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불행해지는 이유는/법상스님

2017. 1. 15. 14:2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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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이생에서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이미 주어져 있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삶을
그저 눈부시게 즐겁게 누리고 만끽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내는 일입니다.

물론 살다가 인연이 다해
떠나게 될 날이 온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또 다른 생으로의 여행을
가볍게 준비하는 것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쁨 중 하나이지요.

건강한 몸으로
여행을 떠나는 즐거움 뿐 아니라,
병약한 몸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것 또한
크고 넓게 본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색다른 인간계의
체험현장이기도 합니다.

바로 지구별 인간계라는 것 자체가
고해라는 괴로움의 장치들을
삶의 연극 속에 적절히 가미시킴으로써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시켜
무언가를 배우게 하는
깨달음의 행성이기 때문입니다.

오죽 했으면 천상세계 하늘신들은
이 고해바다인 인간계로
여행을 오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기 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경전에서는
맹구우목, 인신난득이라고 해서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좋은 일들만 지속되는 삶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조금 위험부담이 있어도
박진감 넘치는 삶,
그 속에 애환도 있고,
우여곡절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 지혜를 깨닫는 삶
그것이야말로 진정
아름답고 눈부신 삶이 아닐까요?

이렇게 보았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그 어떤 것도 나쁘거나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주어진 그대로
완전하고도 완벽한
깨달음의 시나리오의
한 스토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깨달음의 시나리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구도의 장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말을 다르게 살펴보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구도의 장이 바로 삶이지만,
사실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갈 것도 없습니다.
사실은 이미 깨달아 있기 때문이지요.
이미 깨달아 있는 존재이지만,
스스로 망상분별을 하고,
둘로 나누어 높고 낮음,
좋고 나쁨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착각 속에서의 괴로움이 생겨난 것일 뿐입니다.

진짜 괴로움이 아닌
망상 속에서의 괴로움이기 때문에
사실은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는 표현보다는,
스스로 만든 착각과 망상 속에
스스로 빠져 있다가
그 속에서 빠져나오는
정신적인 과정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
더 높은 가치를 정해 놓은 뒤
‘지금은 너무 부족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얼마만큼의 연봉은 받아야 해,
나는 어느 대학 이상은 가야 해,
아들 성적이 어느 정도는 나와야 해,
남편은 어느 계급까지는 진급해야 해,
너는 나를 존중해 줘야 해,
아들은 부모 말을 따라야 해,
내 몸은 건강해야 해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삶의 궤범을 정해 놓고
스스로 거기에 얽매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내가 스스로 규정한
그 궤범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의외로 삶의 문제들은 쉽게 풀리기 시작합니다.
혹은 스스로 남들과 비교하면서
‘저렇게’, ‘저만큼’, ‘저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규정짓기도 하지요.

스스로 그렇게
남들과의 비교, 경쟁, 질투를 시작해 놓고
스스로 정한 만큼 되지 않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이처럼,
나답게 사는 것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사실은 바로 그런 생각,
비교분별만 없다면
세상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특정한 틀에 끼워 맞추려고
궤범을 만들지 마세요.
그 틀만 깨고 나올 수 있다면,
그 포승줄만 끊고 나올 수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이미 드러나 있는
삶의 완전성과 행복을
당장에 바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법상스님


    

1


당신을 향해 / 이 해 인


간밤의 어수선한 꿈을 털고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하면 눈이 뜨이는 아침,
나는 당신을 향해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으고 싶다.

내 좁은 방은 하늘이 되고,
내 무거운 육신은 날개를 달아,
멀리 떠나지 않고도 당신을 소유하는
새가 되는 연습을 한다.
한겨울 추위 속에 살아 있는 내가 깃을 치는 아침,
어둠을 먹고 크는 나의 기도 속에
보이지 않게 손을 내미는 당신.

무시이래로 깨달음을 장애하는 것 가운데

가장 질기고 모질게 따라붙는 것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온종일 한 치의 틈을 주지 말고 마음을 살피기를 모래 속에서

마치 금싸라기를 가리듯이 해야 한다.

그러다가 날이 가고 달이 차면 앞 생각에 비록 속았지만

뒷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홀연히 여여한 성품을 요달하게 된다.

하지만 깨달았다는 생각은, 미혹의 쇠사슬은 벗어났지만

오히려 금사슬에 다시 묶이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눈멀고 귀 먼 벙어리가 되어서

크게 죽어서 보통 사람으로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선사들은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어머님께 드릴 선물조차 아무것도 없다고 했던 것이다.

- 일선 스님, <보림의 숲> 중에서

* 이치는 단박에 깨치나 망상이 여전히 일어나는구나.

부처님과 나의 성품이 동일한 진성인 줄 분명히 알았으나

수많은 생애를 살면서 익힌 습기는 오히려 생생하구나.

바람은 고요하나 작은 파도는 여전히 솟구치듯

이치는 훤히 드러났으나 망상이 여전히 일어나는구나.

- 경허선사 / 몽지릴라밴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