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대로 보는 경지가 바로 그 소식 / 숭산스님

2017. 1. 8. 12:3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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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대로 보는 경지가 바로 그 소식 
                                                  / 숭산 스님

우리는 아는 게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
세상의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해 아는 게 많아.
하지만 사실은 하나도 아는 게 없어요.
생각이 그렇게 많은 데도 실은 아무도 몰라.

지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지식이란 세상의 사물에 대해 그냥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지식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식이란 녹음기와 같아서
녹음한 대로 배운 대로 그대로 밖에 못해요.
하지만 지혜란 그것이 바로 내 것이니까
곧 세상도 내 것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이지요.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라 이 말입니다.
그러니 단순한 지식만 가지고는
이것을 알 수가 있나? 모릅니다.
돈을 잘 버는 데에는 혹 도움이 되겠지요.

그러나 마음을 깨치는 데에는,
세상이 다 내 것임을 아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는 겁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도대체 하나님이 누구냐 하고 물으면
궁극적으로 ‘이런 분이다’ 하고
대답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잘 모르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그 답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네가 적멸처(寂滅處)에 이르면
하나님을 알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적멸처가 하나님의 실체란 말입니다.
이 적멸처란 불교에서 말하는 본래 면목자리이고,
극락이고, 열반인 바로 그 세계와 꼭 같은 것입니다.


이 온 우주는 늘 변화에 변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고정 불변하는 것이 없어요.
매순간 어떤 것이 생겨나고[生],
다음 순간 없어져 버립니다[滅].
이 생멸의 변화는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상관없이
계속하고 있어요.

이러한 생멸의 순간을
여의어 버린 경계가 바로 ‘적멸’의 상태입니다.
곧 고요이고, 극락이며, 하나님이요,
나요, 깨달음인 것입니다.

전에 나는 폴란드에서 신부님, 수녀님들에게
참선을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만,
최근 서구인들이 참선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마 다들 아실 것입니다.

이제 그 만큼 참선은
세계인의 공유물이 되었다하는 이야기입니다.
불교만의 전용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서구인들은, 참다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참선을 해야 한다고들 생각하고 있어요.

참다운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 이전의 세계, 분별이 없는,
생멸의 분별조차 없는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때 나라와 온 인류세계는 평화를 맺고 모든 중생이
다함께 성불하여 열반에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참선 지도를 하면서
우리 방식대로 「반야심경」,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참선에 들어가기 전에
꼭 하나님을 경배하는 어떤 글귀를 외웁니다.

그 내용은 이런 겁니다.
“하나님이란 깨끗하고 텅 빈 자리로,
거기에서 모든 세상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본래성품이 되어
시끄럽고, 조용하고,
밝고 어두운 것 등의 분별이 생겼다.”라고

부처님의 깨달으신 자리, 서산대사,
경허선사가 깨쳤다는 그 소식이란 모두 같은 것이고
그것은 생각 이전의 자리, 즉 텅 빈, 적멸의 자리로
다 똑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대답을 하면
몽둥이 찜질을 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왜 맞는 대답을 했는데 매를 맞아야 할까요.
이것을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 합니다.
‘대답을 하여 입을 여는 것이
곧 틀린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그 같은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 하는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입을 열지 않고 대답을 하는 도리밖에 없지요.
마치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꽃 한 송이를 척 들어 보이자
가섭존자가 빙그레 웃는 식으로 말이에요.
‘억!’하고 소리를 지르고,
손가락 하나를 번쩍 들어 보이고,
방망이로 내려치는 대답을 했던 선사들처럼 말입니다.

이 대답들을 이렇게 노래한 이가 있습니다.

천자나 되는 낚싯줄을 바로 던지니
한 파도에 만 파도가 절로 일어나네.
고요한 밤 찬 물에 물고기가 먹이를 물지 않으니
빈 배에 밝은 달빛만 가득히 싣고 돌아왔네.

곧 맑은 거울에 자기 모습이
그대로 되비치는 것과 꼭 같은 경지란 뜻입니다.
개소리는 컹컹대고, 하늘은 푸르고,
소금을 짜고, 설탕은 달고,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보고,
듣는 경지가 바로 그 소식이요, 그 경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소식이 무엇인지 알았고
다 같은 것임도 알았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옳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식이 아닌 지혜를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았다해도 제대로 수용해야 되는 것이지
머릿속으로만 알아서는 안 되는 겁니다.

지구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7천여 명이나 되는 어린이가
배가 고파 고생을 하다 죽어 가는 나라가 있습니다.
인도가 그렇습니다.

반면에 사회보장제도가 하도 잘돼 있어
고민이 없어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는 나라도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배가 고픈 것은
주위의 도움만 받을 수 있다면 쉽게 해소가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고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부지간이나 정치, 경제, 사회, 국가 간에서도
이 마음이 고픈, 마음이 가난한 자들로 인하여
싸움이 생기고 전쟁이 일어납니다.

본래면목이 맑은 거울과 같은 것임을,
하나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고도
그것이 곧 ‘나’임을 자각 못한 때문입니다.
굶어 죽는 이가 바로 ‘나’임을 모르는 탓입니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희어지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하얗게 바래는 것은 아닙니다.
참다운 인간의 삶을 살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앉아 참선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입니다.

무명가수의 애절한 노래