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 틱낫한 스님

2016. 12. 4. 12:5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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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 틱낫한 스님

 

▒ 질문 (30대 초반 여성)
좀 바보같은 질문일 수 있겠지만, 저는 일단 종교가 없어요.
저는 어찌 보면 너무 평범한데..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무척 좋아하고요,
술도 많이 마셔요.. 그리고 백화점 가서 쇼핑하는 것도 너무너무 사랑해요.
저는 그러면서 어느 정도 만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이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안좋은 건지..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대중들 폭소, 스님과 법사단만 조용 ^^)

▒ 팃낫한 스님 답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행복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이해와 사랑에 의해서 측정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내면의 외로움이나 고통을 무언가로 감추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 사회의 특성입니다.


우리 안에는 깊은 외로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고통을 보고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 안에 있는 고통을 보지만
그것을 달래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낍니다.
그것이 일빙(ill-being, 아픈 존재)의 깊은 상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빙(ill-being)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서
우리 안에 있는 고통이나 외로움을 소비로써 감추려고 합니다.
술이나 마약이나 인터넷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고 잊게 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제게 행복한 사람이란, 그 안에

많은 이해(understanding)와 많은 연민(compassion)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고
다른 인간 또는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죽은 뒤에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은

다른 질문으로 답변이 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가?'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죽은 후에 내가 어디로 갈지를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행위
그러니까 몸으로 짓는 행위, 말로 하는 행위,
생각, 뜻으로 하는 행위는 우리가 지은 업(業)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 우리가 하는 모든 말
우리가 짓는 모든 생각은 우리의 업의 연속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보면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움을 일으키고 있다면 우리는 지옥으로 갑니다.
화가 나서 말을 하고, 그것 때문에 누군가가 목숨을 끊는다면 우리는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들을 해치거나 환경에 상처를 준다면
죽은 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지옥에 갑니다.


이해연민의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 생각이 이미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세상을 치유합니다.
그와 같은 바른 생각으로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정토로 갑니다.
정토로 가기 위해서 이 몸이 다 흩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을 덜 겪도록 무슨 말인가를 할 수 있고
그 사람 안에 믿음과 기쁨을 일으킬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여기에서 정토로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으로, 말로, 뜻으로 짓는 행위로 바로 지금 여기에서
지옥으로 갈 것인지 정토로 갈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많은 이해와 사랑으로 정토에 갈 수 있다면
이 몸이 산산이 흩어진 뒤에도 정토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우리 자신과 사람들에게 지옥을 일으키고 있다면

지금 여기에서 지옥에 가는 것이고

이 몸이 다 흩어진 후에도 여전히 지옥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죽은 후에 내가 어디로 갑니까?' 라는 질문은
지금 여기에서 과학적으로 답변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지옥을 만든다면

미래 정토를 기약할 수는 없습니다.

 

<틱낫한 스님 월정사 법문 중에서>

 

시를 읽는다 - 박 완서

  
심심하고 심심해서 시를 읽는다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 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행복을 여는 작은 비밀번호


 

일상의 풍요로움은 욕심 그릇을 비워서 채우고
자신의 부족함은 차고 매운 가슴으로 다스리되
타인의 허물은 바람처럼 선들선들 흐르게 하라.


생각은 늘 희망으로 깨어있게 손질하고
어떤 경우도 환경을 탓하지 말며
결코 남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미움은 불과 같아 스스로 파멸케하니
믿었던 사람이 배신했다면 조용히 침묵하라.


악한 일엔 눈과 귀와 입을 함부로 내몰지 말고
선한 일엔 몸과 마음을 어김없이 탕진하여 삶의 은혜로움을
깊고 깊은 사랑으로 완성하라.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이루말 할 수 없이 간단히 준비하자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자연과 대화하고 친구를 만나는 데 쓰자.

 

-헬렌 니어링' 소박한 밥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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