 곧 내가 배고픈 것이다. 그러니 베풀어 주고도 베풀어 주었다는 상이 없다. 내가 내게 베푼 것이기 때문이다.

 

-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